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례: 꽃이 피고 진 날

제4화: 엄마의 팔자를 피할 수 없었던 딸

by 최해주


돌섬은 어느새 겨울의 흰 치마를 벗고, 연둣빛 치맛자락으로 갈아입었다. 따뜻한 봄바람이 부를 무렵, 달수와 설화는 드디어 지난해 약속했던 혼인을 올리기로 했다. 두 할매는 비록 내줄 재산 한 줌 없었지만, 자식처럼 키운 두 아이의 혼례만은 남부럽지 않게 치뤄주고 싶었다.




<두 할매의 선물, 봄날의 혼례>


“성님, 성님! 동상 왔으요.”


“달래 벌써 왔는가? 하여간 승질도 급혀라.”


“안 그려도 동상이 새벽같이 일찍 올 줄 알고

나도 진작에 채비 다 준비 했당께.”


“아니, 성님! 성님이 나보다 더 급허고만!”


두 할매는 뭐가 그리 들 떠있는지, 주고받는 대화 속에 설렘과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성님, 나도 오늘 이것만 장에 내다 팔면

인자 준비는 다 끝난 거 같으요.”


“그려 동상 그동안 고생 많이 혔네, 우리 가봅세.”


둘은 머리에 큰 소쿠리를 이고 함께 장에 나섰다. 나란히 사이좋게 자리 잡고 멍석을 깔은 달래 할매와 꽃분이할매.


“돌섬에서 오늘 새벽에 캐온 첫 도라지가 왔어요.”


“귀한 약재로만 쓰인다는 요 버섯도 있당께요.”


“어르신 이거 얼마예요?”


“내가 오늘은 기분이 억수로 좋은게

아주매 사 갈 거면 내가 거저 줄게”


“이건 무슨 버섯이에요?”


“이건 깊은 산에서만 나는디,

우리 손주가 돌섬 꼭대기에서 딴 거여.”


“돌섬에서 따 온 거라고? 이게 무슨 버섯인데요.”


“이것이 뭐랬드라.

동상 약방 할배가 아까 뭐라고 혔드라?”


“고것이 둥이버섯인가, 능이버섯인가.

아무튼 엄청 귀한 악재라 혔어요.”


“보기엔 색이 꺼무스름 헌게 보기 흉혀도,

귀한 약재로만 쓰인다고 하드만.”


“그럼 이건 어떻게 해 먹는데요?”


“이거 토종닭에 넣고 푹~ 고아 먹으면,

사내헌테 그렇게 좋다데?

그 뭣이여! 보약 한재 먹는 거랑 똑같다 혔어.”


“아 그려요? 아 그럼 이거랑, 이 도라지는요??”


“이 도라지도 이 할매랑 나랑 가서 오늘 캔 거여”


“돌섬에서 나오는 재료들은 다 좋은거 알지 아주매?”


“아 그럼 알죠.. 전 거기 가고 싶어도 무서워서 못 가요.”


“아니 근데 이걸 나이 드신 분들이 어떻게 다 따 오셨데?”


“그 내 손주가 호랑이도 잡는 어마어마하게 큰 칠척 장군감인디, 가랑 하께 가면 암시랑 안혀.”


“어? 그럼 설마, 그 말 못 하는 양반집 도령같이 생긴 그분 말씀 하시는 거예요?”


“맞당께! 가가 내 손주랑께.”


“어르신 이거 저 다 주셔요!”

나온지 얼마 안 된 꽃분이 두 할매들은 어리둥절하면서도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둘은 무겁던 빈 소쿠리를 들고 장 구경에 나섰다.


“쫄깃쫄깃 맛 좋은 시루떡 있어요.”


“물 건너온 귀한 비단옷도 있어요.”


“눈깔이 싱싱한 고등어도 있어요.”


두 할매는 마치 어릴 적 엄마 손을 잡고 구경하는 것처럼 너무 설레었다.


“성님! 나는 오늘 그거 다 못 팔 줄 알았는디,

우리 달수덕에 오늘 횡재 했구먼!”


“그러지 말고 성님! 우리 아가들이 결혼하는디

시루떡 한 대는 해야지 않으요?”


“가만 보자, 이거면 충분할 것이여.”


“우리가 야들한테 비단옷은 못 혀줘도,

혼례 흉내는 내 줍시다!”


“그려. 우리가 해 줄수 있는건 다 해주야지!”


신이 난 두 할매는 닭 한쌍과 돼지고기, 쌀 등 혼례에 필요한 재료들을 샀다. 두 할매의 소쿠리는 금세 가득 찾다.



오누이에서 백년해로

달수와 설화의 혼인 소식을 이웃 몇 사람에게만 소식을 알렸다. 비록 성대한 혼례 분위기는 아니였지만, 마을 사람들은 진심으로 이 둘의 앞날을 축복해 주었다. 그중에는 설화가 갓난아기였을 때 젖을 나누어 먹였던, 설화 어미의 오랜 친구도 있었다. 그녀는 설화의 고운 자태를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달수는 달래 할매가 손수 지은 옷을 입었다. 비록 말은 못 하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누구보다도 단단했다. 설화는 꽃분이 할매가 정성껏 염색한 치마와 저고리를 입었다. 조용하고 조촐한 혼례식이였지만 네 사람은 너무 행복해했다. 서로 마주 앉아 약주를 주고받으며 혼례를 서약하였다. 그때 꽃분이 할매는 전날 밤, 달수에게 건네준 은 가락지를 조심스레 꺼내며 말했다.

“달수야, 이건 니 어미가 남긴 거여.

우리 설화 손에 꼭 끼워주거라.”


달수는 떨리는 손으로 설화의 두 손을 감싸 쥐고, 은가락지를 조심스레 끼워주었다. 그 순간 하늘도, 신도 모두가 두 사람을 바라보는듯 했다. 마치 온 세상이 이 둘을 위해 숨을 멈춘듯 했다.




해가 기울고 저녁이 되었다. 달수와 설화는 꽃분이 할매 안채에서 첫날밤을 맞았다. 방 안에는 두 할매가 겨울 내내 짓고 꿰맨 포근한 이불이 놓여 있었다. 방 한편 상 위에는 신혼 부부를 위한 술상도 준비되어 있었다. 오누이처럼 자라온 둘은 마냥 이 상황이 어색하기만 했다. 하지만 달수와 설화는 할매들이 알려준 예법대로 조심스레 움직였다. 설화가 달수에게 막걸리 잔을 내밀었고, 달수도 떨리는 손으로 설화의 잔을 채웠다. 달수는 단번에 막걸리를 한번에 들이 마시더니, 시루떡을 손으로 쭈욱 찢어 설화 입속에 넣어주었다. 오고가는 술잔속에 천천히 초는 꺼지고, 두 할매의 설움도 고생도, 그 빛 속으로 사라지는 듯 하였다.


“성님.. 성님 그동안 고생 많았소..”


“고생은 무슨, 나보다 동상이 고생혔지.”


“우리 달수가 비록 말은 못 혔지만, 내 속은 하나도 안 썩였당께.”


“성님 나도 그려요, 우리 설화 키우면서

힘든 것보다 좋은 날이 더 많았으요.”


“우리 설화는 내 딸이 꼭 환생한것 같으요.”


“내 딸이 그렇게 가고 나서, 하늘이 내 딸 다시 선물한거 같으요.”


“성님도 걱정 마쇼, 우리 달수도 언젠간 말 틀 거요.”


“내가 억수로 기도 하고 있응께,

신령님도 내 소원 들어줄 것이요.”


“그려 동상 고맙네, 아이고. 인자 동상이라고 하면 안 되지.

사돈.. 고맙구려 증말 고맙구려..”


“성님도 참. 사돈이라고 헌게 이상 허구만”


“그럼 나도 사돈! 우리 설화 잘 부탁혀요.”


“한잔 받으시오 사돈!”


“아이고 고맙구려 사돈.”


젖은 손수건으로 아이의 이마를 식혀주던 밤도, 매일 정성을 들여 기도를 드렸던 날도. 힘들었지만 돌아보면 모두 눈부신 시간이었다. 자식들을 일찍 떠나보내고, 공허한 삶 속에서 운명처럼 또 다른 자식들이 찾아왔다. 두 할매는 그런 아이들을 품에 안고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았다. 그 거친 품에서 밥을 먹고 잠이 들며 자란 두 아이는 이제 세월이 거꾸로 흐르듯, 늙어가는 할머니들의 주름진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사랑은 자라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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