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상민과 양반의 혼인

제8화: 신분을 거스른 조선의 로맨스

by 최해주

조선 팔도를 흔든 둘의 혼인

연화와 윤이는 많은 이들의 축복을 받으며 혼인을 올리게 되었다. 물론 반대하는 이도 있었고, 혀를 차며 못마땅해하는 양반들도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크게 술렁인 것은 오히려 상민들의 반응이었다. 조선 시대에 양반가와 상민의 혼인은 감히 상상조차 못 할 일이었고, 이 둘의 혼인 소식은 상민들에게 “혹시 나도 신분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하는 작은 희망마저 품게 하였다. 조선팔도의 두 사람의 혼인은 신분의 벽을 뒤흔드는 사건이었고, 이 소문은 들을 타고 산을 타고 강을 건너 멀리멀리 퍼져나가 글쟁이들에게까지 닿아 이들의 사랑을 로맨사 글감으로 여기며 너도나도 붓을 들기 시작했다.


윤이네 안채: 혼인을 앞둔 대화

혼인 날짜가 정해진 어느 날,

윤이네 안채에서는 조용하지만 깊은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나는 이게 정말 잘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부모가 자식을 위해 길을 열어준다지만,
상민과 양반의 혼인이라니요.”

안주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전직 벙어리 나무꾼 아버지에 이제는 벙어리 어머니까지. 다른 안주인들도 다들 한 마디씩 보탠다구요..그 말 들을 때마다 내가 얼마나 수치스러운지 알아요?”


양반 어르신은 아내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마누라, 내가 왜 당신 마음을 모르겠소.”


“당신 잊었소?

나 또한 온전한 양반 핏줄이 아니었잖소.”


“우리 어머니가 상민출신의 첩이었고,

아버지만 양반 출신이었소."


“그러니 나 역시 반은 양반이고,

반은 상민 아니겠소?"

그는 부드럽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를 뼛속까지 양반으로 받아 주신 분은

우리 장모님당신이 아니오?"


“우리 또한 모두의 반대가 심했지만,
든든한 장모님의 버팀목 아래 당신의 사랑 안에서
우리가 혼인할 수 있었지 않소.”

그 말을 듣자 안주인의 눈동자에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


“그때의 우리도 지금처럼 그러했지요..

나 역시 그때를 잊은 건 아니라오.”


“그걸 알면서도 영감은 왜 이렇게 고집을 피워요?”


“세상 사람들의 등쌀에 영감이 얼마나 힘들었는데.”


“나는 또 그 길을 우리 윤이가 겪을 생각을 하니

너무 걱정이 되고 겁부터 난다 이 말이요..”


“영감이 암만 잘해도 내가 암만 노력해도 우리한테는 살림살이처럼 붙어 다니는 소문을 떨칠 수가 없었잖아요!


“나도 다 아네. 내가 자네 맘을 알지,

누가 우리 마누라 맘을 알겠는가..”

양반 어르신은 아내의 손등을 가만히 토닥였다.


“마누라, 우리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소.
우리 윤이와 설희가 행복하게 살아주고
손주들 재롱 보며 여생을 보낸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겠소?”

완강한 영감 말에 안주인도 이제는 포기한 눈치였다.


“알았어요..

사람이 죄짓지 않고 바르게 살면 되는 거지요.”

우리가 애들 지켜주면 되지요..”


“내 옆에 이렇게 든든한 영감이 있는데,

나도 이젠 무서울 거 없소이다.”


양반 어르신이 그제야 환히 웃으며 말했다.
“나는 우리 마누라가 금방 마음을 돌릴 줄 알았소.”


스무 살 때로 돌아간 듯 안주인은 새침한 표정으로 말했다.
“영감도 참!

내가 안 허락했으면 어쩔뻔했소?”


“아니지요. 내가 우리 마누라를 왜 몰라요?
당신의 여린 마음을 우리 윤이가 꼭 빼다 닮았잖소..


그날 밤, 밝은 달빛도 이 두 부부의 마음을 아는 듯 안채 문지방 위를 환하게 비추었다. 연화의 혼인 소식에 윤은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밤새 글공부에만 몰두했다. 설희 또한 연화를 누구보다 좋아했기에 이제 자신에게도 ‘말벗’이 생긴다는 생각에 날마다 마당의 꽃을 정성스레 가꾸며 집 안 곳곳을 손님맞이하듯 꾸미고 있었다.


연화: 우물가에서 어머니에게

며칠 후, 연화는 조용히 우물가로 향했다.

“엄마, 나 왔어. 전에 말했지?
엄마, 나 윤이 오라버니랑 혼인해.”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어.”

연화의 목소리가 우물 속으로 스며들자 곧 설화의 다정한 목소리가 물결처럼 번졌다.


“아가.. 내 귀한 딸아. 아무 걱정 하지 말거라.”


“기쁜 날이 있으면 슬픈 날도 있는 법이다.

두려워하지 말거라..”



“낮에는 작은 새들이 네 귀가 되어 네 마음을 들어줄 것이고, 밤에는 들짐승들이 네 목소리가 되어 네 행복을 전할 것이다..


“그 인내와 고통을 이겨내다 보면 다시 꽃은 핀단다.”


“엄마 고마워.. 나 잘 살게.
우리 아버지 안 슬프게, 엄마 염려 안 시킬께..”


혼인 사흘 전: 돌섬에서 올린 비밀 혼례

며칠이 지나, 드디어 혼인 사흘 전.

윤이는 연화를 불러 함께 돌섬으로 향했다.

윤은 작은 꽃화관과 꽃반지, 얼마 전 장터에서 산 고운 노리개까지 준비해 두고 있었다. 돌섬 잔디밭 위에는 새들이 지저귀고, 사슴, 다람쥐, 토끼, 두더지까지 산짐승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두 사람의 앞날을 축복하듯 가만히 서 있었다.


연화는 놀라며 물었다.
“오라버니, 이걸 언제 다 준비했어?”


윤은 따뜻하게 웃었다.
“당연히 해야지. 너의 진정한 벗들에게도

우리 혼인을 축하받고 싶었어.”

그러고는 연화의 머리에 꽃화관을 올려주고,

꽃반지를 끼워주며 말했다.


“비록 가락지도 없고 볼품없는 혼인식이지만,
나는 너와 이렇게 먼저 약속하고 싶었어.”


“연화야, 나와 혼인해 줘서 고맙다.”


“이제 내가 동물친구들보다 먼저 네 편이 되어서
네 귀가 되고, 네 입이 되어 항상 너를 지켜줄게.”

윤의 진심에 연화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연화의 비밀을 아버지 말고도 유일하게 알았던 윤이오라버니. 윤이오라버니는 연화의 비밀을 몇 년간 꼭 지켜왔었다.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두 사람의 혼인을 축복하기라도 하듯 분홍빛 꽃잎이 바람을 타고 흩날렸고 이들을 축하하기 위해 새들도 풀벌레들도 축가처럼 지저귀기 시작했다.


양반집에서의 공식 혼례: 사흘 후 마을 전체의 축제 혼례

혼인은 양반집 어르신의 마당에서 치러졌다. 상민·양반 할 것 없이 대문이 활짝 열렸고 어르신은 인심 좋게 대문 밖 먼 길까지 잔치를 벌였다. 국수와 술상이 끝없이 차려지고 마당에는 들꽃과 향초 냄새가 은은히 퍼졌다. 바람 한 점 없는데도 우물에서는 잔잔한 물결이 일렁였고, 마을 모두가 저마다의 꿈을 품으며 두 부부의 새 혼인을 축복했다.

초야: 첫날밤

해가 지고 등잔불만 은은하게 흔들리는 방으로 들어온 연화는 떨리는 손을 모으고 있었다. 윤이 다가와 조용히 손을 감싸 쥐었다.


“연화야, 오늘 하루 정말 고생 많았어.”


“아니어요. 저는 너무 행복했어요.”

윤은 살며시 연화의 머리에 꽂힌 비녀를 풀어주었다.


“이제부터 너와 나는 같은 지붕아래
같은 숨을 쉬는 사람일 것이오.”

밤새 준비한 윤의 이 한마디에 떨리는 두 부부는 볼이 봉수아 꽃잎처럼 새 빨개졌다.


연화도 그에 답하듯 오래 준비해 두었던 말을 수줍게 꺼냈다.

“윤이오라버니, 아니.. 서방님..

저 잘 부탁드릴게요.”


그 순간 돌섬에는 따뜻한 꽃바람이 부드럽게 스쳐 지나갔다. 멀리 우물가에서는 설화의 목소리가 들릴 듯 말 듯 물결이 하늘하늘 찰랑거렸다. 마치 딸의 앞날을 축복해 주는 듯했다. 그 밤, 연화와 윤은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비로소 진짜 부부가 되었다.


지금도 우리네 세상에 신분 격차, 신부 집안·신랑 집안의 차이를 말하는 것처럼 조선에도 오래전부터 이어 내려온 관습과 벽은 결코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누군가의 용기 없이는 깰 수 없는 그 오랜 벽을 두 사람은 많은 지지자들 속에서 정면으로 돌파하며 사랑을 싹 틔웠다. 그래서 이들의 조선시대 로맨스는 더 빛났다.

허나, 글이 아름답다고 해서 그들의 삶까지 아름답기만 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들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흐를 것인가?

순탄하게 행복만 이어질까?

아니면 윤의 어머니가 걱정했던 그 말처럼 어려운 고비들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나의 상상은, 그리고 이들의 여정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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