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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밀의 화원 Mar 12. 2023

너를 울리고, 나는 후회하네

아들이 ADHD 치료를 시작하고 약을 먹으면서 이전보다는 확실히 일생생활이 안정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성장지연에 대한 부작용에 대한 걱정으로 가장 약한 용량의 약을 먹고 있어서인지...사춘기가 찾아와서인지...요즘 들어 다시 흐릿한 기억력과 과격한 감정표현으로 인해 일상에 문제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오후 5시 10분. 집에 두고 나간 아들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한다. 

받지 않고 그냥 두었더니, 금방 내게 전화가 온다. 미술학원 선생님이다.

"어머니, **이가 5시가 넘었는데 전화도 안 받고 학원도 안 오네요."

전화를 끊고 나는 집 밖으로 뛰쳐나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아들을 찾아 헤매기 시작한다.

단지 내 축구장과 놀이터, 학교 운동장을 샅샅이 뒤져도 보이지 않는다.

아이를 찾아 헤매면서도 속으로 수없이 다짐한다.

'화내지 말자. 화내지 말자. 아이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다. 아이는 치료중이다. 일부러 작정하고 안 간 게 아니라 단지 생각이 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니, 아이를 보고 화내지 말자.'

아이가 건너편 단지에 있나 싶어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여유로운 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는 녀석을 본다.

순간, '욱~!'하는 마음이 올라왔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얼른 아들에게 다가가 얘기했다.

"**아, 오늘 5시에 미술학원인데 깜빡했어? 저기 가서 축구하느라 깜빡했구나?"

아들은 "아, 맞다!"를 연발하며 내 눈치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아들에게 휴대폰을 쥐어주며,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앞으로는 엄마가 휴대폰에 알람 맞춰놓을테니 휴대폰 꼭 가지고 다니고...얼른 미술학원 가. 가방은 엄마가 가지고 갈테니 이리 줘~"

하고는 돌아서서 가려는데.....아들이 두고 간 자전거가 발에 채인다.

분명 건너편 단지에서 올 때는 자전거 없이 걸어오고 있었는데...

횡단보도를 처음 건너면서 파란불이 켜지는 순간,

이미 자전거는 잊은 채, 맨몸으로 떠났다 오는 모양이었나보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묵직한 돌덩이가 내려앉는 기분...

심호흡하면서 아이의 학원가방을 매고 인도 한복판에 세워놓은 아이의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에게 최대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 애쓰는 중이다.

방학 동안 아침에는 스케줄표를 적고 오전에 할 일 두 가지 정도는 하자고 했지만, 아이는 요지부동이다.

같은 소리를 두 번만 하면 한 숨을 푹푹 내쉬며, 내 입을 막아버린다.

오전 내내 축구를 하고 돌아온 아이는 수학학원 갈 시간이 되어도 아무 생각이 없다.

"재인아, 엄마랑 병원가서 비염 진료보고 바로 수학학원 가야지? 가방 빨리 챙기자. 학원 숙제는 다 했니?"

"아, 맞다!" 

학원 숙제도 다 잊고 오전 내내 축구에 모든 열정을 쏟았던 아이는 그제서야 마음이 조급해진다. 

저녁에 할 일을 다 마치고 나서 주기로 했던 휴대폰 시간 30분을,

다 하지도 않고 어젯밤 나를 속였다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어 올라온다.

잔소리 폭탄 일발장전하고....발사!


"너는 엄마가 어디까지 얘기해줘야 하는 거니? 그럼 어제 숙제도 다 안하고서 했다고 거짓말하고 휴대폰 시간 쓴거야?  엄마가 일일히 다 검사하고 확인해야 하는거야? 엄마가 오늘 이 시간에 병원 예약했다고 했으면 너도 시간 분배를 해서 오전에라도 숙제를 했어야지! 오전 내내 축구만 하고 돌아와서 할 일도 다 안하고 뭐하는거야? 어제도 학원 시간 못 맞춰서 제 시간에 못 갔으면, 오늘은 네가 알아서 좀 하는 게 있어야 할 것 아냐!"


놀랍게도 나는 요즘, 이유남 선생님의 <엄마 반성문>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이 책 속에서 그렇게도 하지 말라는 '원수되는 대화'의 핵심적인 예시를 나는 아이에게 순식간에 쏟아내고 말았다. 육아란, 늘 이런 식이다. 이론은 이론대로. 실전은 실전대로.

결국, 기분이 상한 아이는 눈물을 한참 쏟아내고 나더니 수학학원도 영어학원도 다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첫째는 기분이 상하고, 둘째는 울던 몰골이 창피해서...학원 못가겠단다.

나는 '원수되는 대화'를 퍼붓고 나서야 책 속의 내용을 떠올리며 후회와 반성을 벼락치기한다.

'이럴 때 학원가라고 등 떠밀면 아이도 싫을거야. 책에서 아이의 감정을 먼저 알아주라고 했어. 아...안 되겠다. 오늘 학원은 못 가겠군...아까 한 번만 더 참았어야 했는데....'

"그래, 알았어. 네가 정 힘들면 안 가도 좋아. 집에 가서 쉬어. 그리고 너도 하루 스케줄 관리는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해. 알았지?"

아들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인다. 

돌아서는 내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한숨이 올라온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나를 수양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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