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는 스스로 자란다. -
"축! 최** 반장당선!"과 함께 온 남편의 경쾌한 이모티콘.
학교에서 일을 하다 메시지를 확인한 나는, 나도 모르게 "어머!"를 연발했다.
교무실의 정적을 깨는 소리에 조용히 업무에 집중하던 선생님들이 다들 묻는다.
"무슨 일 있어요?"
"아들이...오늘 반장선거 나갔는데 당선 되었다네요. 호호...."
"이야~ 축하드려요!! 뿌듯하시겠어요."
이틀 전, 아들은 빨리 자라고 재촉하는 나에게 소파에 앉아보라고 하더니
"엄마, 아빠! 나 내일 반장선거 하는데 선거공약 연설문 준비했으니까 연습하는 것 좀 봐 줘!"한다.
전날까지도 반장생각이 없다는 아이였는데,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연설을 준비했다니 들어나보자 싶어서 소파에 앉았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아이는 꽤나 진지하게, '당선될 결심'을 했었나보다.
이미 공책에 비장한 연설문을 다 써 둔 것이었다.
"너 언제 이런 것까지 다 준비했어?"라고 물었더니
"밤에 불끄고 자라고 할 때, 혼자 방에서 써 봤어."라고 답한다.
이제 혼자만의 시간에 방 안에서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해내다니...그 사실 자체로도 놀라움이다.
그런데 더욱 놀란 것은 연설문의 내용이었고, 그것을 발표하는 아들의 진지한 태도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반장선거에 나온 기호 6번 최**입니다!
저는 반장이 된다면 여러분을 위해 이런 반장이 되겠습니다.
첫째, 제가 학교에 일찍 오는 장점을 활용하여 매일 학교에 일찍와서 교실을 청소를 미리 해두겠습니다.
둘째, 반장의 일을 책임감있게 해내겠습니다.
셋째, 여러분이 불편한 점을 말하시면 제가 개선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넷째, 넷째는 인*(도움반 친구)를 위한 공약입니다. 인*가 궁금해하는 점이 있으면 친절하게 대답하겠습니다. 어때요? 잘 들어셨나요? 이제 저에게 소중한 한 표를 보내주세요!
공부면 공부! 웃음이면 웃음!으로 보답하는 반장이 되겠습니다! 이상 반장 기호6번 최**이었습니다."
첫째, 둘째...를 외치며 손가락으로 주의를 집중시키고 똘망한 눈빛으로 확신에 찬 어조를 구사하는 아이의 모습에...남편과 나는 박수를 치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학교에서 내가 가르치는 내용대로 표현하지면,
반언어와 비언어를 적절하게 구사하여 청중의 주의를 집중시키며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훌륭한 발표였다. (팔불출이 따로 없다....^^;;)
난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늘 부산스럽고, 시끄럽고 정리를 못하고 깜빡깜빡을 자주하는 아들의 부족한 면에만 집중하고 있었나보다.
처음보는 아이의 새로운 면모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순간이었다.
'내가 그동안 이 아이가 얼마나 성장하는지 알지 못한 채, 늘 부족한 점에만 주목했었구나...'
(이날도 반성과 참회로....하루를 마무리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이에게 잠들기 전, 20초 허그와 함께 이야기해 주었다.
"내일 반장선거에 당선이 되든 안 되든, 선거에 나가겠다고 결심한 것만으로도 넌 이미 훌륭해. 알지? 그러니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기쁘게 받아들이자."
사실 이미 작년에 낙선의 경험이 있었기에 큰 기대보다
만약 당선이 안 되었을 때 연거푸 느끼게 될 아이의 실망감에 더 걱정이 앞섰던 나는
어쩌면 아이를 이미 위로해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들이 떡하니 당선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라....가장 먼저는 기뻤다.
그리고 그 다음은 또다시 시작되는 걱정의 굴레였다.
실은 내가 학교에서 일하는 교사이기에...
차분하지 못하고 제 앞가림하기에도 급급한 유형의 아이가 반장이 되었을 때,
담임교사가 겪는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아들 때문에 담임 선생님이 힘들어하시지는 않을까?
다른 아이가 당선되었으면 하고 기대하시지는 않았을까?'
기쁨과 함께 걱정을 안고 퇴근하는 길.
집에 돌아와 아들의 반장당선 기념으로 아이들이 기다리던 마라탕을 먹으러 나섰다.
그리고 식당까지 걸어가는 길에 아들이 말한다.
"엄마, 나 다이소 가서 계획표 하나만 사 줘. 내가 이제 반장이라 선생님 전달사항 잘 전해야 하는데,
자꾸 깜빡깜빡하니까 계획표에 잘 적어야 해."
'아.........나는 또 괜한 걱정을 하고 있었구나.'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훌쩍 커버린, 그리고 지금도 성장하고 있는 너를 보며...
나도 엄마로서 더 자라야 함을 절실히 깨닫는다.
아들! 미안하다. 그동안 너의 장점과 능력을 알아보지 못해서...
아들! 고맙다. 너의 단점에 발목잡히지 않고, 용기있고 자신감 있게...너를 스스로 잘 키워가고 있어서.
이제는 내가 너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네가 스스로 자라는구나!^^
엄마도 너를 따라 더 많이 성장할게.
반장이 되어서 더 멋지고 자랑스러운 아들이 아니라,
반장이 되어서 서로를 존중하는 반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행동'하는 너의 모습에
누구보다 큰 박수를 쳐 주고 싶어.
아들! 너의 지금 모습 그대로. 너는 정말 멋진 사람이야.
엄마의 '괜한 걱정'은 오늘부로....끄~~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