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엑스 아쿠아리움에서 물고기 구경하기10여 년 전, 10개월 된 아들을 코엑스 아쿠아리움에 데려갔을 때.
처음보는 물고기에 놀라 수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허리가 부서지는 줄도 모르고 아이를 품에 안고
물고기의 이름과 색깔에 대해 쉬지 않고 설명해주었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엄마가 세상에 신기하고 재미난 것들, 앞으로 많이 많이 보여줄게.'
그때 이후 우리는 주말이면 아이를 위해
어디든 가서 무엇이든 했다.
구글 포토 알림이 올 때마다 사진첩을 열어보면 1년 전, 2년 전, 3년 전, 4년 전...
집에서 찍은 날이 거의 없다.
그 많은 곳들을 어찌 다 찾아서 가 보았는지,
이제와 생각해보면 초인적인 힘이었다.^^;;;
민달팽이 잡기, 악어 등에 올라타기, 조개잡기
클라이밍하기, 도롱뇽 알과 벌집 관찰하기, 잉어잡기
옥수수 수확해서 껍질까기, 낚시로 물고기잡기,식물관찰
토끼 먹이주기, 하늘소 잡기, 망아지 타기
식충식물관찰하기, 캠핑가서 해먹타기, 팽이 돌리기
바닷물에 빠져서 짠물 먹기, 미꾸라지 잡기, 고구마 캐기 아이가 세 살 무렵, 처음 공룡에 꽂혔을 때는 공룡을 함께 공부했다.
티라노사우르스, 아파토사우르스, 스테고사우르스....
공룡책, 공룡퍼즐, 공룡장난감, 공룡 옷까지...
세 살 밖에 안 된 어린 아이가 혀짧은 소리로
'~따우르뜨'를 발음하며 공룡이름을 외우는 모습이
천재인 줄 알고....천재를 키우는 엄마의 심정으로
나도 함께 빠져들었나보다. 그렇게...
전국의 공룡박물관을 섭렵하고
나는 공룡으로 1차 학위를 땄다.
그리고 어느정도 아이가 자라고 나니 이번에는 곤충에 관심이 꽂혀버렸다.
이때부터 또다시 시작이다.
메뚜기, 귀뚜라미, 여치, 사마귀, 하늘소, 누에, 사슴벌레, 장수풍뎅이, 나비...
이번에는 곤충박물관과 책을 모두 마스터한 후에
곤충으로 2차 학위를 땄다.
1차 학위와 달랐던 점은,
공룡과 달리 곤충은 실재하는 생물이므로...
모두 잡아보고 왠만하면 다 키워보아야 했다는 것...ㅜㅜ
어려운 2차 학위코스가 끝나고나자 3차 학위를 따야 할 때가 왔다.
3차 학위는......
자연 그 자체였다.
마리모, 요정새우, 트리옵스, 물고기, 악어, 거북이, 강아지, 고양이,
개운죽, 공기정화식물, 식충식물, 다육이...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2차 학위보다 더 어려운 것은
이 모든 자연을 집에서 직접 키워보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집이 동물원, 식물원이 될 판이다.
결국, 나는 3차 학위를 포기했다.
더는 무언가를 키우고 싶지 않다.ㅠㅠ
(너 하나 키우는 것도 정말 쉽지 않단다...ㅠㅠ)
10년의 세월동안 나는 공룡과 곤충, 온갖 자연의 동식물을 아이와 함께 배우며
아이와 함께 '박사'가 되어갔다.
사실 이 모든 경험이 처음에는
좋아하는 한 가지에 빠져드는 아들이 천재인 줄 알았던, 아들 바보 엄마의 욕심이었다.
경험이 아이의 두뇌를 발달시켜 줄 것이라는 욕심.
이런 경험을 많이 한 아들이 학교에 가면 공부를 잘 할 것이라는 욕심.
그런데 아이가 점점 자라면서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하는 공부에는 영 관심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중이다.
어제도 수학 문제집 한 장을 놓고 아들과 옥신각신 다투고 나서,
나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공부가 세상의 전부는 아니야. 강요하지 말자. 그간의 경험은 행복을 위한 것이지, 성적을 위한 게 아니잖아?
아이가 행복하다면, 스스로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거지.'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래도 기본은 해야 하는데. 근데 도대체 기본이라는 건 어디까지일까?
방학 때 문제집 한 장 풀어보지 않고 그냥 두어도 되나?
다음 학기에 아이가 공부가 어렵다고 포기하지는 않을까?'
끝없는 도돌이표 고민이 이어졌다.
그래도 아이와 나의 행복을 위해 다행인 것은
내 마음의 무게추가 점점 이동하고 있다는 것.
공부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아이의 성적과 행복의 저울 위에서 '성적'으로 완전히 기울어져있던 무게추가
이제는 조금씩 '행복'으로 옮겨가 균형을 맞추는 중이다.
그간의 모든 경험들이 성적으로 '환원'되기를 바랐던 내 마음이
이제는 진심으로 아이에게 '추억'으로 남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아이를 처음 키우는 엄마는 모두가 '바보'다.
뒤집기만 조금 빨리 해도...남들보다 조금만 빨리 걸음마를 시작해도...
말이 조금만 빨라도, 아이가 좋아하는 한 가지만 생겨도,
내 자식은 '천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리고 그 '천재'라는 단어 속에 행복과 성적은 점점 반의어가 되어간다는 사실을
우리는 무심코 지나치곤 한다.
그런데 아이가 학교에 입학을 하고 크고 작은 시험과 경쟁 속에 놓여질 때,
그때서야 비로소 그동안 아이를 키운 부모의 진심이 바닥을 드러낸다.
그리고 진심의 바닥이 '성적'에 기울어진 조건부 사랑이자 욕심이었음을 깨닫고 난 뒤라면
이제 그간의 모든 시간을 달리 저장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너를 위한 것이었어.'가 아니라,
' 이 모든 것들이 너와 함께한 시간이었어.'라고.
구글 포토 알림을 열어보며 이제는 생각한다.
'그래, 맞아. 우리 이런 것도 함께 했었지. 우리 이런 추억도 있었지.'
내 존재의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해 네가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
그것을 깨닫기까지 10년 세월이 걸렸다.
어찌보면 네가 나를 키우기 위해 태어났는지도.
나는 오늘도 나를 키우는 너와 함께 무엇을 하며 재미난 추억을 쌓을까 행복한 고민을 시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