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드디어 정신건강의학과에 예약을 했다.
지난 번 첫째의 풀배터리 검사에서 ADHD진단을 받고 너무나 망연자실했던 나는
그것이 '유전적' 질환이라는 것에 더욱 가슴이 무너졌다.
며칠동안은 세상이 꺼진 것처럼 홀로 지하실에서 울고만 있었다.
열 살 밖에 안 된 내 아이의 인생이 벌써 무너진 것마냥 홀로 절망 속에 갇혀있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이기에. 내 아이의 인생을 다시 세울 방법을 찾아야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면 ADHD와 관련된 강의를 찾아듣고 책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의를 들으면 들을수록, 이것이 나로부터 유전되었다는 것,
나 역시 ADHD를 안고 있었기에 살면서 종종 지금 아이가 느끼는 어려움에 똑같이 부딪혀왔다는 점.
그리고 내 안에 우울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시작은 아이로부터였지만, 거슬러올라가니 내가 보였다.
첫째가 자기 머리를 때리고 가슴을 치면서 스스로를 원망했던 그 모습이.
'너는 나와 달라야 하는데 왜 이 모양이니?'라고 매일 다그치던 내 분노에서 비롯되었음을
뼈아프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행동이 의도된 것이 아니라 '유전'이라는 것을 알고난 후부터는 도저히
'너는 왜 이러니?'라는 말이 나올 수가 없었다.
아이의 그 모든 행동은 나로부터 유전된 것이니까. 뇌의 생물학적 특징일 뿐이니까.
대신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도와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바꾸고나니
아이를 대하는 나의 행동도 달라질 수 있었다.
마스크를 버리는 쓰레기통을 현관에 달아주기,
내일 할 일을 스스로 반복해서 말하게 하기,
화장실 변기커버를 올리고 볼 일 보라고 잔소리하지 말고 변기커버 손잡이를 달아주기,
밖에 두고 온 물건에 대해 화내지 않고 함께 찾아주기.
이후로 아이는 심한 자책감으로 우울해하거나 분노를 표출하는 일이 많이 줄었다.
원인을 알고난 후 너무나 힘들었지만, 원인을 알고나니 해결책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남은 숙제는 '나' 자신이었다.
얼마 전 첫째의 ADHD 진단 이후, 남편은 우울해하는 나에게
"당신도 한 번 병원에 가서 진단 받고 처방을 받아보는 게 어때?"라고 했다.
남편에게서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너무나도 외롭다는 생각에 휩싸였었다.
아이의 유전적 기질과 질환이 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확신에 찬 그 말 속에서
'보이지 않는 칼날'을 본 듯했다.
그날 이후 나는 남편에게 칼날처럼 굴었다. 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분노를 담아 표출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남편보다는 나에게 그 원인이 있음은 일상생활을 통해 이미 증명된 바였고
믿고 싶지 않았지만 믿지 않을 수 없는 일상들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었다.
물건을 꺼내어놓고 제자리에 두는 것은 잊은 채 펼쳐놓는 일,
챙겨야 할 물건을 어디에다 두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일,
아이들 학원 시간과 요일을 헷갈려 엉뚱한 시간에 나가는 일,
요리할 때 레시피를 찾지 않고서는 그 순서가 머릿 속에 입력되지 않아
요리 하나가 다 끝날 때까지 핸드폰 화면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일....
결국 나는 일상을 어렵게 하는 이 모든 일들을 '이성'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남편이 '가슴'으로 나를 이해하고 품어주기를 바라기에는,
우린 이미 '사랑의 호르몬'에 기댈 수 없는 11년의 세월을 지나고 있었다.
이제는 서로에게 기대어서가 아니라, 너와 내가 각자 바로 서 있어야
남은 시간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고 함께 할 수 있음도 알고 있다.
나에게 남은 마지막 휴직, 그리고 마지막 숙제는
정확한 진단과 처방으로 내 일상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일이다.
ADHD이건 우울증이건 나는 내 일상을 지키기 위해
더이상 물러서거나 세상의 시선을 거리끼지 않으리라.
일터에서 늘 나의 실수가 두려워 업무를 맡을 때마다 불안에 떨던
과거의 나를 이해하고 덤벙과 허당, 깜빡임,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와
자책감에 허덕이지 않는, 자신감 있는 나로 다시 시작하리라 .
나보다 부족하다고만 생각했던 아이를 기르면서
그 아이를 꼭 닮은 나를 본다.
그리고 아이가 서 있는 그 지점에서부터.
나도 함께 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