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유인 Feb 08. 2024

첫 번째 : 나를 담는 노트 한 권

하루를 살면서도 우리는 너무나 많은 생각을 하며 살아갑니다. 어렸을 때는 어른이 되면 만능이 되어 모든 것이 가능해질 줄 알았습니다. 숱하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어른이 되면~'이라고 유보하며 지내왔던 것 같기도 하네요. 그리고 20대가 되어서는 지금의 나처럼 40대가 되면 이런저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살아지는 안정기를 걷게 될 줄 알았습니다. 그 시절은 또 나중에 갖게 된 안정을 위해 한동안은 참으로 치열하게 살아냈던 것 같습니다.


막상 40대 중반에 들어섰습니다. 이미 어른이 된 지 오래지만 가능한 것보다 불가능한 것이 더 많은 세상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안정감? 그런 것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내가 가진 안정감에서 탈피하기 위한 시도들에 곁눈질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해보지 않았던, 그러나 해보고 싶은 마음 가는 일들에 에너지를 써보는 것에 재미를 느끼게 되더군요. 브런치 작가로 글을 쓰는 것도 제게는 그런 류의 재미있는 일탈입니다. 주로 학술적인 글을 읽고 연구논문을 쓰는 일을 할 때는 지력을 총동원하여 글을 쓰다가, 내 직업적, 사회적 삶의 동력을 모두 꺼버리고 새로운 동력을 활용해 보는 도전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일상의 작은 감흥들에서 인생살이의 체취를 느끼면 그것을 기억하려 애쓰며 에세이를 쓰고, 가슴에 새벽이슬이 한방울 톡하고 떨어져서 청초한 파장이 일면 그 파장은 곧장 시가 되기도 했습니다. 돌아보니 어른이 되기를 선망하던 어린 시절이 좋았고, 40대의 안정감을 탐했던 20대가 더 활력있었음을 깨닫기도 합니다. 그 깨달음의 결론은 역시나 나의 오늘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 오늘이 가장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고 꿈과 야망을 품기에 가장 좋은 때라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아직도 마음에 품은 꿈이 있나요?


저는 그것이 무엇인지 답하기 어렵더군요. 그럼에도 내 삶이 의미있으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내 인생그릇을 나는 어떻게 빚어가야 할까? 뭐, 여러 숱한 생각들이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러자 '하루', '단 하루'라는 단어가 제 가슴을 압도해 왔습니다. 여지껏 지나치게 앞만 보고 두려운 미래를 바라보며 고군분투하며 살았던 탓일가요? '하루'라는 단어는 조용히 멈춘 시간, 정막하지만 내가 건사할 수 있는 딱 그만큼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오직 하루에만 집중하며 하루라는 그릇에 담겨지는 나를 담아보기로 했습니다. 기록이 가장 좋은 방법이더군요. 막상 하루를 담으려니 그 방법도 무척이나 다양했습니다. 취침 전, 빈 여백에 일기를 써볼 수도 있구요. 다이어리에 시간대별로 행했던 일들을 중심으로 기록을 남기는 것도 고려했던 방법이었습니다. 막상 일기를 쓰려니 어린 시절 날짜와 날씨부터 쓰던 기억이 떠올라 썩 내키지 않았구요. 시간대별로 기록하는 것은 상황과 사실만 남고 그 속에서 살아낸 나의 이야기는 부족해 보이더군요. 시판되고 있는 다이어리들도 물론 성에 차지 않았지요.


결국은 기록을 남기는 양식을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매일 몸을 위한 양식을 입을 통해 공급하는 일보다 먼저 글을 읽으며 삶의 에너지를 충전합니다. 오늘 하루의 요긴한 에너지 자원을 찾을 때까지 읽습니다. 그리고 나를 담는 기록장에 그 내용을 출처를 달아서 씁니다. 그리고 왜 쓰는지, 나의 무엇을 자극하는지, 새로운 감흥은 무엇인지,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무엇인지 등 어떤 것이든 읽은 글에 대한 나의 생각과 감흥을 댓글 달듯 써봅니다. 그리고 하룻동안 기억하기 위해 다시금 되새깁니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면 내 마음은 무엇인가로 가득해져감을 느낍니다. 나를 담는 기록장에는 감사와 기도, 새로운 꿈과 반성들이 가득합니다. 이런 기록을 시작한 지 이제 열 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12월에는 365일을 기록하는 노트를 하나 주문제작했습니다. 그 노트에 담겨지는 나는 매일 다른 나에 대한 이야기들이고 그 이야기들이 풍성해질수록 나의 그릇은 확장되지 않을까 기대해 보게 됩니다.


때로는 잊고 있던 기억들이 몰려와 몸서리칠 때도 있지만 결국 기록은 '용납됨'의 도장을 콱 찍고 오늘이라는 하루에 그럴 듯하게 담겨집니다. 이런 과정은 내 기억 속에 있는 여러 인생들에 대한 연민을 쌓는 일이기도 합니다. 연민이라는 단어가 저는 좀 애잔하게 다가오는데요. 사랑할 수 없는 것들을 용납할 때 연민이라는 단어가 참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때로는 용서조차 낯설고 어려울 때 연민의 정은 내가 타인에게 보낼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내 삶에 예기치 않게 찾아왔던 결정적 사건들과 빗나간 기회들에 대한 아쉬움과 실수들이 기록되기도 하더군요. 아찔한 시절에 대한 기억과 '지금의 나'를 직선으로 확 이어보니 나를 지나간 불행과 아픔도 신의 선의로 바뀌어져 있더라구요. 그런 깨달음이 찾아올 때면 저는 가장 기쁩니다. 삶의 연금술사가 된 마냥, 돌도 금으로 만든 마법사가 된 마냥 신비한 능력을 가진 듯하여 뛸 듯이 기쁘답니다. 사실은 이해되지 않던 것이 이해되었을 때의 기쁨인 것 같아요.


이렇게 기록되는 내가 축적될수록 '나라는 인간의 그릇'은 더욱 확장되고, 쓸모 많은 그릇으로 거듭나는 것 같아요. 태초부터 미숙했으나 다 이해할 수도, 다 설명할 수도 없는 신비 가운데 비로소 오늘 하루의 '나'로 살아가는 것이 놀라운 일임을 쓸수록 절감하게 됩니다.


그래서 올 해의 나의 기록장의 이름은 '2024 Amazing Grace'입니다. 내 인생의 궤적을 위해 오늘도 나는 성실하게 단 한 점을 찍어내기 위해 하루를 살아냅니다. 특별하지 않은 하루는 평온함에 감사하고, 북새통 같았던 하루를 돌아보며 더 큰 불운이 오지 않았음에 감사합니다. 그런 시선으로 하루를 바라보면 나의 매일은 뜻밖의 행운으로 가득한 듯 합니다.


오늘도 모두에게 특별한 행운이 넘치시기를 기도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