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빈혈 아니면 이석증 탓인걸까. 잘 모르겠지만 어질거리는 머리를 한 손으로 감싸 쥐고 아니, 머리칼을 부여잡는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다른 한 손으로는 허리춤을 잡고 마저 걸었다.
샤워기 앞에 선 나체의 형상. 어제까지라면 두 발자국 뒤에서 온수로 치우친 손잡이를 위로 올리고 때를 기다린다. 하지만 오늘은 찬 물부터 맞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냉수와 온수 그 중간에 손잡이를 걸쳐둔 뒤 수도꼭지를 올린다.
머리는 어지러웠고 귀는 웅웅 울렸다. 술에 취하지 않았지만 취기가 돌았다. 정말 취한 건 아니니까 샤워를 해도 괜찮을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샴푸 거품을 내다가 돌연 뜨거운 게 인중을 타고 흐르는데 이게 피라는 것을 알아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샤워기를 틀고 흐르는 피를 바라봤다. 내 몸에 닿자 빨갛게 변해 버리는 물줄기. 입술과 목을 지나 뚝뚝 그러나 또옥또옥 모양을 내며 하수구 구멍까지 소용돌이치는 붉은색의 뜨거운 액체가 보인다.
멍하니 서서 구멍을 바라보다가 툭 빨려 들어간 것은 하얗고 둥근 눈알이 하나 둘. 어떡하지 발을 동동 구르며 구르는 눈알을 찾지만 보이지 않는 눈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이제야 물이 달아올랐다는 것과 축축하고 미끈거리는 타일 바닥이다.
양손을 열심히 바닥에 뒤적거리며 미끈한 구 모양을 두 개 집었다.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양쪽 눈의 시력 탓에 왼쪽 눈인지 오른쪽 눈인지도 모른 채 양손에 각각 하나의 눈알을 쥐고 맞춰 끼운다. 이렇게도 쉽게 빠지고 쉽게 끼워진다.
바디워시를 몸에 가득 칠하고는 멈추지 않는 피를 벅벅 씻었다. 새로 온 피는 물과 함께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입욕제를 푼 욕조처럼 선명하고 아름다운 붉음.
새로운 것이라지만 원래부터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 흘러간 것 그리고 씻겨져 가는 것.
무릎을 양팔로 끌어안은 채 욕실 한가운데 주저앉는다. 한동안 몸의 굴곡에 따라 불규칙적으로 닿는 물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소용돌이치는 변기를 보고 있으면 다시 속이 메슥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