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하늘도 가려듣는 기도
닭이 새벽을 알리기도 전, 마을은 아직 잠들어 있었다. 설화 외할머니는 오늘도 달빛에 의지한 채 우물로 향했다. 흙길 위로 이슬이 내렸고, 우물 바로 맞은편 돌섬은 늘 해가 제일 먼저 걸려 뜨는 자리였다. 사람들은 그 돌섬을 ‘죽음의 섬’이라 불렀지만, 외할머니에겐 천상과 이승의 경계선인 신성한 곳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달래였다. 어느덧 머리에는 흰 서리가 내려앉기 시작했고, 손마디엔 세월이 깊게 박혀 있었다. 평생을 이 마을에서 살며, 오직 기도와 믿음으로 하루를 이어온 사람이다. 그녀는 언제나 그랬듯 우물 앞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깊이 숙여 조심스레 인사를 올렸다.
“오늘도 무사허게, 오늘도 고요허게 해 주소서..”
기도를 마친 후 두레박을 천천히 우물 속으로 내려보냈다. 깊은 수면 아래에서 맑은 물이 ‘철싹’ 하고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고이 항아리에 물을 붓고는 정서스레 머리에 이고, 새벽안개 서린 길을 천천히 걸어 집으로 향했다.
기도하는 여인
집에 들어서자마자, 설화 외할머니는 방금 길어온 우물물을 대접에 부어 장독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조용히 읊조렸다.
“천지신명님, 오늘도 우리 마을 사람들 무탈허게 지켜주시옵고…
가엾은 내 손녀 설화 몸도 튼튼허게 해주시고,
옆집 성님네 손주 녀석 말문도 얼른 트이게 해주시옵소서.”
그날도 외할머니의 기도는 새벽 공기 속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 기도 아래, 한 소녀가 자라고 있었다. 설화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었다. 젖 한 번 마음껏 물어보지 못했고, 엄마 품에 오래 안겨 있을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날 이후 설화는 외할머니의 품에서만 자라야 했다. 젖을 구하지 못한 날이면 보릿물로, 때로는 쌀을 한 줌 풀어 끓인 미음으로 겨우 숨을 이어갔다. 그래서인지 숨결은 늘 가늘었고, 밤이면 앓는 기침 소리가 이불 속을 적시곤 했다. 하지만 그런 아이도 이제는 스스로 숟가락을 쥐고 밥상 앞에 앉을 만큼 자라 있었다. 여전히 마른기침이 잦았지만, 밥 냄새만큼은 누구보다 먼저 알아채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설화야, 많이 기다렸제?
뜨슬때 먹자. 어여 이리 와.”
궁둥이로 걸어와 가장 아랫목에 자리 잡고는 활짝 웃으며 설화는 말한다.
“할매, 나는 할매가 삶아준 감자가 젤로 맛나.”
밥상에는 거친 보리밥 반 공기와 감자 몇 알, 그리고 우물에서 길어온 물 한 대접 뿐 이지만, 설화는 언제나 행복했다. 아이는 자기 밥그릇의 제일 큰 감자 하나를 집어 외할머니 그릇에 올려놓았다.
“할매가 이거 잡숴.”
“할미는 아까 감자 삶으면서 두 알이나 먹었당께. 내 새끼가 묵어야제.”
“어젯밤 감자 세 개밖에 없는 거 내가 봤는디!
할매 그리고 또 새벽에 그 우물 갔제?”
“내 강아지가 또 안 자고 할매 기다렸어?
일어나서 할매 없어도 걱정 말고 자고 있으랑께.”
“동네 사람들이 그 우물은 저주받았다 혀!
제발 좀 가지 말어! 우물귀신이 잡아가믄 어쩔라고 그려!”
외할머니는 웃으며 설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우물은 우리 마을 생명수여.
신령님이 주신 귀한 선물이여.
그런 말 함부로 하면 신령님이 노허신다.”
“허지만 저 아랫동네 양반 어르신이 그 물 마시고 죽을뻔혔다는디?”
“그 우물은 착하고 진실한 사람한테만 효험이 있는 것이여.”
설화는 할머니의 말이 낵히진 않았지만, 금세 할매의 말에 수긍한다.
“허긴, 그 양반집 어르신 못돼 먹긴 혔어 그치? 할매.”
“큰일 날 소리! 어디 가서 주둥이 함부로 놀리면 못 써! 양반집 놀리면 어떡해 되는지 몰러?”
풀이 죽은 설화는 입술을 삐쭉삐죽 내민다. 두 사람은 그렇게 아침밥을 먹고, 나갈 채비를 했다. 마당에 나서니 저 멀리 돌섬 위로 해가 완전히 걸려 있었다. 마치 하늘과 땅이 맞닿은 듯한 풍경 속에서, 외할머니는 중얼거렸다.
“밤 사이 버섯이 많이 피었겠구먼.
우리 성님하고 같이 가야긌네.”
설화집과 한집 건너에는 할머니의 단짝친구 꽃분이네 할머니댁이다. 설화의 총총걸음으로 30걸음 만 가도 꽃분이네 할매댁으로 금방 갈 수 있다.
담 너머로 설화할머니가 고개를 빼꼼 내민다.
“성님, 성님! 나왔소!”
기다렸다는 듯 담 쪽으로 꽃분이 할머니가 걸어오고 있다. 꽃분이 할머니는 설화 외할머니보다 두 살 위였다. 둘은 어릴 적부터 한 마을에서 자라며 평생을 함께 자란 친구나 다름 없었다.
“성님!성님! 계셔? 성님 동상 왔구먼!
어젯밤에 비가 촉촉이 내렸응게,
돌섬에 버섯이랑 많이 폈을 것이오.
함께 가실랑가?”
“그려, 안 그려도 나도 자네가 올 줄 알고 미리 다 챙겨놨네. 가봅세. ”
꽃분이 할머니는 손자 달수를 불렀다.
“달수야! 얼른 오너라잉!”
달수는 어릴 적 부모를 잃고, 벙어리가 된 꽃분이할머니의 친손주였다. 여섯 살 무렵, 눈앞에서 부모가 도적들에게 살해 당하는 장면을 보고는 그만 목소리를 잃었다. 그날 이후 달수는 친할머니의 손에 자라며 누구보다 부지런한 아이가 됐다. 그는 자신보다 큰 지게를 지고 와 할머니들의 바구니를 가리켰다. 손짓으로 “이거 제 등에 올리세요” 하는 듯했다.
“아이고, 아서라. 갈 때라도 편허게 가거라.” 두 할머니는 동시에 웃었다.
설화는 달수를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달수 오빠, 바구니 말고 나 업어줘!”
철없는 설화는 웃음을 잃은 달수에게 오늘도 수줍은 미소를 선물했다.
네 사람은 축축한 흙길을 따라 돌섬 앞으로 걸어갔다. 멀리서는 산 짐승 울음소리가 메아리쳤고 돌섬은 언제나처럼 짙은 회색 안개에 싸여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죽음의 섬’이라 불렀지만, 두 노인만은 알고 있었다. 이곳은 죽음의 섬이 아니라, 이승과 천상의 문턱이란 걸.
이 죽음의 섬이라 불리는 이곳은 유명한 심마니 꾼들 수십 명이 들어가도 모두 살아 돌아오지 못할 만큼, 악명 높은 돌섬으로 불렸다. 그런데 이 죽음의 섬에도 허락한 단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은 바로 두 할머니들도 어릴 적 부모님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했다.
두 할머님들 말에는 옛날옛날에 어느 효심 깊은 한 아들이 병든 어미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돌섬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곤 열닷새 만에 겨우 귀한 풀 한 뿌리를 캐어 돌아왔지만, 아들은 그만 절룸발이가 된 채로 돌아왔다고 한다. 험한 돌산으로 인해 아들의 몸은 어느 하나 성한 곳이 없었지만, 그 아들은 병든 노모를 위해 돌섬에서 캐온 귀한 약초를 정성스레 달여 먹였다고 한다. 아들이 목숨 걸고 구해온 약초를 먹고 그의 어미는 기적처럼 다시 일어섰고 정신도 몸도 건강하게 장수하였다. 는 전설 같은 이야기라 하셨다.
그날 이후 마을사람들은 돌섬을 ‘천상의 섬’이라 불렀다. 그리고 사람들은 말했다.
그 섬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다.
"하늘도 사람을 가려 그 문을 허락한다."
“선한 사람에겐 그 천상의 문을 열어주고,
악한자들은 모두 집어삼켜 영혼을 가져간다."라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두 노인에겐 그저 생계의 터전이자 어머니 품 같은 따뜻한 곳이었다. 두 노인은 어릴 적부터 돌섬 앞 들판에서 버섯도 따며, 약초들도 캐며 놀았기에, 두려움보다 익숙함이 더 앞섰다.
“성님, 여기 봐요잉. 버섯이 한가득 폈네!”
“오메, 저기 봐요 성님. 우리 설화 얼굴만 하잖여!”
꽃분이 할머니가 냉큼 버섯을 따서 설화 외할머니 바구니에 넣고는 말했다.
“이건 우리 귀한 설화가 먹어야제.”
“아녀, 성님. 여서 힘 젤로 많이 쓰는 우리 달수 줘야제. 녀석이 우리 집 나무까지 다 해주는디.”
그렇게 세상 의지할 데 없던 두 사람은 손주와 손녀를 키우며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 있었다.
큰 바구니는 금세 가득 찼다. 냉이, 쑥, 버섯 각종 약초들이 한 아름이었다. 그날 저녁 반찬으로도, 사흘을 먹고도 충분히 남을 양이었다.
“달수 오빠, 나 다리 아파. 업어줘.”
설화의 말에 달수는 냉큼 허리를 내어 준다.
철부지 설화는 웃으며 냉큼 올라탔다.
“오빠 지게는 꽃마차보다 더 좋아.
바람도 쐬고, 새도 보고, 짐승들 말소리도 듣고!”
그런 설화가 마냥 귀여운 달수는 얼굴이 붉어져 고개를 푹 숙이곤 미소를 지었다.
“설화 너 얼른 내려와라잉. 달수 힘들겄다.”
“싫어! 나 아직 다리 아파!”
“아이고 성님, 우리 설화는 철들라면 멀었당께.”
“성님, 그나저나 우리 달수도 인자 장가보낼 때 됐제.”
“그라제, 그 코찔찔이 달수가 이제 어엿한 사내가 됐네.”
꽃분이 할매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저놈 고집이 얼마나 센지.
나도 산에 갔다 오믄 지게에 억지로 날 태워 업고 온당게.”
설화 할매는 그런 달수가 기특한 듯 웃었다.
“허허, 철부지 설화랑 고집센 달수랑 살면 볼만 허겄소 성님.”
사실 설화의 외할머니는 마음속으로 이미 정해두고 있었다. 달수라면 설화를 잘 지켜줄 것이라 생각했다. 비록 말은 못 하지만, 달수의 그 마음은 누구보다 따뜻했고, 어느 장정보다 듬직했다.
그날 저녁, 연화 할매는 새벽에 따온 제일 큰 버섯을 정성스레 달여 꽃분이 할매네로 갔다.
“성님, 성님 나와보세요.”
“어찌나 버섯이 큰지, 물을 열 대접을 넣고 끓여도 향이 억수로 진혀요.”
“이거 성님 먼저 잡숩고, 달수도 한 대접 줘요.”
꽃분이 할매가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동상 참 말도 안 듣네잉.
내가 설화 달여 주라고 혔잖어.
내가 동상보다 나이는 많아도 더 튼튼혀.
동상이나 들게. 어서어서.”
“성님 드셔요.
아까 본 게, 걷는 것도 인자 시원찮아 보이드만.”
그날 밤, 두 노인의 주고받는 아름다운 말소리에 천상의 대문도 조용히 닫혔다. 마을엔 고새 고요한 어둠이 내려앉았고, 다음 날 새벽. 설화 할머니는 어김없이 수탉이 울기 전 제일 먼저 우물 앞을 향해 나섰다.
사람들은 돌섬과 우물을 두려워했지만, 어쩌면 그것은 인간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과 심판의 문이 아녔는지 모른다. 선한자에게는 생명이 되고, 욕심이 앞선 자에게는 죽음이 되던 그곳. 설화 할머니가 어쩌면 매일 새벽 기도를 멈추지 않았던 이유도, 선과 악의 진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