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이 올라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더 오래 아플 수는 없어서 병원에 갔다. 가로로 쭉 긴 의자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자꾸 입 밖으로 아픔을 뱉어내는 사람들. 평소에는 잘 내지 않는 목소리일 텐데, 아플 때만 의지와 상관없이 나오는 것 같다. 저 사람이 말을 할 때는 어떤 목소리일까, 궁금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데 옆에서 또 콜록. 콜록. 아픈 사람들이 왔던 순서대로 들어갔다가 차례대로 나갔다. 진료를 받기 위해 잠시 진료실 바로 앞에서 대기할 때 앞사람의 아픔은 제법 큰 아픔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이렇게 누군가의 아픔을 멋대로 엿들어도 될까.
의사는 쇠막대기를 코랑 목구멍에 집어넣고 들여다봤다. 목은 안 아프냐길래 괜찮다고 했다. 코도 목도 많이 부었단다. 그런가요. 기침은 안 해요? 예, 기침은 안 합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소리 없이 아프려나 보다. 주사 맞고 갑시다. 네. 엉덩이가 뻐근했다. 나는 몸이 뜨겁다는 거, 머리가 조금 아프다는 것 말고는 잘 모르겠는데. 목이야 자주 붓곤 했으니까 역치가 높아졌나 보다. 바깥바람이 차다. 슬리퍼를 질질 끌며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열고 들어오니까 바닥에 널브러진 것들이 많다. 공벌레처럼 몸을 말고 30분 정도를 바닥에 누워있었다. 혓바늘이 난 혀를 치아에 가져다 대며 열이 서서히 온몸으로 피어오르는 걸 느꼈다.
어느새 이불속으로 몸을 옮긴 나는 번데기처럼 몸을 돌돌 말고,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방 안의 무거운 공기를 들이마셨다.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가, 잠깐이라도 알림이 울리면 답을 해야 할 테니까, 무음모드를 해두었다. 소리가 없는 감기는 아무도 모르게 나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으면,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나조차도 잊을 수 있겠지. 머릿속은 여전히 뿌옇고 이불속에서 손발은 한껏 뜨거워졌다.
눈을 떴을 때 해가 다 가라앉아 어두웠고 머리맡에 놓아둔 핸드폰 화면만이 밝게 깜빡이고 있었다. 손을 뻗어 화면을 바라보다가 다시 침대에 손을 내렸다. 단순한 감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디서부터 아프기 시작했을까. 오래된 무언가가 이제야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