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기사님 차가 굉장히 넓네요.” 운전에 집중한 택시 기사는 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했다. “에, 손님. 다 도착했심더.”라고 말하며 뒤를 돌아 카드를 건네받으려던 그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가죽으로 된 핸드백만 덩그러니 놓인 걸 보며, “이.. 이게 무슨 일이고.” 목소리를 떨었다. 뒤에서 경적을 울려대는 차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길가로 더 붙은 뒤 그는 다시 좌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가 앞을 보았다가를 반복했다. 눈을 비벼도 보았다가, 투박한 손으로 나의 가방을 쥐고는 요리조리 살폈다. 자신이 헛것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 영문을 알 수 없는 행동에 나도 깨닫게 되었다. 내 몸이 작아졌다고. 그것도 그냥 작아진 게 아니라 아주아주 작아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팔과 다리는 실핀을 구부려 놓은 것처럼 가늘었다. 택시를 타기 전 점심을 잔뜩 먹은 탓에 안전벨트가 답답하게 느껴졌는데 오히려 헐렁해져서 두 팔을 벨트 위에 두어야 안전했다.
택시 기사는 갓길에 멈춰 서고는 결국 차량 뒷문을 열어보았다. 갑자기 불어오는 강한 돌풍에 나는 차 시트에서 떨어져 나와 바람에 실렸다. 몸이 가벼워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빌딩 사이를 부유하며 사람들의 머리 위로 스쳐갔다. 바람에 몸이 이리저리 흔들렸고, 멀리 보이는 간판과 표지판이 점점 가까워졌다. 나는 순식간에 창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카페 안은 따뜻하고 아늑했다.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 커피 머신에서 나오는 증기 소리가 어지럽게 섞였다. 나는 바람의 흐름을 따라 천천히 카페 안을 맴돌았다. 바닥이 너무 멀게 느껴져 내려가고 싶지 않았지만, 바람이 약해지며 점점 아래로 내려왔다.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 노트북을 두드리는 손들, 그리고 찻잔에 스며드는 향기까지 모든 것이 거대하게 느껴졌다. 그중 한 여자가 찻잔 옆에 작은 꽃을 올려두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찻잔으로 향했다. 나를 쫓아오는 미세한 바람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마치 그곳이 내가 도착할 곳이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나는 찻잔 옆으로 내려앉았다. 찻잔에 담긴 녹차가 잔잔히 흔들리며 빛을 반사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이 나를 숨겨줄 유일한 장소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찻잔 가장자리를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향기가 온몸을 감싸며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여자가 돌아왔다. 그녀는 조용히 찻잔을 들었다가, 물속에서 잔잔히 흔들리는 나를 발견했다. 그녀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더니, 찻잔을 내려놓고 뚜껑을 반쯤 덮어두었다.
잔속의 물결 속에서 내 몸은 서서히 불꽃으로 변해갔다. 따뜻했던 물이 점점 달아오르며 피부를 스치는 열기가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마치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감각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그 흐름에 몸을 맡겼다. 빛과 열이 내 안에서 피어나며 나를 감쌌고, 더 이상 이전의 형태를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불꽃은 잔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작은 불빛들이 공기 중으로 퍼지며 나를 가볍게 만들어갔다. 손끝, 발끝, 그리고 나의 중심까지도 모두 빛 속으로 녹아들었다. 현실과 꿈의 경계가 희미해졌다. 그저 부드럽게 타오르는 불꽃과 함께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