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간절한 기도가 우물속에 스며 들었다.
마을 위로 서늘하게 스치는 기운이 감도는 그때, 안개를 가르며 천천히 걸어오는 달수의 모습이 보였다. 거친 돌섬에서 얼마나 살아서 오려고 애썼는지 그의 몰골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두꺼운 도포들은 잔 가시나무들에 갈기갈기 찢겨 있고 얼굴, 손 어느 하나 상처투성이가 아닌 곳은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말한다. “달수가 돌아온 건 기적이라고.” 모든 사람들은 아마 달수가 죽은 줄만 알았었을 것이다.
“아이고 달수어르신, 왜 이제야 오십니까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러나 달수는 그 모든 소란 위로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개똥이 잘 있었느냐. 안방마님은?”
“마님이 어르신 걱정하시느라 밥도 못 드시고
매일 뜬눈으로 날을 샜사옵니다.”
개똥의 목소리는 울먹였다.
“긍게 제가 따라서 같이 간다 했잖아요.
어디 몸 좀 봐요. 진짜 괜찮아요?”
달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웃음을 지었다.
“아이고 이놈 개똥이 호들갑은!
내가 뭐렸어? 내가 그 돌섬 달수란게!”
그러나 웃음 뒤에는 죽음의 그림자를 견뎌낸 자의 떨림이 숨어 있었다.
“근디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요.
장장 열흘이나 깜깜무소식이었당께요.
참말로 호랑이라도 만나고 온 거여요?”
달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말하자면 길고 일단 나는 설화부터 봐야긋다.”
“마누라!! 설화야! 서방님이 왔소이다!!”
설화가 달수의 목소리를 듣고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린다. 그 눈빛 속에는 살아서 고맙다는 말보다 더 깊은 감정,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요한 떨림이 담겨 있었다. 설화는 이내 달수 가슴 폭에 안겨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고..내가 나쁜 놈이네,
우리 설화 눈에 눈물이나 쏙 빼놓고,
이제 앞으로 자네 걱정하게 할 일은 없을 것이여.
많이 걱정했지? 미안하네 그려..”
“그래도 이렇게 살아서 돌아오니
자네 예쁜 얼굴이 더욱 반갑구먼!”
평생 마음으로만 말하고 눈빛으로만 사랑을 전했던 그 벙어리 남자 달수가 이제는 오히려 목소리를 잃은 설화에게 더 많은 말을 들려주고 있었다.
이 소식을 꽃분이가 달려가 연화에게 알렸다.
“뭐? 진짜 꽃분아? 아버지가 돌아오셨어?
몸은 어떠셔? 괜찮으신거지?
어디 다치시진 않으셨지?”
“암요! 진짜로 우리 달수어르신이
소문대로 돌섬 지킴이가 맞는 것 가텨요!”
“산길이 험혀서 옷만 조금 찢어지고
상처만 조금 난 거 말고는 암시랑 안 탄케요??”
꽃분이의 말을 듣고 연화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신께 말했다.
“천지신명님, 정말 감사합니다요.
우리 아버지 살려주신 은혜,
제가 꼭 잊지 않겠습니다요.”
그 순간 멀리서 까치 한 마리가 울어대며 날아올랐다.
연화는 곧장 이 사실을 윤과 집안 어르신들에게 알렸다.
“서방님! 아버님이 돌아오셨대요!”
“정말 다행이다. 연화야.
장인어르신 몸은 괜찮으신거 맞지?
거봐!!내가 아무 걱정하지 말랬잖아.”
윤이가 한껏 웃으며 말했다.
“네. 서방님.
이번엔 서방님 말씀이 옳았어요..”
“아가, 아버님이 돌아오셨느냐?
거참 다행이구나. 정말 다행이구나.”
시어머님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하늘을 향해 절을 했다.
그때 양반어르신이 문을 열고 나왔다.
“진짜 달수가 돌아왔느냐?
아니 사돈이 왔느냐?”
“아 그래 꽃분이,
달수가 삼을 캐온 거 봤느냐?”
달수의 몸보다 삼을 캐왔는지를 먼저 묻는 양반어르신. 그 속내를 이제 모두가 알게 된 듯했다.
“아니 당신도 참.
지금 삼이 중요해요? 사람 목숨이 더 중요하지!”
“근데 당신이 왜 삼을 물어요?”
“아니.. 그게.. 그것이..”
“아니 설마 당신 사돈께 삼 부탁혀서
그래서 사돈이 돌섬에 가신 거여요?”
“아니지요? 당신이 그럴 리가 없지요?
말 좀 해봐요!”
“아니.. 고것이 아니라,
그 설희가 요새 기침을 많이 한다고 혔더니
사돈이 설희 주려고 돌섬에 갔나 보오.”
“아니 당신도 참 그런 소리를 뭣허러 해요?
그래서 사돈이 목숨 걸고 돌섬에 가신 거였어요?”
안주인의 가시 돋친 말에 양반 어르신은 민망한 듯 헛기침을 하며 방으로 쓸쓸히 들어갔다.
그리곤 안방마님이 연화와 윤이에게 말했다.
“윤아, 연화 데리고 장인어르신 괜찮은지
네가 가서 직접 보고 오너라.
그리고 잠깐만 기다리거라.”
그리곤 안채에 가서 금빛 보자기에 싸인 귀한 물건을 조심스레 내왔다.
“연화야, 이거 사돈어르신 꼭 가져다 드려라.
깨지지 않게 조심히 들고.”
“어머니, 이게 무엇입니까?”
“이거 선물 들어온 귀한 토종꿀인데,
내 아껴두었는데 아버님 뜨끈하게 차 끓여 드리고 오너라. 아버님 식사하시는 것도 꼭 보고.”
“아니 어머님.. 이 귀한 걸..”
“아무리 귀해도 어떤 사람이 먹느냐에 따라서
그 효능은 더 값진 거란다.
어서 더 늦기 전에 다녀오너라.”
말씀을 마친 안방마님의 손끝이 살며시 연화의 손등을 어루만졌다. 그 손길에는 인간의 따뜻함과 깊은 마음이 묻어 있었다.
“윤아, 혹 늦어지면 오늘은 처가에서 하룻밤 묵고 오너라.”
윤이 깜짝 놀라 어머니를 바라본다.
“아, 어머니..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래. 연화야, 여기 걱정은 하지 말고
잘 다녀오너라.”
“역시 우리 어머니 셔! 어머니 감사합니다.
제가 가서 장인어르신 잘 보살펴 드리고 오겠습니다.”
“어머님.. 어머님..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한 마음에 눈물을 훔치는 연화.
모든 채비를 마치고 윤과 연화는 달이 길게 드리운 밤길을 따라 걸어갔다.
“아버지!! 아버지, 연화 왔어요!!”
달수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이게 누구여? 우리 연화목소린디?
아이구 우리 연화가 왔구나!!”
연화는 아버지를 보자마자 두 손으로 입을 막고 울음을 삼켰다.
“아버님, 괜찮으시죠? 다치신 곳은 없으시죠?”
“아이고, 나 걱정돼서 이렇게 발걸음을 한 거여?
뭣하러 그렸어. 난 암시랑 안혀.”
달수의 목소리는 든든했지만, 그 어깨는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아버지, 진짜 괜찮은 거 맞지요?”
“그럼, 끄떡없당께.
나 호랑이도 때려잡는 그 돌섬 달수여!”
그는 웃었지만 손등이 미세하게 떨렸다.
“안채에 어머니 계신다. 퍼뜩 인사드리러 가자.
우리 설화가 참으로 좋아하겠구먼.”
“엄마.. 어머니!! 저희 왔어요!!”
연화와 윤이를 보고 설화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가족 모두가 모여 처음으로 다 함께 저녁을 먹는다.
설화는 속이 좋지 않은지 통 음식이 도무지 넘어가지 않았다.
“아이고, 그나저나 우리 연화가 얼굴이 반쪽이 되었네. 우리 연화가 아부지 걱정 많이 했구먼?
좋아하는 괴기도 통 못 먹고.”
“아녀, 아부지. 급하게 집에 오느라 기분이 너무 좋아서 아침에 먹은 게 잘 안 내려갔나 봐요.”
“우리 설화가 자다가도 돗고기라고 하면
번뜩 일어나는디, 이렇게 못 먹는 거 본 게
아비가 속상허구먼.”
“아이구, 장인어르신!
제가 연화 대신 다 먹겠습니다!”
“허허허, 그려. 자네가 우리 연화 대신 다 먹겠나.
누가 먹으면 어떡한가.”
그날 밤, 달이 유난히 길게 떠 있었다.
이른 아침이 되기 전에 연화는 우물로 향했다. 우물 위에는 얇은 안개가 둥글게 감싸고 있었다.
“할머니, 엄마,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아버지 무사히 돌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엄마 듣고 있지?
아버지가 무사히 와서 정말 다행이야.”
그때, 깊은 우물 속에서 물결이 찰랑 하고 흔들렸다. 바람도 없었는데 우물물만이 둥글게 빛을 내며 일렁였다.
(연화야.. 내 딸, 우리 연화..)
엄마의 목소리가 우물 속 물결에 실려 올라오는 듯했다. 그리고 우물 안 깊은 곳에서 은은한 꽃향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며칠 전 집안 감나무에서 만났던 까치 한 마리가 가지 끝에 내려앉아 있었다.
“어? 까치야! 너 그 까치 맞지?”
까치는 고개를 두 번 끄덕이는 듯 날개를 파닥이며 울었다.
“까치야, 너무 고마워! 정말 고마워!”
“그런데 어떻게 된 거니?
아부지가 왜 열흘 동안 못 오신 거였니?”
까치는 연화의 눈을 똑바로 보고 천천히 입을 열듯 울어댔다.
(연화야, 아부지가 돌섬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삼을 캐어다가 그만 발을 헛디디셔서
절벽으로 굴러 떨어지셨어.)
(그때 며칠을 정신을 잃었는데
돌섬 동물 친구들이 아버지 입에 물을 적셔 주고
나뭇잎으로 몸을 덮어 보호해 주었어.)
연화는 눈을 크게 떴다.
“아버지가 그럼 쓰러지셨다가
다시 깨어나신 거야?
그런데 아버지 집에서 보니까 멀쩡하시던데?”
까치는 부리를 정리하듯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동물 친구들이 돌아가며 아버지를 돌봐 드렸고
돌섬 신령님이 호랑이와 구렁이들이
아버지 곁에 못 오도록 보호막을 쳐 주셨어.)
(그리고 신령님께서 아버님이 깨어나기 전까지
계속 지켜주셨어.)
연화는 눈물이 핑 돌았다.
“아.. 그랬구나..
정말 고마워. 정말 고맙구나..
이 은혜를 내가 어떻게 갚지..”
그러자 까치가 날개를 가볍게 접으며 말했다.
(아니야 연화야. 네가 배고픈 우리에게 나누어 준 음식이 얼만데.)
(우리 돌섬 동물 친구들도 너에게 어떻게 은혜를 갚아야 할지 몰랐는데, 이렇게라도 도움이 돼서 너무 기뻐.)
(우린 둘도 없는 오랜 벗들이잖아)
까치는 돌섬 동물 친구들을 대신해 연화에게 말을 전달하였다. 인기척이 들리자 까치는 돌섬 쪽으로 날아가버렸다.
이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분명 존재한다고 믿는다. 선한 마음, 나누는 마음, 누군가를 위해 울어주는 마음. 그 모든 마음이 함께 섞이다 보면 기적은 반듯이 일어난다고 믿는다. 악을 품는 자는 언젠가 스스로 무너지고, 선한 마음을 가진 자는 끝내 길을 얻게 될 것이다 .
그게 삶의 진리이자 당연한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