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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유 Oct 15. 2024

술잔이 무겁게 느껴지나요.



 조금은 알 것도 같아요. 가끔은 어디라도 말하고 싶을 때가 있지요. 그럴 때마다 당신은 폰을 부여잡는 것 같습니다. 왜 저도 같이 아픈지 모르겠어요. 당신 말마따나 감성이 풍부한 건가요. 당신 손에 닿는 게 차갑고 딱딱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당신 손에 잡히는 것들이 물렁하고 부드러워서 포근해지는 것들이면 더 좋겠어요. 제 손가락 끝에 당신을 주렁주렁 매달고 싶다는 상상을 합니다. 저는 당신의 목소리를 기다려요. 잘 울지 않는다는 당신이 실은 자주 운다는 걸 나는 압니다. 눈물의 형태가 남들과는 다른 지점이 있다는 것까지도 잘 알아요.

 당신의 진실된 목소리. 단단하게 감추어두다가 겨우 끄집어내는 당신이 진짜 하고 싶던 말들. 서랍에 물건을 잔뜩 넣어뒀다가 열었을 때 왈칵 물건이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당신은 당신의 이야기들을 그제야 해 주잖아요. 혀가 꼬일 대로 꼬여서 답지 않게 가끔 말도 더듬구요. 다음 날이나 다다음날에 기억하는 거라곤 술에 엄청 취해 있었다는 감각정도라도 괜찮습니다. 다만 우리라서 좋았다는 느낌. 조금은 진정이 되었다는 느낌. 딱 그 정도면 충분한 거죠. 어디라도 털어놓은 뒤에는 한결 가뿐해진다면 그걸로 좋아요.

 본인이 말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정말 입밖을 떠난 나쁜 것들은 전부 흔적도 없이 지워졌으면 좋겠어요. 가장 성능이 좋다는 지우개 회사를 찾아가 볼까요. 혹시 비법 같은 거라도 있지는 않으려나 싶어요. 저는 그 지우개를 얻으면 당신 이부자리부터 찾아가려고 해요. 꿈을 꿀 때마다 쓱쓱 지워낼 겁니다. 중간에 깨지 않도록, 얕게 자는 일은 없도록 말이죠. 깊게 깊게 자고 일어나면 입천장이 매끈해지고 비가 내리고 있을 거예요. 그때 같이 창가에 귀 기울여보지 않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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