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을수록 물건이나 사람을 내 영역 안으로 들이는 일에 신중해진다. 몇 번인가 깊은 밤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빛이 전부 가라앉고 난 뒤에도 창문을 여는 일은, 그 문 너머로 무엇을 들여놓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내 손안에 있지 않은 모든 것들이 지닌 경계.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 얇고도 낮은 파동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나는 서둘러 창문을 닫는다. 손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의 잔여, 여전히 차고도 부드러운 기운이 블라인드 커튼 사이를 툭툭. 무심하게 흐른다.
차마 손끝으로 헤아리지 못한 여백들. 그 여백 속에는 어떤 날들의 무게와 냄새가 잠들어 있을지. 바람과 함께 지나온 사람들과, 이제는 희미해져 잊혀가는 얼굴들. 다가와 닿기 전 사라진 눈동자들 속에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 나이가 들면서 모든 것은 더 멀리 두고 보아야 할 대상으로 변해 가는가 보다. 닿을 수 없는 거리의 안전, 그 틈 사이에 나를 가둔 채 보호하고 위협한다.
어느 날은 거울 속의 내가 그들과 너무 닮아버린 것을 알아차린다. 얼굴 한 구석에 남은 상처와 기억에서 지워진 반쪽짜리 미소. 시간은 모든 것을 그 자리로 두지 않고 밀어내 버린다. 거울 속의 내가 아닌, 그 너머에 놓여있는 채 남아 있는 것들이 있다. 나와 한때 이어져 있던 것들. 그런데도 나는 손끝 하나 들여놓지 못하고 서성인다.
가끔씩 들여놓은 것들이 무겁게 자리 잡은 것을 알게 될 때마다, 나는 한 발 더 물러서게 된다. 다가온 것들이 차가운 돌처럼 내려앉은 방 안. 벽에는 잊고 있던 자국들이, 손톱 끝으로 남겨진 흔적들이 가득하다. 그 흔적들을 보며 무슨 말들이 여기서 지워졌을까 생각해 본다. 내게 남아 있는 시간 속에서 이 흔적들은 점점 더 희미해지겠지만, 어떤 것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더는 닿을 수 없는 거리에서 그들과 나 사이의 벽이 쌓여간다.
여느 날처럼 자리에 누워 창밖의 어둠을 응시한다. 어떤 물건도, 어떤 사람도 이제는 무턱대고 들일 수 없는 내 작은 공간. 때로 너무나 좁고 숨 막히지만, 유일한 안식처로 남는다. 조심스레 다시 창문을 열었다가 곧바로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