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 알아가기
점심시간 스타벅스에서 주문을 하는 와중 친하게 지내는 팀원의 추천으로 주문을 해봤다.
자몽 허니 블랙티 - 시럽 빼고 소스 두 번 추가해주세요
크게 다르진 않았지만 나를 위해 커스터마이징 된 음료를 마시는 것 같아서 마치 특별한 맛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커피를 마시던 중 맛있냐는 동료의 물음에 답을 하면서 뭔가 자신만의 취향을 가진 동료가 멋있어 보였다. 카페를 가든 음식점을 고를 때나 장소를 고를 때마다 자기만의 확고한 취향으로 추천을 해주는 팀원을 보면서 부러워졌다.
나는 나만의 취향이 없었다. 곰탕에 깍두기 국물을 넣어 먹는 아빠나 회를 제일 좋아하는 엄마를 볼 때마다 신기했다. 나는 딱히 제일 좋아하는 음식도 없고 무엇을 할 때 내가 제일 기쁜지 몰랐다. 항상 같이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가 중요했던 것 같다.
어렸을 때의 나는 친구들을 상당히 좋아했다. 거의 의존하다시피 좋아해서 영어단어 시험에 떨어진 친구가 붙을 때까지 2시간을 기다렸다. 집에 혼자 가는 10분의 시간이 싫어서 기다렸다. 게임도 혼자 플레이하는 것을 싫어했다. 무조건 친구들과 익명의 팀원이 있어야 마음이 편했다. '나'를 믿는 것보다 실력 좋은 친구를 믿는 것이 더 안심됐다. 혼자 밥 먹는 것은 상상도 못 했고 학원과 학교도 무조건 친구들이 많은 곳으로 가려했다. 나와 반대로 혼자만의 취미가 있고 스케줄이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그렇게 자라다 보니 주변에게 나를 맞추는 것이 편했고 나의 호불호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선택하는 길로 가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고등학교까지는 이런 성향들이 문제라고 생각된 순간이 많이 없었다. 항상 친구들이랑 있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이 없어서였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군대에 다녀오고 각자의 길로 흩어지면서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졌다. 사실 이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게임을 그렇게 좋아했지만 혼자 하는 게임은 재미가 없어 오래 못 갔다.
평생 재미있을 것만 같던 게임이 재미가 없어지는 순간부터 나의 수동적인 자세가 문제라고 인식되었다. 그러나 연애와 일을 시작하면서 '나'에 대해 생각할 의지가 금방 사라지곤 했다. 굳이 노력 안 해도 항상 누군가와 시간을 보내고 행복하다고 느꼈으니까. '나'에 대해 되돌아보는 일들은 항상 어떻게 시작하는지 감도 안 잡힌 탓에 '언젠간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미뤄졌다.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자 퇴사를 할 때쯤 연애도 끝이 났다. 둘 다 썩 좋은 소식들은 아니었으나 스스로를 돌아보기에는 좋은 시간이라 생각되어 여러 가지를 경험하기로 결심했다. 평소의 나였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선택들을 했다. 나는 보통 게임을 좋아했기에 무슨 활동이든 싸고 금방 끝나는 것들만 선호했다. 금액이 싸야 남는 돈으로 피시방을 갈 수 있고 금방 끝나야 게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돈이 들고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면 가지 않는 것이 몇 없는 나의 취향 중 하나였다.
경험을 하지 않으면 진정으로 내가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모른다는 친구의 말에 동기부여를 받아 현재는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있다.
- 친구와 유명하지 않은 해외여행 가기
- 개인전시 알바
- 요가학원 등록
- 유명 페스티벌 음향팀 알바
- 내가 좋아하는 래퍼가 출연하는 사람 많고 좁은 클럽 가기
내 성향과 정반대의 일들을 경험했다. 기회가 생기면 바로바로 실행에 옮겼다. 보통 이런 경험들은 일을 할 때 엄두를 못 낸다. 쉬는 날에는 내가 좋아하는 일들만 해도 시간이 부족한 것을 변명삼아 가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에 대해 거리낌이 많이 없어졌다. 팬클럽에 가입하고 콘서트에 가는 것이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던 나는 어리석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나 자신의 뒤통수를 한 대 때리고 싶어졌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공연을 직접 보는 순간 새로운 감각이 깨어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누군가 콘서트를 보러 가자고 한다면 이제는 흔쾌히 같이 가자고 말할 것이다.
페스티벌이 어떻게 준비되는지 과정에 참여하면서 여러 직군들의 일터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니 앞으로의 직업을 정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요가를 하면서 내 몸의 안 쓰는 근육들을 알아가면서 심리적인 나의 모습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나에 대해 많이 알아갔다. 뻣뻣하기 대회 나가면 아마 내가 1등 하지 않을까 싶다.
영상으로 보는 것과 현장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천지 차이였다. 현장의 공기, 분위기 그리고 내가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느낌이 직접적으로 느껴졌다. 피시방 좀 그만 가고 제발 밖으로 나가서 놀라는 아빠의 잔소리의 이유를 너무 늦게 깨달았다. 사실 이유보다는 나가도 별 것 없을 거라는 나의 착각 때문에 말을 듣지 않았다. 뒤통수 한 대 더!
물론 위에 나열된 것들을 경험했다고 해서 인생이 극적으로 바뀌진 않았지만, '나'를 의식하고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행위는 천천히 많은 변화를 일으킨다. 나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을 겪으면서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의 의미를 조금씩 알아갔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 장소, 취미 그리고 가치관을 아는 것은 인생을 더욱더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도와준다. 어렸을 적 친구에게 있던 삶의 무게중심이 나에게로 옮긴 과정처럼 앞으로 나를 위한 변화가 있을 거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