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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밀의 화원 Sep 23. 2022

휴직생활 호강기 <2>

- 엄마, 영어공부 좀 해! -

그동안 해외여행을 몇 번 다녀보긴 했지만,

나는 여행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짐을 싸고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고, 정보를 검색하는 일은 열심히 했지만,

막상 공항에 도착한 이후에는

그때부터 무엇을 어떻게 어디에서 해야하는지 머릿 속이 새하얘진다.

방법이 없다. 그저 남편 옷자락만 붙잡고 따라다니는 수밖에.

길치라 그런 것도 있지만, '과정'을 머릿 속에 입력하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항상 나보다 똑똑한 누군가와 해외여행을 간다는 것.

결혼 전에는 영국어학연수를 다녀온 친구와 여행을 갔고,

결혼 후에는 줄곧 남편이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유독 아이들 앞에서 부끄러운 일들이 많다.

식당에 갈 때마다 직원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해 남편에게 "뭐래?"를 남발했고,

바다에서 스노쿨링 도중에 무언가에 물린 딸이 아파할 때

안전요원에게 하고 싶은 말을 속시원히 하지 못해 파파고를 몇 번이고 돌려봤다.ㅠㅠ

리조트 내 워터파크에서 남편이 없는 사이...야심차게 직접 타월을 받으러 가서 신청서를 작성하는데

온통 영어로 된 종이를 보니 머리가 어지럽다.

"what's this?"를 내가 자꾸 남발하자

직원이 한국말로 답해준다. "싸인하고 손목밴드 몇 개 필요한지 적으세요."

세상에나.....!! 내가 이렇게 무식한 사람이었던가?

출입국 심사장에서는 공항직원이 또 영어로 말할까봐 무서워서 남편 뒤에 숨어만 있었다.

아이들은 이런 나를 보며 말한다.

" 엄마도 영어공부 좀 해."



생각해보니 영어를 손 놓은지도 20년이다.

수능영어를 열심이 공부하던 그 시절이 지나 '국어교육과'에 입학한 후에는

영어를 접할 일이 없었다. 그리고 영어가 내 삶에서 그리 중요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아이들 앞에서 이렇게 헤매는 모습을 보이고 나니 생각이 달라진다.

친구랑 가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이랑 같이 하는 여행인데,

'영알못'엄마가 앞으로 영어공부를 하라고 한다면...아이들은 뭐라고 생각할까?ㅋ


'사람은 이래서 평생 배워야 하는구나.!'



내가 좋아하는 김미경 동기부여 강사님이 들려준 인상깊은 사연이 있다.

사진을 취미로 찍으시던 60대의 할머니 두 분이

친구와 해외로 자유여행을 가서 사진을 찍는 것을 꿈꾸며 영어를 열심히 공부한 끝에

자녀들의 도움없이 자유롭게 의사소통하며 해외에서 사진을 찍고 돌아오셨다는 것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해외여행이 60대의 그분들에게는 장벽과도 같았을텐데,

그 장벽을 뛰어넘은 두 분이 무척이나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새로운 꿈을 꾸는 것에는 나이의 제한이 없다는 것에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 이제 겨우 내 나이 마흔인데 무엇이든 못하리!

 

여행 3일차부터 머릿 속에는 또 새로운 목표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다음 번 해외여행에서는 믿음직스러운 엄마가 되어보자!

하루하루를 연명하듯 살아가는 동안에는 생각조차 하기 힘들었지만,

휴직 중 여행 속에 두 번째 깨달음을 얻어간다.


여행은 쉼이자 최고의 동기부여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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