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10킬로를 채웠다. 가끔 생각이 너무 많거나 생각이 너무 없을 때 앉아만 있으면 심연까지 침잠해 버려서 정해놓은 거리만큼은 뛰거나 걷거나 해본다. 그게 보통 10킬로였다. 한참을 혼자 바람을 슁슁 가르다 보면 작은 점처럼 흩어져 있던 잡생각들이 점차 하나로 모이기 시작한다.
등을 타고 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11월이 되었는데 반팔을 입고도 되레 딱 적당하다-라는 느낌이 든다는 건 무척 이상한 일이다. 어쨌건 반팔에 긴바지, 운동복을 갖춰 입고 길을 나섰다. 꼭 붙은 사람들 옆을 가로질러가면서 한발 한발 다음을 향해 내디뎠다.
햇빛이 따사롭게 물가 위에 동동 떠있을 때, 순백의 오리들을 보았다. 부리와 다리만 노랗게 내민, 검고 깊은 눈을 가진 모습. 그중 단연 눈에 띈 건 조금 멀리에 있는 무리들로부터 떨어져 나와서 꼿꼿한 자세로 강을 바라보는 한 오리였다. 무얼 바라보고 있을까. 나 말고도 오리를 찍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어떤 장면에 집중하고 있을까. 확대를 했다면 얼마큼의 배경을 쳐냈을까. 가장 중심에 있는 것과 가장 바깥에 있는 대상은 뭘까.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뭘까. 무엇이 가치가 있을까. 나도 오리를 보며 배운다.
세 바퀴 정도 돌면서는 봤던 사람들을 자꾸자꾸 마주쳤다. 괜히 내적친밀감이 들어서, 반가웠다. 저 사람도 아직 가지 않고 남아있었다니. 느린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여유 속에 있어서 급급하지 않았던 거였나 보다. 그렇다면 조금 즐겨도 되지 않겠나.
벤치에 앉아 애인이 건넨 손 편지를 읽고 있는, 또 자신이 쓰고 애인에게 건넨 편지를 읽히고 있는 연인을 보았다. 갈색 토끼가 하모니카를 부는 아저씨를 총총거리며 따라다니는 신기한 광경도 보았다. 앞머리에 똑같이 생긴 헤어롤을 말고 똑같은 자세로 있는 학생들도 보았다. 적당히 받을만한 사람들을 골라내어 전단지를 건네는 할머니도 보았다. 손을 꼭 붙잡고 아주 천천히 걷는 노부부도 보았다. 손목에 바른 향수의 향이 내내 기분 좋게 났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뭐랄까, 피부가 자꾸 건조했다. 손등으로 만져보니 아주 미세한 모래들이 얼굴에 잔뜩 묻은 것 같았다. 그리고 신발 안에는 바스러진 낙엽이 있어서, 흰 양말이 얼룩졌다. 뛸 때는 몰랐는데, 멈추었을 때 알게 되는 것도 있다. 그리고 짧은 시간에도 많은 흔적을 남기는 것들도 있다. 체력이 좋은 사람은 아니라서 한 번씩 이렇게 무리하고 오면 금세 나른해진다. 반쯤 졸면서 글을 적는 중이다. 조만간 다시 잔뜩 묻히고 와야겠다. 아주 작은 것들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