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는 조금 천천히 걸어도 돼. 아스라이 끝이 보이는 올레길을 따라가다 보면 한두 번은 꼭 길을 잃곤 해. 어디로 갈까, 발끝을 쳐다보며 묻는 거야. 그러면 지극히 평범해 보이던 흙길이 새삼 물결처럼 출렁일 거야. 길이 살짝 흔들리고, 조금 더 느긋해지는 거지. 풀잎의 숨, 바위의 온기 같은 걸 느껴가며 조금씩 아주 조금씩. 제주의 바람은 왜 굳센지 아니,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이야기들이 묻어 있기 때문. 한라산 꼭대기에서부터 시작된 구름이 돌담 사이로 바스락바스락 내려앉아. 바람이 귀를 스치면 어쩐지 비밀을 알게 된 기분이 들지. 흩어지고, 모이고, 또 흩어지면서.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기 전까지는 결코 그 바다가 보이질 않아. 평범하게 걷다가도 갑자기 그 너머에 있는 푸른빛을 만나게 되는 거야. 차가운 소금기와 푸른 하늘이 맞닿는 지점에 서면 하루를 곱게 반으로 나누어 놓은 듯해. 그러니 바다 앞에 섰을 땐 천천히 숨을 내쉬고 기다려 봐. 뭐라도 되돌아올 테니까. 그저 천천히, 천천히 걸어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