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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밀의 화원 Mar 19. 2023

아이의 ADHD,
알아도 견디기 힘든 순간이 있다.

지난 번 대학병원에서 아들의 ADHD 약을 받아온 후, 석 달 가량의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아이의 몸무게가 많이 늘어서인지...약발이 받지 않는 느낌이다.

얼마 전부터는 부쩍 심해진 증상들에 견디기 힘든 순간들이 종종 찾아온다.


아이는 기본적으로 정리정돈이 안 된다.

먼 길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양말 한 짝은 식탁 위에, 다른 한 짝은 정수기 위에 있다.

학원가방, 학교가방, 실내화 가방, 외투 등은 기본적으로 늘 거실에 깔려있고...

학교 가방 속은 파일과 안내문과 학습지가 따로논다. 연필과 지우개는 필통 안에 있는 걸 못 봤다.


요즘 들어 부쩍 심해진 것은 병원진료를 받기 전처럼,

옷이나 축구공 등 들고나간 물건을 아무렇지 않게 그냥 두고 맨몸으로 돌아온다는 거다.

타고 나간 자전거도 돌아올 때는 어느새 없다. 

자전거를 찾아다니다보면, 횡단보도 앞에 그대로 세워져 있을 때가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자전거의 존재를 잊은 것이다.)

학원 갈 시간을 휴대폰 알람으로 맞춰주었는데,  

핸드폰을 몸에 지니고 나가는 걸 다 잊고 맨몸으로 나가 학원시간 다 잊고 놀고 있을 때가 태반이다.

오늘은 학교 운동장에 두고 온 외투를 찾으러 갔는데,

그 전에 이미 운동장에 두고 왔던 조끼까지 운동장에서 나뒹굴고 있다.

아이는 그동안 조끼를 두고 온 것도 모른 채 생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의도된 것이 아니라 아이 자신도 모른채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아이의 자존감을 깎아먹을까봐 매번 화를 낼수도 없다.

요즘 매일 퇴근하고 나면 다시 나가 아이의 물건을 찾아오는 일상이 점점 더 잦아지고 있다.


괜찮다 괜찮다....아무리 그렇게 되뇌어 보아도...

장거리 출퇴근 뒤에 찾아오는 이런 사고 뒷수습에까지 체력을 소진해야 하는 날에는

그저 웃으며 넘길 수가 없다.

좋은 말로 달래보고 혼자 심호흡도 해보지만, 

어느 날에는 압력밥솥이 터지듯이 터지고야 만다.

내가 힘든 것보다 아이가 느끼는 무력감이 얼마나 클 것인지....

나도 잘 알고 있지만, 현실에선 그게 제어가 잘 안된다.


게임에 대한 집착도 더 심해져서...

자기가 원하는 만큼 시간을 얻지 못할 때는 감정이 폭발해서 소리를 치고 대들 때가 많다.

그 끝은 꼭 집을 뛰쳐나가는 것으로 끝난다.

게임에 대한 절제력을 상실해가는 아이를 보며...

나는 약만 먹으면 해결될 줄 알았던 그 어두운 터널이 

아직도 캄캄한 그 길목 어딘가임을 더듬어 유추한다. 

무엇을 더 해야...아이의 일상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까.

아이를 위함과 동시에 나 자신도 살고 싶은 마음이 반반이다.


'화내지 말자! 소리지르지 말자!'를 종이에 써놓고 온 집안이 성황당인 것처럼 붙여놓았다.

그런데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그 종이가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그간 내가 참고 내가 치우면 조금씩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하며 해왔던 모든 일들이

나의 복직과 동시에 감당할 수 없는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잔소리는 점점 많아지고...목소리도 높아진다...

그리고 아이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져간다.


처음 아이가 ADHD임을 알았을 때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다 포용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나와 닮은 아이라 생각하면, 다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그게 아무리 엄마여도 쉽지가 않다.

모든 일상이 엄청난 도전처럼 다가오는 요즘.

나는 견디기 힘든 일상을 꾸역꾸역 살아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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