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내내 아이들을 보면서 마음 속에 화가 차 있었던 탓인지,
주말에는 시부모님이 계시는 시골집에 가고 싶어졌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힘들면 친정이 가고 싶어야 하는데
나는 왜 시댁이 가고 싶은건지...
남편에게 금요일 아침부터 당장 오늘 저녁에 시골에 가야겠다고 이야기하고선
열심히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왜 힘들 때 친정 대신 시댁을 찾고 싶어졌나...?
친정에 가면 매 끼니 우리가 사 드리고 써야 하는 돈이 수십만원이지만,
시댁은 아가씨네와 함께 찾아뵙고 회비를 쓰니 경제적인 부담이 적다.
친정에 가면 친정 부모님 모두 으르렁대며 말끝마다 고성과 낯익은 욕설이 오고가지만,
시부모님은 과묵하신 대신에 들어주시고, 고민이나 원한에 맺힌 이야기 대신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하다.
친정에 가면 부모님과 아이들이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지만,
시댁에 가면 시댁 조카들과 어울려 우리 아이들도 함께 놀고
무엇이든 아이들과 함께하시겠다는 시부모님의 배려와 사랑이 있다.
그랬다. 나의 친정은 '비빌 언덕'이 되지 못한다.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깊이 생각하면 슬픈 일이지만, 그냥 가벼워지기로 했다.
어려울 때 기댈 수 있고,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고 행복할 수 있는 '비빌 언덕'이 있다는 것은 참 다행이다.
그것이 친정이든 시댁이든. 그리고 그 대상이 남편이든 아니든.
20년 후 쯤에는
마당 넓은 전원주택에 미끄럼틀, 수영장 잘 차려놓고
우리 아들, 딸이 손주들 데리고 오는 모습들을 상상해본다.
언제든 내 아들, 딸, 그리고 손주들이 찾아오면
마음 편히 기댈 수 있는 '비빌 언덕'이 되어 아이들 편히 쉬다가게 하고 싶다.
살아보니, 세상풍파에 지쳐갈 때 '비빌 언덕'까지 되어주는 것이.
부모의 마지막 역할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시집살이' 대신 '비빌 언덕'이 되어주신 나의 시부모님께 감사.
그런 시부모님을 만나게 해 준 나의 남편에게도 감사.^^
마지막으로...이런 남편을 선택한 나에게 격려의 '쓰담쓰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