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다리가 힘없이 내려앉았다. 손끝에 닿는 금속 프레임은 차갑고 매끄러웠지만, 끊어진 경첩 부분은 거칠게 튀어나와 있었다. 고쳐질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은 그 거친 마감에서 끝이 났다. 안경을 책상 위에 놓은 채로 “이건 어디서 수리해야 하지?” 혼잣말이 새어 나왔다.
몇 시간째 고쳐보겠다고 드라이버를 들고 씨름했지만, 손은 점점 아프고, 렌즈는 더럽혀지기만 했다. 방금 생긴 손자국과 시간에 걸쳐 생긴 스크래치로. 한숨을 쉬고, 안경을 손바닥에 올려다보며 멍하니 생각했다. 망가진 건 단순히 물건이었는데, 이게 왜 이렇게 날 짜증 나게 만드는 걸까.
“야, 그냥 새로 사,” 친구가 조언하듯 말했다. 근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비싼 값을 치르고 산 물건이기도 했고, 나름대로 추억이 깃든 안경이었다. 첫 아르바이트비로 산 건데, 그때 나는 세상을 더 선명하게 본다고 설레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안경이 흐릿하게 보이는 건 내 시력 때문이 아니라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에 앉아 있는 동안에도 안경 생각만 했다. 강의에 집중하지 못하고, 핸드폰으로 안경 수리점을 검색했다. 검색창에 ‘가까운 안경원’을 치고 나서 내 삶도 이렇게 검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고민이 있을 때마다 주소나 답이 뜨면 얼마나 간단할까. 근데 항상 어렵고, 답은 주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야, 그 안경… 너 그거 고친다고 뭐가 바뀌는 건 아니야.” 친구가 점심 먹으면서 툭 던진 말에 뭔가 뜨끔했다. 맞다, 단순히 안경일 뿐이다. 그런데도 이 부러진 프레임을 보면서 어딘가 나를 비춰 보는 것 같았다. 고쳐질 수도 있지만, 어쩌면 더 이상 고치기엔 늦은 것처럼 느껴지는.
밤에 방으로 돌아와 안경을 손에 들었다. 책상 위에는 어지럽게 늘어진 연장들이 있었다. 작은 나사들, 드라이버, 그리고 쓸모없어진 접착제. 렌즈를 빼서 한참을 들여다봤다. 불투명한 렌즈를 닦으면서, 문득 깨달았다. 이걸 다시 쓰지 않아도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새로운 안경을 사는 게 마치 새로운 시작이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음 날 아침, 안경을 쓰레기통에 조심스럽게 놓았다. 그러곤 곧장 새 안경을 사러 갔다. 세상이 갑자기 맑아지는 건 아니지만, 뭔가 조금씩 선명해질 수는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