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 새빨간 거짓말

제9화: 시아버지의 두 얼굴

by 최해주

연화는 평생 잊지 못할 그날 밤의 풍경을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달빛은 마치 비단처럼 부드럽게 마당을 덮고 있었고, 잔잔한 등잔불은 두 사람의 수줍은 미소를 따뜻하게 비추었다.


연화는 생각했다.

"이렇게 많은 축복 속에서 시작된 혼인이라면,
앞으로 어떤 날이 와도 함께 견딜 수 있겠지."


"이젠 정말 행복해지기만 하면 되는 거겠지.."

그 순간만큼은 믿었다.

세상 모든 불행이 끝났다고.


그러나 세상은 달콤한 순간들이 오래 머무는 법이 없다. 달빛이 사라지고 새벽바람이 차갑게 몰아치기 시작하자 연화의 온기를 감싸던 평안함도 서서히 사라졌다. 혼인 후 몇 달이 지나면서 연화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차가운 기운이 집 안을 감싸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처음 양반 어르신의 다정했던 미소는 서서히 무게를 가진 눈빛으로 변해갔고, 그 말투는 칼날처럼 차가워졌다.


시아버지의 두 얼굴

“며늘아가, 오늘 아버님이 다녀가셨느냐.”

아침이 채 밝지도 않았는데 양반 어르신의 목소리는 이미 날카로움이 담겨 있었다.


“아, 그렇지 않아도 오늘 새벽에 다녀가셨어요.
아가씨께 드리려고 귀한 약초와 버섯을 두고 가셨어요.”

연화가 조심스레 대답하자 양반 어르신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래? 어디 있느냐? 가서 보자!


“아니, 이 귀한 걸 왜 안부엌에 두었느냐?
아랫것들 손이라도 타면 어찌하려고!”

연화는 느꼈다.

양반어르신의 다정함은 이제 남아 있지 않는구나.라고.


“죄송합니다, 아버님..”


“잘 싸서 내 방으로 가지고 와라.”

짧고 무뚝뚝한 명령.

연화는 이제 이 집에서의 알수없는 서늘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양반 어르신은 겉으로는 점잖고 인자한 양반의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그 속은 오래전부터 다 썩어 있었다.


반쪽 양반. 미천한 첩의 자식’
그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양반이 아닌 상민 출신의 첩의 자식이라는 말을 들을때마다 그 모욕을 반드시 깨부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자신이 사또 자리만 오르면 모든 멸시를 끝낼 수 있을거라고 믿었다. 허나 관직은 빈손으로는 잡을 수 없는었던 자리인지라

현재 자신의 재산으로는 그 어떤 것도 쉽지 않을꺼라 생각했다.


소문을 기회로 잡은 시아버지

전직 벙어리였던 상민이 귀한 약초로 큰 부자가 되었다더라." 그 말 한 줄이 양반 어르신의 머릿속 욕망 불씨에 기름을 끼얹었다. 그 순간부터 그는 철저히 계산하며 달수네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좋은 듯 다가가고, 따뜻한 듯 돕고, 은혜를 입은 듯 고개를 숙이며 슬슬 본심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병풍달수: 물주를 찾아간 그날

“사돈! 사돈, 이리 나와 보게나!”

양반 어르신의 목소리에 달수는 놀라 급히 물 묻은 손을 헹구었다.


“아이고, 양반 어르신. 아니 사돈어르신.

이리 먼 걸음을 하셨습니까.”


“할 말이 있어 왔네. 이리로 앉게.”

달수도 모르게 가슴이 불편하게 쿵 내려앉았다.


“우리 설희가 지난번 보낸 삼을 먹고 기운을 차리더이다. 헌데 요샌 도통 구경을 못해서 말일세.”


“아이고.. 어르신.
그 삼은 돌섬 꼭대기에서만 나는 귀한 약재여서
정말 찾기가 어렵습니다요.”

달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다시 좀 찾아주게나.
딸아이 기침이 심해져서 내 마음이

편치가 않네.”

그 말에는 분명 “명령”이 깔려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달수는 마침내 결심한듯 고개를 숙였다.

“아이고, 어르신. 염려 마십시오.

며칠이 걸리더라도 제가 꼭 찾아 오겠습니다요.”


“이왕이면 많이. 시간이 걸려도 괜찮네.

우리 설희가 자네가 캐주는 산삼으로 꼭 기력을 회복하길 바라네.

양반 어르신의 눈빛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거짓 눈물을 보이고 있었지만, 그 속은 이미 잔혹한 승리감으로 번들거렸다.


달수의 목숨건 돌섬의 여정

달수는 양반 어르신이 가시고 난 후 말없이 자루를 펼쳐 챙기기 시작했다. 주먹밥 몇 알, 말린 감자, 갈아입을 옷 두어 벌, 밤에 추위를 막을 모포. 그 모든 소리를 문틈에서 듣고 있던 설화는 둥근 눈을 크게 뜬 채 달수를 두려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여보.. 가지 마요...)

설화의 마음의 소리가 눈빛을 타고 흘러갔다.


달수는 설화의 그런 마음도 모른 체 말없이 설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설화야 설희아씨가 요새 기침을 심하게 한다네 그려. 어르신께서 설희 아씨 때문에 걱정이 많은가벼. 내가 좀 다녀와야 할 것 가텨."


"달자랑 개똥이 있은 게, 걱정 말고 잘 있어.

금방은 못 오고 며칠은 걸릴것이여.."

달수의 얘기를 듣자 설화는 숨이 턱 막힌 듯 숨을 헐떡거리기 시작했고 눈가엔 이미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설화야 암 걱정허지 말어.

내가 누구여! 근게 걱허덜말고 밥 잘 먹고 있어야 혀!"

그렇게 채비를 준비하고 달수는 자리를 일어났다.

"달자야, 개똥아. 마님 잘 부탁한다.”

개똥이 달려 나왔다.


“어르신, 저도 같이 가요!
돌섬 꼭대기가 얼마나 위험한디요.
산짐승이라도 만나면 어쩌려고 혼자 가요!”


달수는 씁쓸하게 웃었다.

“개똥아, 여인들만 두고 우리가 다 떠나면 쓰겄냐. 집에 사내가 떡 하니 하나는 있어야지.”


“그래도 어르신 안 됩니다요.

산짐승들이 겨울준비 하려고 한창 배를 채우는 중이라고요!!”


“개똥아. 너가 나를 모르냐.

나 호랑이도 때려잡는 그 2척 장신

내가 그 돌섬 달수다!!"

달수의 그 말은 누가 봐도 슬픈 허세였다.


연화의 절망

그날 저녁이 다 되어서야 이 모든 상황을 달자에게 전해 듣자 연화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다음 날 새벽 아직 별빛이 사라지지 않은 시간, 연화는 우물로 달려갔다.

“엄마! 엄마, 들려?”


우물의 물이 급격하게 흔들렸다.

(연화야… 연화야…)


“엄마, 아버지가 돌섬 꼭대기로 갔대!
엄마, 이걸 어쩌면 좋아."


"추운 겨울 되기 전에 산짐승들이 먹이를 모으러 다니는 때인데, 아버지가 혼자 올라가면 정말 위험한데 어떡해 엄마"


(연화야…)


연화는 바닥에 주저앉아 슬피 흐느꼈다.

“엄마, 제발 말 좀 해봐! 왜 아무 말도 못 해?”


연화의 울부짖음에도 설화는 끝내 말을 하지 못했다. 그저 흔들리는 물결만 연화의 절규를 삼켰고, 한참을 오열하다 동이 틀기 직전 겨우 집으로 향했다.


양반집 안채: 시아버지의 시집살이


며늘아가! 어디 갔느냐!”


"새벽마다 어디를 그렇게 쏘다니느냐!
안여자가 밖에 남정네라도 숨겨 둔게냐?


연화는 긴장한채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숨을 삼켰다. 그러자 윤이 빠르게 들어섰다.


“아버님, 연화가 매일 새벽 나가는 것은

요 앞 우물 물을 떠다가 설희에게 끓여주려 나서는 겁니다."

양반 어르신의 얼굴에 잠시 의아함이 스쳤다.


“연화의 할머님께서 연화가 어릴적 첫물은 속을 편하게 하고 기운을 돋운다 했다 합니다.”


"그래서 연화가 설희에게 매일같이 주려

그 새벽에 잠도 안 자고 기다렸다가 우물길로 향한 것 입니다."


시어머니의 눈빛이 놀람과 감동으로 바뀌었다.

“그래, 그랬느냐 아가..

우린 그것도 모르고 오해했구나.

미안타 새아가.”


그러나 양반 어르신은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그렇게 귀한 물이면 왜 내 것부터 올리지 않았느냐. 찬물도 다 위아래가 있는 법이다!!


연화는 눈시울이 붉어지면서도 바닥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아버님.. 죄송합니다. 내일부터는 아버님과 어머님 것도 반드시 식전에 올리겠습니다.”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연화가 말했다


귀한약재는 돈의 수단일 뿐

달수가 보내온 얼굴만 한 양지버섯 뭉텅이를 들고 양반 어르신은 약방으로 향했다.


"어르신 오셨습니까?

오늘은 또 어떤 귀한 약재를 가져오셨습니까?"

양반어르신은 자리에 가져온 큰 양지버섯과 이름모를 약재들을 한 움큼 꺼내논다.


“어르신!! 이렇게 귀한걸..

이것들은 진품 중에 상진품입니다요.


"쌀 두 포대 아니 세 포대도 거뜬한 값이 겄어요"

그러자 양반 어르신의 눈이 탐욕으로 번쩍였다.


(이래서 달수 그 벙어리 였던 놈이 금세 부자가 되었구먼? 인자 고 녀석 때문에 나도 금세 부자가 되겄구먼. 허허허!!!)


그렇다 달수는 매일 돌섬에 올라 귀하고 상품이 좋은 약재들로만 양반어르신에게 재물을 바치듯 그렇게 매달 갔다 바쳤던 것이었다.

아씨의 병이 호전되기 위해.

자신의 딸 연화가 좀 더 사랑받기 위해.

비가 와 가파른 돌섬길도 매일 마다하지 않고 그렇게 달수는 연화가 없이도 돌섬에 오르곤 했다.


(연화 고것헌테 손주라도 생겨불면 허구헌날 달수 이것이 자기 딸 주려고 더 귀한것만 가져다 주겄지?)


(어쩌면 달수네 그 많은 재산들잘 허믄 내 차지가 되겠구먼. 이거 생각만 혀도 배가 금새 부르구먼!)


폭풍의 전조

연화는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루하루 가슴이 찢어질 듯 불안해하고 있었다. 밤이면 잠에서 수없이 깨고 문 틈 너머로 바람 소리만 스쳐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 시각 설화 역시 극심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연화는 매일 우물가로 달려가 엄마를 불렀다. 그러나 우물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깊게 잠겼다.


심판의 우물의 전설

그렇다 우물물은 착한 자에게는 영험한 복을,

악한 자에게는 반드시 재앙을 돌려준다는 전설이 있다. 돌섬도, 우물도, 하늘은 아마 이 사실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욕망으로 가득 찬 양반어르신이 달수의 선함을 이용하고 있다는 걸.


돌섬에 갇힌 달수

달수의 소식은 일 주째 깜깜무소식이었다.

그런 연화는 밤마다 안절부절 했다.

그때 마침 윤이네 감나무 위에서 까치가 연화를 불렀다.


"어? 까치 너 왔구나!

도통 요새 보이지도 않더니 대체 어딜 갔었니?

까치야, 혹시 우리 아빠 봤니?

우리 아빠가 일 주째 감감무소식이야.."


"까치야. 제발 말 좀 해줘..

내게 귀띔이라도 해주렴."


"우리 아버지 무사한 거지 그치?"

그러자 까치가 연화의 말에 대답하듯 지저귄다


(연화야 걱정 말아 아버지 곧 오실 거야.)


(돌섬 신들이 아버지를 지켜주고 있어.)


(그리고 돌섬 동물들이 아버지에게 길을 안내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어.

아버지가 잠시 길을 잃었었어..)


"그게 정말이니?

혹시 아버지가 다치시기라도 한 거니?

그래서 이렇게 늦으시는 거니?"

연화와 까치의 한참 대화에 양반어르신이 나타났다.


"며늘아가. 넌 대체 누구랑 대화를 하는 게냐?"


"설희도 없고 여기 아무도 없고만."


"아.. 아버님 아닙니다.."


이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어떤 행복과 어떤 재앙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렇다. 양반 어르신의 눈에는 처음부터 달수의 딸 연화 따위는 눈에 차지도 않았다. 오로지 상민 주제에 약초 하나로 갑부가 되었다는 소문, 그 탐스러운 약초 하나만이 그의 탐욕을 자극했을 뿐이었다. 첩의 자식이라는 꼬리표를 평생 떼지 못한 그는 상민 출신인 달수를 휘두르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 여겼다.

마침 윤이와 연화가 같은 또래였기에 혼인을 맺어 달수네의 재산을 모조리 자기 손안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달수와 연화의 착하고 순결한 마음을 이용해 자기 아들 윤이를 내세우고, 설희가 아프다는 핑계로 ‘병든 자식 앞에 무너지는 아비의 마음’을 교묘히 악용하여 달수에게 접근했던 것이었다.


시아버지의 시커먼 욕망

다음 사또 자리를 얻기 위해 나라에 바칠 뇌물과 인맥을 준비해야 했던 양반은, 자신의 재산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생각이 들자 사또 자리를 잠시 미룰까 고민했지만, 그때 마침! 갑부가 되어 양반의 신분보다 낫다는 상민 달수의 소문을 듣게 되었다. 그는 달수가 자신에게 부와 권력를 동시에 쥘 기회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그는 천천히, 아주 치밀하게 달수와 연화에게 아들 윤이를 이용해 접근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운명은?

어떤 행복과 어떤 재앙이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진실은 하나다. 탐욕으로 시작된 길의 끝은 결코 빛나는 곳이 아니다. 훗날 우물을 마시게 될 윤이네 가족에겐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그 끝에는 반드시 하늘의 심판이 기다린다.


세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부와 권력을 쥐기 위해 두 얼굴, 세 얼굴의 가면을 쓰고 약자들을 짓밟는 자들은 지금에도 존재한다.

나는 이 글을 작성하면서 참으로 씁쓸했다.

세상엔 인간보다 더 못되고 두려운 존재는 없는것 같다. 악한자들은 항상 교묘하게 법을 피해간다.

하지만 그들의 운들도 오래 가진 못 했던건,

아마 하늘에서 이들을 심판해 주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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