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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반스토니언 Aug 15. 2024

남부의 여왕, 애틀랜타여

서던리빙Southern Living의 진수

애틀랜타를 아시나요? 아마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다. 애틀랜타의 명물? 생각해보니 한인타운? 아마 한인에게는 번성한 한인타운이 가장 먼저 떠오를 듯 하다. 좀 나이 지긋한 분들 중에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를 감명깊게 보신 분들은 거기서 나오는 애틀랜타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갓 출산한 멜라니를 짐마차에 태워서 불 타 무너지는 건물을 배경으로 탈출하는 장면, 그곳이 애틀랜타다. 한때 남부군의 수도였던 곳. 그 유명한 코카콜라 본사와 박물관도 여기에 있다. 애틀랜타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대한항공과 공동경영계약을 맺은 델타항공의 본사가 있다. 한국 영화 ‘감기’같은 질병 재난 영화에도 종종 나오는 곳인, ‘질병예방통제센터’(CDC, Center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도 여기에 있다.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곳은, 미국 인권운동의 대부  마틴루터 킹 목사의 생가와 무덤이다. 


애틀랜타는 조지아주의 주도인데, 조지아 주 상징은 복숭아다. 딱히 복숭아가 맛있지도 않더구만 여기저기에 복숭아 붙인 이름들이 많았다. 그 중에 New Peachtree Road라는 길이 있었는데 나는 지나가면서, ‘여기 그냥 신도림로구만’하며 지나가곤 했다. 


나는 애틀랜타 하면 이케아가 떠오른다. 애틀랜타 이케아는 정말 크다. 우리 부부는 한국에서 결혼하고 유학때문에 바로 출국했기 때문에 우리의 신혼집은 애틀랜타에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신접살림이라고 할 만한 것들은 모두 이케아나 중고로 마련했다. 한여름 애틀랜타의 뙤약볕에 시내까지 가서 그 거대한 이케아를 뱅뱅 돌기를 여러번 한 끝에야 대충의 살림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때 그 큰 곳을 헤매느라 너무 힘들었던지라, 나는 지금도 이케아에 가면 나는 나무와 접착제 냄새를 참기 힘들어 한다.


우리의 신혼집은 에모리 대학교 근처에 하일랜드레이크 아파트에 자리잡았다. 미국이 처음인 우리에게는 온통 신기한 것 뿐이었다. 처음 미국에 도착해 계약서를 쓰러 아파트 관리사무실에 들렀는데 사무실이 마치 저택처럼 예쁜 건물에 있었다. 뒷마당에는 파아란 수영장에 볕을 받은 물결 무늬가 넘실대고 있었다. 헬스장도 있었다. 우와아 모든 게 별천지 같았다. 


우리 아파트가 특별히 호사스러워 그런게 아니라, 미국 더운 지방 아파트들은 대부분 야외 수영장을 부대시설로 가지고 있었다. 헬스장은 전국에 다 있는 편이다. 여름이면 빰빰빰 하면서 아파트에서 주최하는 풀파티가 열렸다. 디제이DJ까지 왔다. 신나게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흘러나왔다. 경품 추천도 하고 해서 우리도 거기에서 각종 음료니 아이스크림이니 맛보면서 몰랐던 이웃과 이야기도 나눴다. 그런데 아내가 경품에 당첨됐다! 50달러 아마존 상품권이었다. 시카고에 갔다 다시 애틀랜타로 돌아와서 살때는 다른 아파트에 살았는데 그곳은 풀파티 대신 푸드트럭이 오는 날이 있었다. 아파트 오피스에서는 아마도 그런 식으로 아파트 주민들이 서로 인사를 트고 살 수 있도록 배려하는 모양이었다. 


미국 아파트들은 도심지가 아닌 이상, 대부분 엘리베이터 없는 3층, 4층 정도의 높이다. 우리 집은 아파트 입구에 자리한 3층에 3층 집이었다. 발코니로 나가면 관리사무소와 하일랜드 호수가 보였다. 꼭대기층이다보니 천장이 매우 높아서 쾌적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살아본 애틀랜타는 위도가 33도로 제주도와 같고 시카고는 41도로 만주와 비슷하다. 극과 극의 날씨를 체험했는데, 시카고는 1년중 여름 두달 빼고는 계속 구름끼고 겨울에 가까운 날씨인데 반해, 애틀랜타는 2달 겨울 빼고는 모두가 화창한 여름 같았다. 야외수영장은 5월이면 열어서 9월, 10월까지도 운영한다. 성탄절날 25도여서 에어컨도 킨 적이 있다. 한겨울에도 장보러 오가는 길에 땡볕을 받으면 에어컨을 켜야하는 정도다. 


남부 아파트들의 특징은 수영장 외에도 발코니가 넉넉하게 마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발코니 라이프Balcony Life가 있는 것이다. 나는 우리집 발코니를 ‘볕마루’라고 이름하고 거기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케아에서 산 빨강과 파랑 의자를 놓고 작은 테이블과 화분을 가져다 놓았다. 나는 3월부터 가벼운 외투를 입고 나가 따스한 볕을 즐기며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커피도 마시고 맛난 간식을 먹었다. 


여름날에는 그러다 늦은 오후가 되면 먹구름이 끼면서 우르릉 쾅쾅 천둥번개가 치고 스콜같은 소나기가 매일 한 번씩은 엄청나게 쏟아지곤 했다. 그리고 다시 갠 말간 하늘. 새빨갛게 번져가는 저녁노을을 볼 때, 나는 휴대용 스피커를 가지고 나와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타라’테마곡을 틀어놨다. 웅장한 오케스트라 음악과 함께 영화에서처럼 저녁노을이 지는 걸 바라보던 시간을 잊지 못한다. 


저녁이 되면 시원한 바람이 분다. 미국 사람들은 애틀랜타가 덥고 습하다고 ‘핫틀랜타Hotlanta’라고 부르는데, 그래도 한국 습도는 절대 못 이겨서, 바람이 불면 시원하고 쾌적했다. 숲에서 불어오는 젖은 나무 냄새 나는 바람을 맞으며, 아내와 함께 맥주 한 잔에 김치부침개를 먹고 함께 재즈를 듣던 시간은 너무 소중했다. 애틀랜타란 우리에게 신혼의 추억이 깃든 영원한 기억이 되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너무 좋아해서 열 번, 스무 번도 넘게 돌려 봤다. 그래서 영화에서 나오는 타라의 집이나 ‘트웰브 오크스’같은 대저택이 어딘가에 남아 있을 줄 알고 찾아 봤다. 하지만 ‘타라’는 가상의 지명이고 영화장 세트였다고 해서 실망했다. 왜 이 좋은 관광자원을 안 만들어두나 했는데, 알고보니 그런 곳들을 대저택과 대농장이라 해서, Manor and plantation이라 부르는 곳들이 남부에는 엄청 많았다. 우리도 레트 버틀러의 고향인 찰스턴을 여행하면서 그런 근사한 대농장을 몇 군데 가봤었다. 


남동부는 영국계 이민자들이 세운 개척지라 영국계 문화, 유럽계 문화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고, 이 곳에서 호시절을 구가했던 대농장주들은 유럽 귀족 같은 삶을 살았다. 문화와 예의범절이 중한 동네였고, 실제로 ‘예절 교육원’같은 곳에서는 적절한 대화주제 고르는 법, 티타임이며 정찬을 하는 법 등을 가르쳤다. 집값도 저렴한 편이라서, 동서부에서 온 사람들은 같은 돈으로 눈이 휘둥그레질 법한 저택에서 살 수 있다. 맥시멀리스트인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모든 걸 제대로 갖춰 놓고 사는 사람들이 애틀랜타 사람들이었다. 내가 개인지도를 받았던 한 저명한 교수님은  집에 지도 받으러 갈 때마다 스타인웨이Steinway&Sons피아노를 쳐보이시곤 했었다. 다른 동네서는 개러지세일Garage Sale이라 해서 차고나 마당에 쓰던 물건을 팔곤 하는데, 여기는 아예 이스테이트세일Estate Sale, 저택영지세일이라 해서 저택들이 몰려 있는 주택단지에서 엄청난 고급가구(앤티크Antique)와 각종 진귀한 물건을 팔곤 했다. 그야말로 남쪽나라 생활, 서던리빙Southern Living의 진수였다. 


이 동네는 자연히 흑백문화가 완고하게 분리되어 있는데, 백인들이 주관하는 행사에 가면 그런 딜럭스deluxe한 생활스타일이 드러나는, 뭔가 제대로 되고 호사스러운 분위기가 늘 나곤 했다. 내가 다니던 신학교 백주년 행사는 말 그대로 파티의 연속이요 격조와 명예가 찬란한 행사였다. 연사로 온 에모리 대학교 총장은 우리가 자주 산책했던 캔들러 레이크 옆에 거대한 영국 튜더양식 저택인 룰워터하우스Lullwater House에 살고 있었다. 기부자들 행사나 신입생 학부모, 졸업생 만찬 등을 여기서 한다. 


피치트리 연합감리교회는 잘 사는 백인들이 많은 동네에 있었는데, 일요일이 되면 ‘선데이 베스트Sunday Best’라고 해서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아이들도 모두 긴팔 폴로 셔츠에 면바지에 구두까지 신고 교회에 왔다. 한 번은 이 교회에서 이웃초청행사를 하면서 행사 주제를 티타임으로 했는데, 집집마다 가지고 있는 정식 티세트 그릇들을 내놓아놨는데 그게 장관이었다. 황금칠로 번쩍이는 3단 티푸드 접시며, 아름다운 찻잔세트며, 모두 다른 냅킨 세트며, 볼거리가 천지였다. 


애틀랜타는 한마디로 양반문화가 살아 숨쉬는 미국의 안동,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집도 어쩌다보니 서던리빙의 일부나마 볕마루에서 풍족하게 누리고 즐겼던 듯 하다. 






사진- 전형적인 남부 대농장 저택(플랜테이션). 햇볕을 막기 위해 건물 주변을 발코니로 감쌌다.

Pixabay https://pixabay.com/photos/oak-alley-plantation-439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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