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리의 대향연
내가 ‘시카고 스타일 피자’를 처음 맛 본 것은 대학생 때 시카고에 여행 가서였다. 여행 ‘책자’(스마트폰이 없던 어느 고대시대에)가 안내한 어느 레스토랑에 혼자 가서 작은 피자를 시켜서 먹어봤다. 아마 딥디쉬Deep dish피자였던 모양이다. 피자를 먹겠다고 썰었는데 토마토 소스와 함께 토마토에서 나온 물이 흥건해서, 먹어보니 이건 뭐, 그저 토마토 밖에는 느껴지질 않아서 싱거웠다. 이게 뭐지? 이게 뭐라고 맛있다고 하지? 영 별로였다.
그러고 시카고에 살게 될 줄 누가 알았던가. 시카고에 살다보니 집 주변에 시카고 피자 체인이 두 군데 있었다. 하나는 ‘루 말나티스’였고 또 하나는 ‘지오르다노스’였다. 지오르다노스는 대로변 목 좋은 곳에, 붉은색 싸인이 굵직하게 빛나는 간판을 자랑하고 있었다. 루 말나티스는 주택가 이면도로에 넉넉한 야외석을 두고 있었다. 둘 다 그 크기로 보나 위치로 보나, 많이 사랑받는 가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루 말나티스는 주말에 몇 번 가보았다. 특히 날씨 좋은 봄날, 가로변 테라스에 앉으면 쏟아지는 햇볕 밑에 앉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지인들과 인사해가며 여유롭게 웃고 이야기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주문한 피자가 나왔다. 그 유명한 시카고 피자. 과연 이건 좀 다를까? 간판에도 다채로운 야채토핑이 표현되어 있었는데, 한 눈에 봐도 뭔가 풍성하니, 먹음직스럽게 야채토핑이 넉넉하게 올라가 있었다. 토마토소스에 야채와 모짜렐라 치즈가 ‘깊은’팬에 가득차 있었다. 손에 들고 먹을 수는 없는 피자였다. 포크랑 칼로 썰어먹는데, 내 눈엔 ‘야채 피자’로 느껴질만큼 야채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피자 도우에는 역시 물이 좀 있게 되고, 그러면 도우가 바삭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땡. 이 ‘야채전’은 내 스타일 아닌걸로.
지오르다노스를 갔다. 강렬한 붉은 네온사인이 마음에 들었다. 여기는 딥디쉬가 아니라 ‘스터프드stuffed’피자를 팔고 있었다. 스터프드는 ‘속이 꽉찬’ 느낌이 드는 단어다. 그 말답게 피자 도우 사이드 높이가 5 센티는 되어보이는, 파이 같이 단단한 도우에 속이 묵직하게 한가득 차 있었다. 썰어보니 모짜렐라가 어마무시하게 가득 들어있고 각종 야채와 이탈리언 소시지 등으로 속이 정말 꽉차 있었다. 이 피자는 한 조각 먹고는 더 먹을 수가 없었다. 너무 양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마 한 조각의 칼로리만 해도 엄청날 것이다. 이 피자는 속이 꽉차있음에도 도우가 바삭하고 물기가 별로 없었다. 딩동댕. 나의 시카고 피자를 찾았다!
영어 위키 백과에 보니, 시카고 스타일 피자는 1943년에 시카고의 피쩨리아 우노에서 처음 개발되었다고 한다. 루디 말나티는 이 피쩨리아의 주방장이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만의 레시피를 만들어 1971년에 ‘루 말나티스’피자를 시작하게 된다. 여기서는 위에서 묘사한 딥디쉬 피자를 팔았다. 1970년대 중반에는 스터프드 피자가 개발되었다. 이 피자는 이탈리아 포텐짜에서 먹는 부활절 파이에서 영감을 얻어 피자 도우 사이드가 높고 안에는 여러가지 재료를 넣어 요리하게 되어있는 피자다.
사진에 나온 피자는 딥디쉬에 가까운 깊이의 피자다. 시카고에 간다면 꼭 한 번쯤은 배부를 작정하고 가서 먹어보시길.
한국사람들이 그 좋아하는 ‘호텔’의 ‘조식부페’에 가면, 아메리칸/컨티넨탈 브렉퍼스트를 먹을 수 있다. 요즘은 그런 구분을 잘 안하지만 오래된 호텔 체인에 가면 이러한 구분을 볼 수 있다. 찾아보니 컨티넨탈이 주로 패스트리류의 빵(크롸상 등)을 서빙하는 것과 달리, 아메리칸은 구운 소세지, 베이컨, 계란, 해쉬브라운, 팬케이크, 와플, 토스트와 잼 등 좀 더 다양한 것을 서빙하는 것이라고 한다. 내 기억으로도 유럽 배낭여행 때 비엔나에서 베네치아로 넘어가는 기차에서 아침식사라며 바구니에 가득한 차가운 패스트리와 맛 좋은 커피만을 받은 기억이 난다.
사진은 와플하우스라는 미국 아침식사 체인인데, 미 중서부와 남부 고속도로 출입구마다 있는 체인점이고 24시간 운영하는 곳도 많다. 본사가 조지아주 노크로스에 있다. 가격은 매우 저렴하다. 참으로 투박스럽게 생긴 묵직한 하얀 머그컵에 한가득 뜨끈뜨끈한 커피를 부어준다. 솔직히 맛있는 곳은 아니다. 그냥 늘 거기에 있어서 아무 생각없이 들러 주린 배를 따뜻하게 채우기에 좋다는 것 정도. 그만큼 대중적인 곳이다. 여기에서 야간근무도 마다하지 않는 직원들 중에는 일한 돈으로 아이를 먹여살리거나 대학 등록금을 모으는 사람들이 많다. 2014년에 어떤 손님이 자신의 웨이트리스에게 천 달러의 팁을 준 적이 있고, 이를 반영하듯 2022년에도 어느 모임에서 웨이트리스에게 또 천 달러 넘는 돈을 팁으로 남기기도 했다. 미국 사람들의 기부정신은 이런 정신이 누구에게나 퍼지기를 바라며, 이렇게 받은 사람이 선행한 것이 뉴스로 자주 나온다. 그곳의 커피가 뜨끈하게 느껴지는 데엔 이유가 있는 법.
내가 아마 미국에 ‘단골집’이 있었다면, 그건 ‘디오리지널팬케이크하우스’일 것이다. 자주 하기 힘든 외식이지만, 적은 횟수에 비해 자주 선택지로 떠오르곤 했던 곳이다. 나는 이곳에 가면 수년 전 한국에서도 열풍이 있었던 ‘에그베네딕트’를 즐겨 시켜먹곤 했다. 거기에 또 빠지지 않는 것이 복스러운 생크림을 잔뜩 올린 딸기 와플. 거기에 달달한 시럽이 뿌려진 와플을 싫다할 수가 있을까. 에그베네딕트는 홀랜다이즈 소스가 간이 적절하게 되어 있고 수란은 역시 미국답게 튼튼하게 생긴 커다란 것이 올려져 있다. 아내는 가장 기본메뉴인 팬케이크를 꼭 시키곤 했다. 팬케이크는 말 그대로 여러장을 올린 것을 한 번에 썰어 조각케이크처럼 먹는 것이다. 여기에 써니사이드업(노른자를 익히지 않은 것)이니 오버이지(뒤집어 노른자가 아직 흐르는 것)니, 취향대로 계란후라이를 곁들인다. 내가 좋아하는 또다른 아침식사거리는 오트밀보다는 그릿츠이다. 그릿츠는 삶은 옥수수가루로 만든 일종의 스프 혹은 죽이라서, ‘금식을 파하는’(break-fast) 빈속에 먹기 딱 좋다.
거기에 커피는 직원이 오가며 계속 리필해주고, 내가 색깔과 맛 때문에 좋아하는 OJ, 오렌지쥬스를 또 시킨다. 이건 공산품이 아니라, 프레쉴리 스퀴즈드freshly squeezed라고해서 신선한 오렌지를 갓 쥐어짜낸 것이다. 미국은 오렌지가 워낙 싸니까 아침식사하는 곳에 가면 주방 한 켠에 오렌지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보기만 해도 신맛이 느껴져 군침이 도는 신선한 착즙 쥬스를 만드는 걸 볼 수 있다.
우리가 에반스톤에 살 때 자주 다니던 디오리지널팬케이크하우스는 지점이 오래된 거 같았다. 안에가 으리으리한 나무 인테리어에 화려한 스테인드글래스로 꾸며져 있다. 좋은 곳에서 밥을 먹는 느낌이 좋아서 무언가 기분 좋은 주말 아침이면 나가서 사먹고 오곤 했다. 갓 태어난 우리 아기를 돌봐주러 서울에서 오신 장모님도 여기에서 대접을 했다. 좋아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남김 없이 다 드시기는 했다. 예쁜 스테인드글래스 앞에서 갓난쟁이 아기를 안고 찍은 사진이 좋은 추억으로 남은 곳이다.
‘미국 음식’하면 떠오르는 건 무얼까? 아마 햄버거가 단연 1등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스크림도 햄버거 못지 않은 ‘미국 음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스크림은 물론 유럽에도 있고 유럽에서도 토핑이나 과일과 함께 내기도 하겠지만, 미국처럼 풍부한 유지방에 달콤한 디저트류를 부수어 넣어서 함께 먹는 이 엄청난 방식의 디저트로는 미국이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은 일단 한국보다 우유가 싸다. 많이 소비하는만큼 많이 생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스크림도 한국보다 종류가 훨씬 많고 훨씬 싸다. 남들은 미국 대형창고형할인점에 가서 뭘 사오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이스크림을 기꺼이 집어오겠다. 한국에도 ‘미국식 아이스크림’ 곧 토핑 올려서 다양하게 만들어 먹는 체인점이 한때 유행한 적이 있지만, 사랑받으며 정착하지는 못한 것 같다. 일단 ‘몸에 안 좋은’ 아이스크림에 뭘 또 알록달록한 공산품 초콜렛 등을 뿌려먹는 게 도무지 좋게 느껴지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내게는 아이스크림이 유아적 행복의 상징물처럼 남아있다. 맛있는 콘 과자위에 딸기맛 초코맛 바닐라맛 크게 세 스쿱이 동글게 올라간 아이스크림을 어떤 아이가 안 좋아할까? 몸에 안 좋은 걸 알지만,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으며 점점 더 윤기 나게 생글생글해지는 아이 눈동자를 보면, 아, 지금 아이 머릿속에서 얼마나 커다란 불꽃놀이가 펼쳐질까, 얼마나 행복하고 신이 날까, 하는 낭만적인 생각에 젖게 되곤 한다. 입에 달고 사는 게 아니라면, 이런 디저트는 분명 사람의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장점도 있다는 걸 인정했으면 좋겠다. 몸에 좋은 것만 먹을려면 유기농 풀과 닭가슴살만 먹고살지 왜. 단맛의 정신적인 기여(?)에도 노벨상을 주자.
오버바이스는 본사가 일리노이주 노스 오로라에 있는, 1927년부터 있는 목장을 근거지로 둔 아이스크림 체인점이다. 이 목장에서 생산하는 아이스크림은 아주 맛이 좋다. 유지방 성분이 높기도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느끼한 게 아니다. 시카고 근교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이 아이스크림 집에서는 두통 들이 파인트를 12달러, 13달러에 팔아서 저렴하게 다양한 맛을 맛볼 수 있었다. 다크초콜릿 씨쏠트 카라멜, 쿠키 도우 등 여러가지 메뉴가 있지만 내가 좋아했던 것은, 초콜릿 마쉬멜로우, 초콜릿 피너버터, 그냥 바닐라 아이스크림이었다. 듣기만 해도 살이 찌지 않는가. 허허. 오버바이스 아이스크림을 퍼먹다(!) 보면, 그 큰 한덩어리를 꿀꺽 삼킬 때(한국에서는 비싸서 못할 짓) 꼭 목젖이 시원한 우유를 콸콸콸 마시는 거 마냥 달고, 시원하고, 크림맛이 진하게 느껴지곤 해서 무척 좋아했다. 사진에 에그노그는 성탄절 시즌메뉴로 미국 사람들이 겨울이 되면 즐겨 마시는 우유와 향신료 기반의 에그 노그라는 음료에서 착안해 만든 아이스크림이다. 그것도 맛있기는 매한가지.
또다른 아이스크림 체인점 중에 ‘앤디스 프로즌 커드’라는 곳도 있었다. 커스타드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이다. 홈페이지의 설명에 의하면, 커스타드 아이스크림은 아이스크림보다 크림맛이 더 진하고 유지방이 많다. 자신들이 만드는 ‘콘크리트 커드’는 아이스크림을 천천히 계속해서 돌아가는 기계로 쑤어서 바로바로 받아내 만들기 때문에 언제나 신선한 맛을 즐길 수 있다고 광고하고 있다. 사진에 보면 오레오는 물론이요, 브라우니나 초코바 같은 것을 부수어서 커드에 ‘말아 준다.’ 내가 맛봤던 최고의 아이스크림을 꼽는다면, 로마의 트레비 분수 옆에서 먹었던 이탈리안 아이스크림과 앤디스 커드의 ‘내 할머니의 비밀 레시피 치즈케이크’를 부숴서 꾸덕하게 만 커드 아이스크림을 꼽겠다. 심지어 매장에서 아침마다 직접 신선하게 구워낸 따끈따끈한 케이크를 부숴넣어준다니 그것만한게 있을까!
서머셋 모옴의 소설 중에 ‘점심’이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모옴은 위트있는 반전 단편을 많이 쓴 작가다. '점심'은 가난한 작가의 팬이라면서 처지도 모르고 파리 시내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제철’ ‘싯가’에만 해당하는 값비싼 메뉴만을 '딱 한가지씩만' 골라 먹으며 작가의 지갑을 탈탈 털리게 했던 여성의 이야기다. 소설의 반전은 마지막 한문장에 있다. 그래서 그녀의 몸무게는 지금 아무개 킬로란다,로 끝난다.
아침으로 딱 딸기생크림 와플 하나만 먹고, 점심에 시카고 피자 딱 한 조각만 먹고, 저녁에는 간단하게(!) 햄버거에 밀크쉐이크 먹고, 후식으로 앤디스에서 할머니 비밀 레시피를 먹으면, 애플워치에 경고음이 울린다. 심장박동이 빨라진다고. 먹다보면 둘이 먹다가 하나는 당뇨로 가도 모른다는 천국에 '가까워지는' 맛. 미국의 맛.
그래서, 지금 내 몸무게는 작은키에 팔십 킬로를 넘나든다.
사진- 시카고 피자: 픽사베이, 앤디스: 홈페이지 갈무리, 그외 본인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