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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밀의 화원 Sep 23. 2022

휴직생활 호강기< 3 >

- 평등이란 무엇인가? -

여행 3일차. 오전 메인풀을 3일째 이용하고 있다.

어제까지는 우리가 메인풀을 전세를 내고 쓰다시피 했는데

오늘은 사람들이 꽤나 북적인다.

모두들 한국 사람들이다.

한 무리는 한국인과 그들이 고용한 필리핀 현지인 시터들.

한쪽에는 풀에서 배구를 즐기는, 20대쯤 되어보이는 십수명의 한국 청년들.

한쪽은 20~30대쯤 되어보이는 한국인 커플들이다.

청년들의 젊음도 눈길이 갔지만,

필리핀 안전요원과 시터들, 그들과 비슷한 또래의 한국 젊은이들의 모습이 한 장면에 겹치는 순간,

묘한 기분이 들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누군가는 '노동'을 하고

누군가는 '여행'을 한다.

이 나라에서 태어났더라면, 나를 포함한 한국인들이 이런 리조트에서

이렇게 한가롭게 시간을 즐길 수 있었을까.



얼마 전 티비에서 보았던 '마이클 샌델' 교수가 제기한

'공정이라는 착각'이 생각났다.

만약 우리가 경제적으로 매우 빈곤한 나라,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

지금 내가 누리는 이 모든 여유를 누릴 수 있었을까.

열심히 공부했고 학업에 돈과 시간을 투자한만큼 그만큼의 '보상'을 누리는 것이

'당연'하며 그것을 '공정'이라고 말하지만,

만약, 출발점을 달리했더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지금과 같은 여유와 일상을 누릴 수 있었을까.


그래서 출발점이 달랐던 '가진 자'들은 늘 자신이 가진 것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현재 누리는 모든 것은

'90퍼센트'의 운과 '10퍼센트'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결과물일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노력한 만큼의 댓가'이기에 '공정하다'라는 착각 속에

사회적 양극화는 점점 커져만 가고

'가진 자'가 '갖지 못한 자'를 하대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당연시 되고 있다.




내가 지금 여행지에서 누리는 시간들도 90퍼센트의 운이 만들어 준 결과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은 아이들에게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진부한 잔소리를 하고 있다.

엄마 아빠의 운과 노력으로 여기까지 와서 여행을 즐기고 있으니

받은 만큼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야 한다고. 주입하는 중이다.


여행 중 문득,

잘 사는 대한민국의 위상을 보았고,

유명 교수의 철학적 논리에 공감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현실을 깨달았고,

내 아이들에 대한 '소망'과 '기대'가 생겼다.


원래도 생각이 참 많은 나지만,

여행 중에도 생각이 참 많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많은 내가 좋다.

허투루 살지 않을 수 있어서.


휴직은 내게 실컷 생각하고 그 생각을 따라 생각의 지도를 그릴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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