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평범함이 주는 행복
돌섬은 어느새, 도망쳐 온 곳이 아니라 살아가는 곳이 되어 있었다. 동굴에서의 첫겨울은 길었다. 윤은 밤마다 입구 쪽에 자리를 잡았고, 연화는 아이들 곁에서 숨을 고르며 누워 있었다. 몸은 늙어 있었고, 통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더 이상 무너지지는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이곳은 견딜 만한 곳이었다.
“어머니.”
원이의 목소리는 언제나 먼저 깨어 있었다.
“그래 원아, 밤새 잘 잤느냐.”
연화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네. 어머니 몸은 어디 편찮으신데는 없으시죠?”
“그래. 아주 편안하고 좋구나.”
연화는 아이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이곳에 온 뒤로 원이의 눈빛은 한결 차분해져 있었다. 이미 돌섬 생활에 가족 모두가 함께 서서히 적응해 가고 있었다.
겨울이 지나자 바람의 결이 달라졌다. 동굴 안으로 햇빛이 조금 더 깊이 들어왔고,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바깥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윤은 아이들이 더는 동굴에서만 지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집을 지어야겠구나, 연화야.”
연화는 잠시 동굴 안을 둘러보았다. 몸을 숨기기엔 좋았지만, 삶을 꾸리기엔 부족한 자리였다.
“네. 저 역시 그리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동굴도 물론 불편하진 않지만, 아이들과 함께 지낼 작은 집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들은 며칠을 걸어 돌섬을 살폈다. 바위 뒤, 바람을 등진 자리. 비가 바로 들이치지 않는 곳. 윤은 돌을 굴려 보며 단단함을 살폈고, 연화는 땅에 손을 대고 오래 머물렀다.
“서방님, 여기가 좋을 것 같아요.”
그 말 하나로 자리가 정해졌다. 집은 크지 않았다. 네 사람이 몸을 눕히고 불을 피울 수 있을 만큼이면 충분했다. 윤은 산에서 굴러온 돌을 하나씩 옮겼고, 연화는 돌 사이를 흙과 마른풀로 메웠다. 아이들도 작은 돌을 나르며 거들었다.
“아버지, 이건 여기 두면 돼요?”
“그래, 거긴 바람 막는 데 쓰자.”
그렇게 며칠, 몇 달이 지나 집은 조금씩 모양을 갖췄다. 비가 오는 날에는 손을 멈췄고, 바람이 거센 날에는 동굴로 돌아갔다. 완성되기 전까지는 여전히 동굴에서 잠을 잤다. 그러다 어느 날, 윤은 불을 새 집 안에서 피웠다. 그날 밤, 아이들과 연화는 오랜만에 집이라는 곳에서 따뜻하게 잠들 수 있었다.
집 아래쪽에는 작은 샘이 있었고, 그 안에는 각종 물고기들이 살고 있었다. 물은 맑았고, 이들에게 일용한 식량과 음식을 보관하기에도 딱 좋았다.
“아버지, 저거 잡아도 돼?”
수아가 물었다.
“그래, 조금만. 우리 가족 먹을 만큼만 잡자.”
“세 마리면 충분할 것이니라.”
숲에서는 때마다 열리는 산열매와 나물들은 이들의 입을 즐겁게 해 주었다. 계절마다 맛이 다 달랐고, 해마다 익는 자리도 조금씩 달라졌다. 연화는 수아와 함께 열매를 따며 돌섬에서의 생활을 항상 감사히 여겼다.
“서방님 여기 풀들은 건드리면 안 될것 같아요.”
“왜그러시오?”
“새끼들 먹을것을 좀 남겨둬야 할것 같아요.”
윤은 그 말을 듣고 말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대신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숲은 늘 필요한 만큼만 내주었다. 농사는 동물들이 알려준 곳에서 시작했고 짐승들이 자주 오가며 머물던 자리는 네 식구가 농사를 지어 먹기에도 충분하였다.
“서방님, 여기가 좋을 것 같아요.”
씨앗을 심자 싹은 빠르게 올라왔다. 욕심을 부리지 않았는데도 잘 자랐다.
“아픈 아이가 왔어요.”
원이도 동시에 말했다.
“서방님 저기여요 저기!”
윤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연화는 손을 얹고 가만히 숨을 맞췄다.
“조금만 쉬었다 가렴.”
짐승은 도망치지 않았다. 숨이 가라앉자 제 발로 숲으로 돌아갔다. 그 뒤로 짐승들은 저마다 새끼들과 함께 내려와 이 집에 머물다 떠나기를 반복했다.
“어머니, 닭이 알을 낳고 갔어요!”
수아가 소리쳤다.
연화는 웃으며 알을 들어 올렸다.
“오늘은 국이 있겠구나.”
돌섬에서의 생활에 이들은 모두가 만족하고 있었다. 돌섬은 이들 외 다른 사람들에게는 험하기로 소문이 나 발길이 끊긴 지 오래였고, 아주 가끔 심마니들이 오르려다 이내 중턱도 넘지 못하고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예전에 연화의 아버지 달수가 삼을 캐던 기억도 이제는 흐릿해졌다. 세월이 흐르며 사람이 다니던 길도 사라졌고, 사람들은 돌섬을 옛이야기로만 기억했다. 그 덕분인지, 이들은 서서히 잊혀 갔다. 그러나 잊힌다는 것은 사라진다는 뜻은 아니었다.
나는 속세 없이 오래 살고 싶다.
눈에 보이는 화려함이나 권력이 아니라, 매일 같은 아침을 가족과 함께 맞이하며 하루를 차분히 이어 가는 삶을 바란다.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곁에서 오래 지켜보고, 함께 밥을 먹고, 별일 없는 날을 무사히 보내는 것.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날들이 오래 이어진다면, 나는 그것을 행복이라고 부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