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흔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 -
내 나이 앞자리가 또 한 번 바뀌는 나이. 마흔.
그저 숫자로만 생각했던 나이인데, 인생 1차전을 끝낸 후라 그런걸까?
마흔은 숫자로만 나를 규정짓지 않고 내 삶의 곳곳을 휘저어놓았다.
마흔에 나타난 변화 하나.
그간의 인간관계가 정리되기 시작했다.
십 년을 넘게 알고 지내던 사람과의 관계도, 늘 만나던 만남 속에 알 수 없는 불편함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십 년 세월 속에 서로의 마음과 생각은 각자 자기 삶의 방향을 향해 종착역을 달리 해서인지,
이제는 대화 속에서 그 어떤 공감과 접점을 찾아내기가 어려워진다.
만남 이후의 불편함. 뜸해지는 연락횟수. 그렇게 멀어져간다.
한때는 무척 친했던 동료도, 대학 동기도...
그와 나의 마음 속에 서로를 향한 시기심과 질투가 또아리를 틀고 있음을 눈치채게 되면서....
시간이 나도 굳이 연락하는 일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인간관계가 한때 지나가는 바람과도 같은 것임을 알아가고 있다.
한 번 맺어진 인연이 끝까지 함께 할 수 없음을, 마흔부터 폭풍처럼 알아가는 중이다.
마흔에 나타난 변화 둘.
배우자와의 관계에 더이상 애끓지 않게 되었다.
십 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오며, 그가 보이는 변화와 감정에 휘둘릴 때가 참 많았다.
내가 대화(요구사항)를 꺼내고나면 늘 화가 나 있거나 삐져있는 그에게
내가 먼저 사과를 하고 대화를 시도하지만,
그의 가슴은 철옹성처럼 굳게 닫혀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 마음이 풀어질 때까지 나는 늘 죄인처럼 가슴졸이던 지난 십 년 세월을 뒤고 하고...
이제는 더이상 그의 감정변화가 내 마음에 돌을 던지지 않는다.
내 첫마디에 토라진 그의 감정이 불러오는 차갑고 무거운 공기...그것을 견디는 것이 참 어려웠었다.
하지만 이제 내가 던진 돌에 그가 느끼는 그 불편한 감정은...대화를 거부한 그의 몫이라 여기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성실한 남편이자 아빠인 그를 나는 누구보다 존경한다.
다만, 이제는 남편과 나의 자아를 적당히 분리할 줄 알고 그의 감정에 내가 함께 휘둘리지 않을만큼,
내 감정과 생각도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는 것.
이제는 발 동동 구르며 그와의 화해를 섣부르게 시도하지 않음으로써 서로가 각자의 동굴 속에서 충분히 생각할 여유를 가질 수 있을만큼 우리의 관계가 안정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십 년 넘는 세월 함께 살고나니, 더이상 애끓지 않는 '차가운 사랑'을 알게 되었다.
마흔에 나타난 변화 셋.
꿈이 많아진다.
스무 살부터 목표했던 직업을 가졌고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았다.
열심히 돈 벌어 사는 데 필요한 인프라를 다 갖추고 나니 남은 것은,
앞으로 특별한 시도 없이는 지금처럼 살아갈 것이 뻔한 수십 년의 미래.
직업을 가져본지 15년이 지나고나니
'나는 이 직업에 적합한 사람인가?'
'이 직업으로 정년까지 갈 수 있을까?'
'한 번 뿐인 인생, 새로운 시도를 해 보아야 하나?'
'언제쯤 월급에 의존하지 않고, 하기싫은 일은 자신있게 거절하며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하루도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내 안의 나는 지금도 매일 숙제를 던지는 중이다.
'나는 업무가 아직도 두렵다. 이 길이 내 길이 맞나?'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글쓰기를 잘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싶다.'
'융합대학원을 잘 마치고 싶다.'
'부자가 되고싶다.'
학창시절보다 더 생각과 꿈이 많아지는 시기. 마흔이다.
마흔에 나타난 변화 넷.
자식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기 시작한다. 달리 말하자면, 놓아주기 시작한다.
십 년 키워보니 명문대 출신 남편과 교사인 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무조건 특출날 것이라는 기대는
부질없는 것이었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부모인 우리 삶의 궤도 위에 함께 올라있던 아이들의 삶이 우리와는 다른 궤도에 있음을 깨닫고,
아이들을 조금씩 자신들만의 궤도 위로 올려놓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엄마 없이는 영어 단어하나도 외울 수 없다, 수학문제도 못 풀겠다는 아이들에게
시험을 못 보더라도 혼자 외우고 푸는 방법을 깨우쳐야 하고 열심히 시도해 보아야 함을 알려주었다.
더이상은 함께 잠자리에 들어 비좁은 침대 위에서 서로를 피곤하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주입하는 중이다.
목욕을 하고 로션을 바르는 일도, 밥상 위에 숟가락 젓가락을 챙겨놓는 일도 마땅히 해야 하고 할 줄 알아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공부를 못해도 그 결과는 본인의 '책임'이지 '잘못'이 아니며,
먼 훗날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스스로를 책임지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늘 순종적일 줄만 알았지만, 이제는 게임 한 시간을 더 하겠다고 두 눈 부릅뜨고 목소리를 높이는 아들을 보며... 더는 내 생각대로 이 아이의 인생을 이끌어 갈 수 없음을 절감하고 있다.
우리의 인생과 아이들의 인생이 조금씩 갈림길에 들어서고 있음을 받아들이며, 내 품에서 하나씩 조금씩 놓아주는 중이다.
마흔 하나.
정수리부터 흰 머리가 하나 둘씩 솟아나는 나이.
급격하게 바닥난 체력에 건강이 최고임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는 나이.
백 세 인생 제2차전이 시작되는 나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지는 나이.
놓을 것은 놓아주고 새로운 것을 꿈꾸게 되는 나이.
폭풍같던 마흔을 지나 잠잠한 동굴 속에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할 나이.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몰라 설레하던 스물 한 살, 그때보다 오히려 더 설레는 나이.
마흔을 앓고나니, 비로소 진짜 내 인생이 보이기 시작한다.
안녕, 폭풍같던 나의 마흔.
안녕? 설레는 나의 마흔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