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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유 Oct 17. 2024

나아가기


이제부터 어디로 걸어갈래, 하고 물으면


나는 답하지 않았어.


 발걸음을 더 이상 떼지 않아. 아무 말 없이 서 있을 뿐이지. 발끝이 닿는 땅은 나를 가르치는 법이 없어서. 결국 어디라도 좋아. 길은 스스로 나뉜 적 없다는 걸 아니, 막다른 길조차도 무언가로부터 시작되기는 하였다는 진실을 알고 있니.


 바람이 불어오고 나무들이 어디로든 흔들려. 잎사귀가 세차게 부딪히는 풍경을 가만, 바라보자. 그 끝에 남는 빈 가지나, 바닥에 수북이 쌓인 나뭇잎 말고, 흔들리는 풍경 자체를 보기로 하자. 이렇다 할 규칙도 없이 무작위로 진행되어서 경계라는 게 모호해지는 공간.


근처에서는 바다의 소금기가 버석거리고, 풀내음도 진하게 나.


돌아갈 수 없고 돌아갈 필요도 없어

그저 어느 쪽으로든-


발끝이 흐릿해져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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