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첫 퇴사
"또 무슨 말을 하려고 그렇게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어?"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야근하는 사무실에서 1대 1 미팅을 요청하자 대표님이 장난 섞인 말로 나에게 말을 건넸다. 바쁜 일정에 대표님은 시간 절약을 위해 사무실에서 얘기하자는 요청이 거절당하자 대표는 분위기를 풀 겸 농담을 던졌다. "어마어마한 성과가 있나 보지?' 그 농담은 안 그래도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해야 하는 나에게 무거운 부담감을 얹어줬다. 회의실로 들어와서 당차게 말했다.
"회사를.. 나가고 싶습니다" 몇 달 동안 고민했던 말인 만큼 멋있고 젠틀하게 말하고 싶었으나 앉자마자 급하게 내뱉었다. 왜인지 모르는 죄책감과 부담감이 나를 잡아먹을 듯 다가와서 먼저 뱉어버리고 싶었다. 잃어버린 눈의 초점을 다시 대표의 얼굴로 옮기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어색하고 차가운 공기로 가득한 회의실에서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이유를 알기 위해 복잡한 머릿속에 숙제를 더했다. 내가 회사에 처음 들어왔을 때 공유 오피스에 있는 모든 사람들한테 당차게 인사를 한 기억 때문에? 처음 만들어본 작은 성과를 이루고 성공을 과장하면서 팀원들과 웃었던 술자리가 생각나서? 아니면 한 명 한 명 정성스레 쓴 편지와 와인을 주는 마음 따뜻한 대표에게 미안해서였을까?
회의실에서의 대표와 나는 2년 전 그대로였다. 10명 남짓 정도의 회사에서 인생 얘기도 나누며 즐겁게 일했는데 이제는 마주 보며 퇴사를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 서글펐다. 스타트업인 만큼 적은 사람들과 일하며 정이 들었던 탓에 더욱더 미안하게 느껴졌다. 나는 내가 느꼈던 감정들에 대해 대표에게 서술했다. 퇴사라는 큰 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나의 심리상태를 변명하듯 늘어놓았다. 내가 퇴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상당히 복합적인 이야기다. 커리어의 방향,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 그리고 가족 사정 등등 따분한 이유가 있겠지만 제일 큰 이유는 '나'를 찾고 싶어서다. 다 큰 성인이 이제 와서 '나'를 찾고 싶다니 철이 없다고 느껴질때도 있다. 그러나 일을 하면서 생긴 의문의 응어리는 가슴속에 남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나를 너무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까지.
아쉬움과 격려가 오가는 대화를 마치고 나니 회의실 공기가 따뜻해진 것을 느꼈다. 새삼 인간의 감정은 이기적이구나 느끼며 안정된 호흡을 내뱉었다. 그날 이후 나의 퇴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말하는 것을 왜 그렇게 고민했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 평온하게 마무리되었다. 한글에는 '시원섭섭하다'라는 표현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문득 어릴 적 상사에게 받는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던 누나에게 "그럴 거면 그냥 퇴사하고 좀 쉬어"라고 철없이 말하던 내가 생각나서 누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퇴사가 이렇게나 생각할 것이 많고 심오하며 복잡한 일이라니 이 과정을 겪은 내가 대견하기까지 느껴졌다. '나는 퇴사를 경험한 사람이다!!' 라며 자랑하고 다니고 싶을 정도로 큰 일을 한 것 같고 두근거렸다.
2주가 지난 지금은 오바스러운 감정들을 삭히고 차분히 글을 쓰고 있다. 2년 뒤에는 나는 어떤 모습으로 첫 퇴사를 기억할까? 20년 뒤에는 기억이나 할까 싶다. 분명한 건 이 일도 고등학교 졸업하는 순간과 비슷한 감도로 기억하지 않을까. 나는 이런 과정들이 우리가 많은 것들을 경험하며 익숙해지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경험들이 너무 많다. 또 그 경험들을 너무 두려워한다. 그러나 상상속의 두려움에 갇혀 하고싶은 일을 못한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후회만 쌓일것이다. 하고나면 별일 아니다. 인생에서 익숙해지고 싶은 경험들을 찾아 결심을 할 나와 당신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