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반스토니언 Aug 06. 2024

로열달튼의 피겨린

미국에서 만난 엠과의 소중한 인연

우선 우리 부부의 친구 M(이하 엠)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그녀와 나는 신학교의 입학 동기였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입학처장 집에서 열린 입학생 파티 때였다. 나는 그때 혼자 그런 파티에 가는 게 꺼려졌지만 이럴 수록, 첫 모임부터 야심차게 나가봐야한다고 차도 없는데 지인에게 라이드를 부탁해서 다녀오게 되었다. 역시나 한인은 한 명도 오지 않았다. 나는 음료수를 한 잔 들고 이 방 저 방을 구경삼아 다니면서 누군가와는 대화를 해야하는 분위긴데 하며 조바심이 났다. 그러던 중 안경낀 처진 눈에 고른 치아를 드러내며 밝게 웃는 엠과 마주쳤고 때마다 적절한 리액션을 하며 내 이야기를 너무나 잘 들어주는 엠과 같은 ‘외국학생’으로서 공감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무 리액션이 좋은 엠에게 그만 처음부터 헬조선 이야기를 하게 되고 말았다. 내 긴 한탄에도 엠은 짜증내거나 지루한 티를 내지 않고 잘 들어주었다. 결국 나는 나중에 사과를 하게 되었지만. 한가지 영어대화 팁인데, 사실 모든 대화의 경우에 해당되는 일이지만, 상대방과 이야기할 때는 의도치 않게 갑자기 자신의 깊은 이야기나 슬픈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면 상대방이 당황한다. 물론 긴장한 상태에서 아무 이야기나 나오는대로 던지고 봐야하는 외국인 처지에 완벽을 바랄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나의 대화분량과 상대방의 분량이 매 대화주제마다 비슷하도록 균형을 잘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 


엠은 프랑스 낭트에서 온, 마다가스카르 출신 유대인 부모님을 둔 똑똑한 학생이었다. 백인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흑인도 아닌, 인종을 종잡을 수 없는 친구였다. 엠은 고전어, 즉 그리스어, 라틴어 등을 읽을 수 있었고, 거기에 모국어인 프랑스어와 독일어 조금, 영어는 거의 능통하게 하고 있었다. 인문학계에서 영어, 프랑스어, 독어를 다 잘하면 거의 박사과정에서 날아다닌다고 할 수 있다. 엠은 이미 석사과정부터 뚜렷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엠은 학비가 무료에 가까운 프랑스에서 박사진학을 할 수 있었지만, 고리타분한 학문 분위기와 시스템에 질려 미국까지 찾아온 사례였다. 


엠은 항상 밝게 웃으며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했고 진심어린 반응을 하곤 했다. 실력에 인덕까지 겸비한 수재였다. 누구든 엠을 만나면 그녀 특유의 분위기를 눈치 채게 된다. 엠은 말소리가 부드러웠다. 미국 젊은이들 특유의 소란스러운 영어를 하지 않았다. 적당히 프랑스어 억양이 섞인 그의 영어는 들을 수록 편안한 특이한 매력이 있었다. 


나는 입학 첫 학기부터 ‘고대 그리스도교 전례 문헌 해제’라는 박사과정 세미나를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듣게 되었다. 기원후 1~4세기 로마제국 전역에서 발굴되는 그리스도교 문헌들 중에 전례(예배)에 중요한 문헌들을 하나씩 탐구하는 수업이었다. 이제 미국에 막 온 석사생이 박사과정 수업을 듣는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매주 단행본 하나씩을 읽어내는 수업이라, 따라가기도 벅찼다. 거의 헤매는 수준의 내가 기댈 수 있었던 것은 엠의 꼼꼼한 필기노트였다. 매주 월요일 오후에 세시간씩 진행되는 수업을 마치고 나면 녹초가 되어 엠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유학생 신세한탄을 하면서 말이다.


나는 엠에게 염치불구하고 내가 쓴 글들을 한 번씩 봐달라고도 했다. 이렇게 신세를 많이 진만큼 나도 엠을 도와주었다. 엠은 내게 자신의 프랑스 친구가 잠시 애틀랜타를 들러 가는데 ‘카우치 서핑couch surfing (거실 소파에서 잠자는 것)’을 우리집에서 해도 되냐고 물어서 그러라고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엠은 우리에게 동네 프랑스 음식점에서 우리에게 비싼 밥을 사주었다. 그게 미안해서 우리도 엠을 우리집 식사에 초대하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두 집을 오가며 우리는 작은 파티를 즐겼다. 


또 한 번은 비오는 날에 하교길에 우연히 자기 집 문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 엠을 발견했다. 왜 그러냐 하니 갑자기 열쇠로 문이 열리지 않는단다. 나는 몇 번 돌려보고 며칠 전에 인터넷에서 본 조언이 생각났다. 집에서 윤활유 스프레이를 가져와 열쇠구멍에 치익 뿌렸더니 시커먼 물이 흘러나오면서 귀신같이 찰칵 문이 열리는 것이었다. 21세기에 무슨 열쇠냐 하겠지만 희한하게도 미국 사람들은 키패드 같은 건 사무실에서나 쓰는 거고, 열쇠가 더 보안성이 좋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엠이나 나나, 고루한 문헌 탐구를 즐겼기에, ‘고전classic 문화’사랑이라는 점에서 통하는 부분이 많았다. 나는 모든 고루한 것들에 흥미를 가지는 스타일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초대할 때, 그냥 피자나 시켜서 먹자 한 적이 없고 없는 형편에도 상차림을 격식에 맞게 했다. 우리집에서는 차를 마시려고 중고로 20달러에 산 티세트에 아기자기한 간식을 곁들여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함께 먹고 마셨다. 


새해가 다가왔을 때, 우리 부부는 한 학기간 엠에게 신세진 것과 든든한 우정에 대한 감사로 선물을 하기로 했고, 엠이 딱 좋아할 만한 선물을 아울렛에서 골랐다. 로열달튼에서 나온 우아한 파란색 드레스를 입은 피겨린, 즉, 도자기 인형이었다. 우리는 나름 멋지게 차려입고 새해 파티를 하자고 했고, 우리 부부는 주변의 핀잔과 만류에도 꾸역꾸역 가져온 결혼식 한복을 입었고 엠은 에이라인의 긴 스커트를 입었다. 그리고 선물을 건네 주고, 같이 소파에 앉아 찰칵. 그 저녁날은 영원한 추억으로 남았다. 


그 자리에서 엠은 매우 흥미로운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내가 엠에게 ‘그런데 너는 어떻게 이렇게 우아한 태도를 배우게 됐어?’라고 물었다. 엠은 사실 자신은 어머니로부터 ‘숙녀가 되는 법’과 같은 책을 하나 받아서 열심히 읽고 혼자서 익혔다고 한다. 드디어 엠이 가진 분위기와 태도에 대한 수수께끼가 풀렸다. 엠은 말 그대로 클래식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석사과정이 끝이 보일 때, 엠은 수월하게 에모리 대학 종교학부 고대그리스도교 역사 전공 박사과정생으로 발탁되었다. 전액장학금에 적지 않은 생활비와 조교수입이 있는 자리였다. 우리는 또 함께 합격을 축하했다. 


많은 한인 유학생들이 유학 와서 하는 실수 중 하나가 이런 것이다. 오로지 영어 배우는 일에 몰입하다보니 영어 매체만 듣고 보고 어떻게든 미국인, 그중에서도 발음이 알아듣기 쉬운 백인들 주변을 빙빙 도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을 영어 배우는데 이용하려는 이방인을 껴주지 않는다. 일단 공통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슷한 처지의 영어 못하는 외국학생들끼리의 우정? 그것도 아프리카계 유대인 학생과? 참 건질 것이 없는 쓸데없는 우정이라고 생각할 만 했다. 영어도 못하는 사람들끼리 만나 무슨 공통점이 있고 무슨 배움이 있겠어? 


신학교 측에서는 모든 외국학생들에게 미국인 언어 파트너를 붙여주었다. 그런데 이 연결을 해주는 일은 학생처에서 일하는 한인학생회장이 주관했는데, 하루는 내게 와 은근한 목소리로 ‘부탁이 있는데요… 혹시 X랑 언어파트너 하실 수 있으세요?’라고 물었다. 너무 주저하며 말하기에 무슨 큰 부탁인가 하고 긴장했다가 말았다. 알고보니 X는 비백인 필리핀계 미국인이라고, 다른 한인 신학생들이 이런 사람(?)과 연결되면 항의를 하곤 한다며 난처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때 나는 이미 엠과 신뢰깊은 우정을 누리고 있었으므로, 흔쾌히 그러자고 했고 한 학기간의 만남은 즐겁게 이어졌다. 


어떤 소셜미디어 짧은 동영상에 한국인이 미국에서 차별받는 내용이 있었다. 그 답글에는 당연히 분기탱천한 한국인들이 저주의 댓글을 달고 있었는데, 공감 상위 영어 댓글이 하나 있었다. ‘한국인들이 인종차별을 논해? 한국 가서 살아봐. 진짜 인종주의가 뭔지 잘 배우게 될테니까.’ 한국에 살아본 외국인들이 주로 공감했을 댓글이었다. 영어 단어에 shallow라는 말이 있다. 깊이가 얕다라는 뜻인데 사람에 대해 쓰면 얄팍하고 경박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인종주의적 한인들이 그렇다. 전형적인 강약약강이다. 백인들 앞에서는 아양떨고 동남아나 아프리카 사람은 무시한다. 그것도 예수의 무조건적인 사랑, 아가페 사랑을 공부한다는 신학생들이 그렇다니 할 말이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크게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영어를 발음 깨끗(?)한 백인에게 배우면 영어를 잘하겠지하는 것이다. 아니, 영어는 발음의 문제가 아니고 소통의 문제고 공감의 문제다. 발음 배울 시간에 차라리 폭넓은 교양을 쌓았으면, 인덕을 좀 배웠으면 싶다. 일부 영어유치원 출신 초등생들이 영어만 배웠지, 기본적인 인화가 안되서 힘들다는 초등교사의 한탄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인종주의에 반대했기 때문에, 그리고 희한한 고전애호 취미가 있었기에 엠과 깊이있는 우정을 누릴 수 있었다. 그게 내가 미국 유학 첫 2년 동안 배운 소중한 지혜다. 실력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 바로 그것.






사진출처- www.carousell.com


매거진의 이전글 모든 이의 마음의 평화를 위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