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의미는 참 다양합니다. 어떨 때 기억은 누군가에게 선물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친구의 생일을 기억하고 안부를 묻는 것, 스승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것, 연애시절 남편과의 소소한 추억을 기억해 주는 것, 첫사랑을 떠올리며 잠시 미소를 띠는 것. 뭐 이런 것들이 누군가의 무엇에 대한 작은 기억들이고 닿든, 닿지 않든 선물이 되겠다 싶네요.
또, 어떨 때는요. 기억은 쓰레기통을 뒤집어쓰는 듯한 비참함을 주기도 합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어느 때든 실수할 수 있지 않나요? 무너져 내린 적이 어찌 없겠습니까? 나도 무수히 많은 실수와 시련들을 경험했고 인생살이를 하는 우리 모두는 그런 마음속 누더기를 어쩌면 고이, 너무도 고이 간직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왜 버리지 못할까? 왜 잊지 못할까? 쉬운 답은, 기억하기 때문이겠죠. 나에게 각인되어 있어서 그 흔적을 지우면 내가 없어지는 일이므로 결국은 내가 존재하는 한 그 기억도 내게 머무는 것이겠지요.
삼색 펜과 형광펜은 제가 기억하기 위해, 마음에 새기기 위해, 혹은 음미하기 위해 주로 사용하는 도구들입니다. 특히, 글을 읽을 때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글을 읽는 일과 삶을 살아내는 일은 어떤 부분에서 조금 닮아있기도 하네요. 중요한 부분에 줄을 그으며 글을 읽듯, 삶도 무수히 펼쳐지는 듯하나 결국 의미있는 기억들에 마치 줄을 긋듯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네요.
저는 대학시절까지 PPT를 띄우는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대학교 1학년때부터 전공과목에서 영어원서로 된 개론 책을 봤고, 한글로 된 교재에도 한글반 한자반인 책을 보며 국어사전, 한문사전, 영어사전을 쌓아놓고 공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읽을거리가 많아지면 중요한 내용을 정확하게 찾고,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중요했지요. 그래야 나를 압도하는 그 많은 자료들의 부담에서 조금은 자유할 수 있었으니까요.
공부도 결국은 기억하는 것에서 시작하지요. 그러나 어느 정도 기억의 내용이 축적되면 그때부터 공부에서 연구로, 주어진 내용을 습득하는 것에서 새롭게 발견해 나가는 과정으로 발전하게 되더군요. 여기에는 언제나 '나'라는 존재가 무엇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기억하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가가 중요한 것 같아요. 물론 이 과정에도 삼색 펜과 형광펜은 매우 중요한 기능이 있었습니다.
삼색펜을 쓸 때도 나름의 기호가 있답니다. 검정, 파랑(또는 초록), 빨강 정도의 색을 주로 사용합니다. 잘 기억하기 위해서는 중요성의 우선순위를 가려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책에서 줄을 칠 때도 많은 검정 활자 중에 상대적으로 중요한 것에 줄을 긋는 선택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지요. 선택은 그래서 쉽지 않은 일이에요. 한 권의 책도 활자의 연합상태에 불과한데, 그것을 '의식하는 나'가 작동하여 필자의 의도를 유추하며 나와의 연결성을 면밀히 따지며 결국 어느 곳엔가 줄을 그으며 책에 응답하는 일이니까요. 대단히 복잡한 일입니다.
또, 여러 색들보다는 세 가지 정도의 색이 저는 딱 좋은 것 같아요. 복잡한 세상을 단순화시켜서 이해하기 쉽도록 만들기 위해 펜을 들었는데, 너무 많은 색깔들로 정리의 과정이 화려해지면 원래의 목적이 그 의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삶을 대할 때도 저는 이랬으면 좋겠어요. 상황이나 사건, 내가 살아가는 생활 세계를 단순하게 만들고 그 속에서 충분히 만끽하고 싶답니다. 옷을 입을 때도, 화장을 할 때도, 집을 장식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삶 자체가 복잡다단해서 저는 나의 감각들을 활용해야 하는 모든 분야를 가급적 단순하게 설정하는 것 같아요. 편안하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삼색펜이 갖는 의미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한 줄 속에 생각해야 할 거리들이 두세 개쯤 발견된다면 그때는 유색펜을 활용해서 다시 줄을 긋거나 동그라미도 치고, 형광펜을 빼들고는 의미 있는 곳들을 반복 표시해 보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이 많은 중요한 내용들이 벅차기도 하지만 내 앞에 놓인 이상, 나는 결국 그것들을 어떤 식으로든 소화해야 한다는 결기를 다지기도 합니다.
인생의 하이라이트 같은 순간. 잊지 못한 감정에 대한 기억, 다시없을 단 한 번의 최대 성취의 경험, 절망과 좌절, 실패의 기억조차도 때로는 밑줄 쫙 긋고 형광펜으로 화려하게 표시해 두어야 어떤 것들이겠지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절망도 고통도 우리에게 약이 된다는 말에 동의할 수 있나요?
약은 몸에 좋을수록 쓰다는 말은요? 쉽게 용인할 수 있으신가요?
질근질근 씹어서 제 맛을 느끼며 사는 것이 인생이다.
인생은 달기도 하고 쓰기도 하지, 어찌 단 것만 먹겠냐?
써도 괜찮다. 배움도 컸잖아.
다음을 위한 좋은 교훈의 시간이다.
이런 말들을 속으로 삼키고 인내하며, 형광펜으로 하이라이트 쫙쫙 긋듯 살고 있는 듯해요.
며칠 전, 엄마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며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4절까지 하고 무한반복으로 또 하고 싶어지는 내 마음을 보았어요. 잔소리를 무한반복하는 이유가 아이들이 실패나 고통의 길을 가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때 깨달아지더라고요. '참 싫었구나! 나도 내게 지나간 절망의 시간들이 정말 싫었구나! 싫지만 너무 쉽게 괜찮다며 툴툴 털었구나! 내가 그렇게 살아왔구나.' 싶더라고요.
순간의 이 깨달음이 저는 참 좋았습니다. 인생의 고통과 번민을 모두 피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있다면 그 사람 역시 정상은 아닐 겁니다. 그저 내가 정말 싫었던 내 마음을 알아주자 가슴 깊이 똬리를 틀고 있던 단단한 찌꺼기들이 쓸려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정말 눈에 쏙 들어오는 형광펜을 들어야 할 순간은 바로 이런 순간 같아요. 그래서 책을 읽을 때도 형광펜은 지극히 절제될 수밖에 없어요. 아주 중요하고, 아주 드문 그때를 위한 것이니까요.
책을 읽다가 이런 경우 있지 않나요? 중요한 것 같은데 이해되지 않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나요? 줄을 치시나요? 아니면 그냥 지나치시나요? '그래, 아직은 때가 아니라 치자!'며 가벼이 넘깁니다. 매우 빈번하죠. 그래서 줄이 적은 책일수록 어렵게 읽은 책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입니다. 가벼이 넘기는 바로 이 순간! 저는 채워져서 느끼는 만족보다 더 큰 해방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획득하기 위해, 알기 위해, 깨닫기 위해, 새로워지기 위해... 참 많은 이유 때문에 기억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런데, 다음을 기약하며 오늘을 사뿐히 지나갈 때 제 속에서는 더 많은 풍요가 발동하는 것 같습니다. 이해하지 못함, 실패한 듯한 기분에 젖어들지 않고 그저 가볍게 지나가 보는 거죠.
책을 반복하며 읽을 때면 이전에 읽었을 때의 순간의 기억들이 따라 읽힐 때가 있지요. 어떤 때는 과거에 출 친 부분을 보며 여전히 변하지 않은 그 감흥이 그대로 기억되어 전해 올 때도 있고요. 또 어떤 때는 그렇게 애쓰지 않았지만 지금은 굳이 줄 칠 필요가 없이 중요성이 퇴색되기도 하더군요. 같은 감흥을 느낄 때면 나의 일관성에 짐짓 놀라고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느껴질 때면, 그동안의 시간이 '나'라는 사람의 여백을 어떻게든 채워주었다는 생각에 감사의 마음이 잔잔하게 일렁이곤 합니다.
참 오랫동안 풍요를 쟁취하기 위해 전사처럼 싸우며 지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모두에게 필요한 시간들이죠. 그 시간들 속에서 삼색펜과 형광펜과 같은 도구들을 요긴하게 사용하며 살아온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은 좀 여유를 부려보고 싶습니다. 기억하기 위해 바등거리며 나의 도구들을 사용하지 않고 싶습니다. 시간을 애써 쟁취하려고 했던 전쟁 같은 시간 대신, 좀 힘을 풀고 자연스레 채워질 시간의 섭리를 기대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큽니다. 나에게 지금껏 유용했던 삼색 펜과 형광펜을 놔두고 새로운 길을 떠날 자신은 없습니다. 여전히 함께 길을 떠나지만, 이제부터는 그저 오늘에 대한 흔적을 남기는 정도의 기능만 했으면 합니다.
애써 구겨 넣었던 수많은 기억들이 섣부른 이해가 되지 않기 위해
내 삶의 여정이 자연스럽게 순항하기 위해
나보다 한 걸음 먼저 발길을 옮기는 신의 가호에 완전히 순복하기 위해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