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과 숲이 부른 아이

제6화: 천상의 귀를 가진 아이

by 최해주

훗날 연화가 자라서야 모두는 알게 되었다.

그날 밤, 번개가 하늘을 가르고 비가 쏟아지던

그 순간, 우물이 가져간 것은 설화의 숨이 아니라 목소리였다는 것을.


설화의 고개가 힘없이 떨어지고, 의원이 고개를 저었을 때, 두 할매와 달수는 모두 설화가 떠났다고 믿었다.


“설화야! 설화야!"

달수는 차가워져 가는 손을 붙잡고, 태어나 처음으로 입을 찢어 울부짖었다.

그날 새벽, 달래 할매는 다시 돌섬 길을 향해 무릎을 꿇고 올랐다.


“천지신명님.. 제발 내 손녀를 뺏어가지 마시오.."


“설화를 데려가려거든, 차라리 이 노인을 데려가시오."


“그렇게만 된다면 내 다음 생에도 환생하지 않고,

지옥길이라도 바로 뛰어들어 갈 터이니,

제발 비나이다 제발.."

달래 할매는 목이 터져라 울고 또 울며 빌었다.


하늘도 미안했던 것일까.

달래할매의 기도가 닿았던 것일까.

새벽이 밝아올 무렵, 식어가던 설화의 몸이 아주 조금, 아주 미세하게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설화의 눈과 입술은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고, 그저 산 송장처럼 누워만 있을 뿐이었다.


죽음의 문턱도 모성을 이기지 못했다.

달수와 두 할매의 지극정성으로 설화는 며칠 뒤 눈을 떴지만 일어나진 못했다. 그런데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설화의 몸은 반쯤 저승에 다녀온 사람처럼 힘이 없는데, 가슴에서는 젖이 돌기 시작한 것이였다


“성님, 이거 좀 보소!
죽었다 깨어난 사람이 젖이 도는 법이 어디 있소?”


꽃분이 할매가 떨리는 손으로 설화의 몸 구석구석을 닦아 주다가 연화에게 젖을 물렸다. 그러자 연화가 끙끙 거리며 젖을 빨기 시작하자 반대편 젖가슴에도 몽올몽올 모유가 흐르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려도 정신은 있는갑소 성님.."


“설화 자도 제 새끼를 낳은 거를 아는것 같으요..”


“사람이든 짐승이든 어미의 모성은 참 대단허네.

꽃분이 할매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오메 내 새끼 잘 먹는 거 봐요 성님..”


“성님 우리 연화 인자 살겄네요..”


“천지신명님 감사합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요.”


“내 새끼.. 참말로 고맙다.

딴생각 말고 네 딸만 생각하고 정신 꼭 붙잡고 있으라..”


연화가 배가 고파 울기 시작하면 두 할매는 설화를 옆으로 살짝 돌려 눕히고 연화를 품에 안겨 젖을 물렸다. 희한하게도 연화는 설화의 품에 안겨 젖을 빨 때마다 금세 울음을 그쳤다.

의식이 없는 설화의 품은 연화를 품을 때마다 더 따뜻했고, 연화 입술에 닿는 젖은 놀라울 만큼 잘 나왔다.


시간은 잔인할 만큼 빠르게 흘렀다. 연화는 설화의 가슴에서 젖을 먹고, 두 할매의 등에 업혀 자라났다. 돌이 되던 날, 두 할매는 연화를 위해 명주실, 붓, 돈, 곡식이 담긴 그릇이 가지런히 놓고 소박한 상을 차렸다.


“자, 우리 연화가 뭐를 잡으려나 보자.”


꽃분이 할매가 손뼉을 치며 웃자, 연화는 기어가듯 상 앞으로 나갔다. 작은 손이 이리저리 망설이다가 하얀 명주실을 덥석 움켜쥐었다.


“아이고야, 그려 연화야 건강이 최고여!!

잘 혔다 내 강아지야..”


마당은 한바탕 웃음으로 가득 찼다. 달래 할매는 안방 문간에 걸터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며 눈가를 훔쳤다. 설화는 여전히 말은 못 했지만 두 할매의 도움으로 잠깐동안은 앉을 수는 있게 되었다.


‘설화야, 우리 연화. 참말로 예쁘지?’

그렇게 다섯 식구의 짧은 봄날이 흘러갔다.

두 노인의 이별

연화가 다섯 살이 되었을 무렵, 두 할매의 걸음은 조금씩 느려졌다.


“성님, 이놈의 다리가 인자 영 말을 안 듣는당께.”


“내 다리는 진작에 남의 다리였당께 동상.”

둘은 서로를 부축하며 매일 함께 웃었지만, 아직도 누워있는 설화를 보며 커가는 연화를 보면 항상 가슴이 저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달래 할매가 먼저 앓아눕게 되었다. 연화는 할매 곁에 쭈그리고 앉아 작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할매, 아파?”


“아니여, 우리 연화 큰 거 보니 기분이 허벌나게 좋아서 좀 누워보는 거여.”

달래 할매는 억지로 웃어 보였지만 숨이 점점 가빠져 갔고, 며칠 뒤 달래 할매는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꽃분이 할매 또한 달래 할매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편안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 두 노인의 소식을 들은 동네 사람들은 말했다.


“생전에 두 할매가 그렇게 붙어 다니더니, 저승길도 같이 가는갑네.”


천상과 소통하는 아이

두 할매가 떠난 뒤, 이제 집에는 세 식구만 남았다. 달수, 설화, 그리고 연화.

연화는 여섯 살이 되던 해, 처음으로 달수와 함께 돌섬에 갔다.


“연화야, 아부지 꽁무니만 따라다녀라.
저 위쪽은 비탈이 가파르니께.”

달수는 손짓으로 ‘오지 마라’는 신호를 보내고 지게를 메고 산으로 올라갔다.


연화는 그늘진 숲길에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작은 목소리들이 웅성웅성 들리는 걸 느꼈다.


(저기야!조금만 더 올라가면 있어!)


“누가 말하는 겨?”

연화가 조용히 묻자, 나뭇잎이 살짝 흔들리며 토끼 한 마리가 고개를 내밀었다.


(여기야.)

연화는 토끼가 말하는 걸 당연한 듯 받아들였다.


“응, 알겠어.”


그날 연화는 돌 틈 사이, 큰 나무 아래, 사람들이 ‘귀하디 귀하다’고 하는 약초들만 귀신같이 골라냈다. 달수는 연화가 가리키는 대로 땅을 파고 줄기를 뽑아 올리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다, 이 돌산에 있었던 겨?’


산삼, 더덕, 기이한 모양의 버섯들까지. 연화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마다 보물처럼 약초가 솟아 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 달수는 그런 연화가 참 신통하기만 했다.


“대체, 너는 아부지보다 어찌 그렇게 약초를 잘 찾는 게냐?”


연화는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토끼가 말해줬어요.
어제는 다람쥐가, 그저께는 사슴이.”


설화의 말을 들은 달수의 얼굴이 굳었다.

고게 시방 뭔 말이여 연화야??’


달수는 그런 연화의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날이 한 번이 아니었다.

두 번, 세 번, 열 번. 연화가 가리킨 곳마다 귀한 약초들이 쏟아져 나왔다. 달수는 더 이상 우연이라고 믿기엔 부정할수 만은 없었다.

초가에 찾아온 복

연화 덕에 달수의 집 살림은 눈에 띄게 나아졌다. 장에 나가 약초를 내다 팔면 사람들이 앞다투어 사갔다.


“대체 어디서 이런 걸 구해오시오?”

달수는 차마 말을 할 수 없으니, 대답 대신 웃음과 고개 끄덕임으로 대신했다.


몇 해가 지나자 집은 한 칸, 두 칸 더해져 큰 사랑채까지 달린 초가가 되었다. 설화 곁을 살뜰히 보살필 계집종도 들이고, 바깥일을 거들 머슴도 들였다. 비록 신분이 양반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말했다.


“달수는 상민 중에서도 갑부여.”


“사는거 보믄 진짜로 양반보다 낫다니께.”


"아니 진짜로 재주도 좋아.

맨날 돌섬에서 어떻게 저런 귀한 약초들만 캐오는가 몰러."


“그 약초들로 금세 부자가 된 거 아녀!

진짜로 호랑이도 때려잡는다는 옛 소문이 맞나벼”


“저런 귀한 약초는 심마니들도 못 캔다는디.

그 거대한 달수란 놈이 맨날 꼭대기 가서 호랑이랑 싸우고 약초를 뺏어 온다는 소문이 맞을지도 모른당께?!”


그 무렵부터 아랫마을 양반집 어르신이 어린 아들을 데리고 종종 돌섬에 사냥을 나오기 시작했다. 그의 아들은 마른 체형에 눈빛이 온화한 사내였다. 연화 또래로 보이는 사내아이는 늘 그 양반집 아버지와 함께 작은 활을 들고 따라다녔다. 어느 날, 돌섬 입구에서 마주친 달수에게 양반집 어르신이 먼저 말을 걸었다.


“자네가 그 달수일세?”


양반집어르신의 질문에 즉시 땅바닥에 머리를 조아 박고 고개를 끄덕였다.


“호랑이도 맨몸으로 잡는다더니,
그게 자네구먼 허허!!”


순간 말문이 막힌 달수는 손사래를 치며 연신 고개를 저었다. 어르신은 그런 달수가 반가운지 얼른 일어나라 하였다.


괜찮네, 과장인들 어떻고 거짓뿌렁이면 어떻한가. 아비 노릇만 제대로 하면 그게 진짜 사내지.”


그 말에 달수의 눈이 잠시 흔들렸다.

어르신은 눈치 빠르게 눈을 돌렸다. 옆에서 어르신의 아들이 연화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자네 딸인가 보구먼 딸이 참으로 곱구먼.”

양반집 어르신은 인자한 눈으로 연화를 보았다.


“이름이 무엇 이드냐?”


그러자 똑순이인 연화가 직접 대답했다.


“연화입니다.”


“연꽃 연(蓮)에, 꽃 화(花)냐?”


“네.”


“이름이 참 곱구먼. 우리 애 이름은 ‘윤’이네.
윤아 너와 비슷한 또래 같구나.”

연화와 윤은 수줍은 듯 서툰 눈인사를 나누었다.


그날 이후, 양반집이 돌섬에 올 때마다 아이 둘은 자주 마주쳤다. 윤은 활을 들고 사냥을 하러 왔지만 점점 사냥하는 날 보다 연화와 노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윤아 왜 요즘은 사냥을 안 하느냐.”


“동물들이 제 화살에 맞아 죽어가는 걸 보니 너무 불쌍합니다. ”

윤은 사실 연화가 동물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는 걸 믿고 있었기에 연화와 함께 지내고 난 후부터는 사냥을 거의 하지 않았다.


잃어버린 엄마의 목소리를 찾아서.

연화는 하루도 빠짐없이 해뜨기 전, 우물로 향했다. 어느 날, 달수는 일부러 먼저 일어나 우물가 뒤편에 몸을 숨겼다. 연화는 작은 항아리를 들고 종종걸음으로 우물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우물가 돌에 살짝 앉아 조용히 말했다.


“엄마, 나 왔어.”

설화의 말을 들은 달수는 순간 몸이 굳어졌다.

숨어서 지켜보던 달수가 참지 못하고 앞으로 걸어 나왔다.


발소리에 놀란 연화가 고개를 돌렸다.


“연화야 너 지금 누구랑 대화하는 거냐?”

달수는 사색이 된 채 연화에게 물었다.


엄마라고 하는 것 같던데, 엄마는 집에 계시는데 넌 누구와 대화를 한 거니?

라며 달수는 연화에게 물었고 연화는 입술을 꼭 다물었다가, 결국 천천히 말을 꺼냈다.


“아부지 사실은...”

달수의 눈이 연화를 향했다.


“내가 아부지한테 그짓말 혔어..

아부지 참말루 잘못했구먼.

고개를 푹 숙인 채 연화가 말했다.


그럼 뭣하러 이 새벽에 맨날 잠도 안 자고

우물에 오는겨?

달수가 물었다.


사실..아부지..나는..

엄마랑 말하러 오는 거여..”

그 말을 들은 달수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처음엔 나도 몰랐어.
할매 등에 업혀서 우물물 뜨러 올 때마다
누가 자꾸 날 부르는 것 같았어.

아가, 아가… 하고 나를 부르는 것 같은 소리를.”

연화는 손가락으로 우물 안을 가리켰다.


“근데 어느 날부터
그게 엄마 목소리라는 걸 알았어.”

달수는 연신 숨을 삼켰다.


“엄마 목소리는.. 여기 있어.
우물이 데려갔대.”

연화의 눈동자가 조용히 흔들렸다.


“엄마가 그랬어.
자길 데려가려다가, 달래할매가 너무 많이 울어서.. 하늘이 엄마 몸은 남겨두고,
목소리만 여기 묶어놨다고.”

연화는 두 손으로 우물가 돌을 쓸어내렸다.


“엄마가 나한테 그러셨어.

엄마 목소리는 여기 있고, 엄마의 몸은 나와 함께 있다고.


“그러니까, 내가 보고 싶으면 집에서도 나를 보고,
말하고 싶으면 여기 와서 나랑 말하라고 했어.”


“그래서 나는.. 엄마 보러 집에 있고,
엄마랑 말하러 우물에 오는겨.”

달수는 너무 놀라 연화의 말을 믿지도 안 믿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연화는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아빠는 내가 어릴 적부터 동물들이랑

말하고 있다는 거 말혔는디도 안 믿었잖여..
난 내가 우물 얘기까지 허면 아부지가 나 진짜로 미쳤다고 할까비 말 안한겨.. .”


“...........”

달수는 그만 할말을 잃고 연화를 쳐다보았다.


“두 할매도 거기 계시고, 엄마의 엄마도 거기 계시대. 다들 나한테 말혀줬어.

달수의 무릎이 힘없이 꺾인 채 달수는 순간 연화와 어릴 적 약초들을 캐내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의 입술이 떨리며 오랜만에, 아주 힘겹게

입이 열렸다.


“연화야.. 네가 혼자 얼마나 겁났을꼬..”

연화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아부지가 나를 안 믿을까 봐 그게 더 무서웠어..”

그 말을 들은 달수는 그대로 연화를 끌어안았다.


그의 어깨가 작게 흔들렸다.

“아니다..아부지가 잘못했다.”


이제부턴 네 말 다 믿는다.
“우물 얘기도, 동물들 얘기도 다.”

그 말을 하는 순간, 바람도 없는데 우물 안쪽에서 잔물결이 찰랑— 하고 일었다.


연화는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아부지 지금 엄마가 웃었어!”


달수는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떨리는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우리가 지금 누구 덕에 굶지도 않고 이렇게 살게 된 게 다 네 덕인데, 아부지가 그걸 애써 부정한 것 같구나.”

달수의 눈이 붉어졌다.


“연화 외할머니께서 예전에 그러셨다.
너는 하늘이 내린 아이라구...”


“아부지는 그땐 그저 네가 귀한 손녀라서,

그냥 하시는 말인 줄 알았지.“


“근디 참말로그게 아니었구나.

아부지가 참 못났다. 그러고 본게 장모님 말도 안 믿었네.“


달수는 눈물을 훔치며 연화의 양 어깨를 두 손으로 감싸며 한 번 더 말했다.

“내가 널 안 믿으면.. 누가 널 믿어주겠냐.
앞으로는 아부지가 제일 먼저 너를 믿을 거다.”


그 말이 끝나자, 우물 속에서 찰랑— 하고 또 한 번 물결이 일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날, 달수는 처음으로 알았다.
연화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잇는 아이라는 것을.

달수는 연화의 손을 꼭 잡으며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연화야 그리고 이것 하나만 약속하자.”

연화가 눈을 들어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이 말은 아부지 말고
그 누구한테도 하면 안 된다.”

달수의 눈빛이 흔들렸다. 의심 때문이 아니라, 바로 두려움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널 미쳤다고 생각할까 봐서가 아니다.
그런 말이 퍼지면 누군가 네게 해를 끼칠까봐 그러는 거다.”

연화의 작은 손을 덮은 달수의 손이 떨렸다.


“그러니 이 일은 우리 둘만 아는 비밀로 하자.
죽을 때까지 지키자. 약속허자, 연화야.”

연화는 숨을 고르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부지. ”

그 순간, 우물 속 물결이 마지막으로 아주 잔잔하게 흔들렸다.


나는 이렇게 믿는다. 아이에게 건네는 단단한 믿음 하나가 그 아이가 앞으로 마주할 큰 산과 큰 고비를 넘어서는 힘이 된다. 부모의 믿음은 때로는 세상 어떤 가르침보다 깊고 오래 남는다.

그리고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천상의 세계란,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보다는 믿는 사람에게만 열리는 또 하나의 문인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고,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닐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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