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위해 세끼를 챙겨 먹는 건 잘 못한다.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의 가치를 갖는 아이들을 챙기느라, 적어도 저녁 한 끼는 아이들과 거하게 차려서 먹다 보니 아무리 못 먹어도 그래도 두 끼는 먹으며 사는 것 같다. 나만을 위해 밥을 짓고, 식사를 챙기는 일을 해야 한다면 아마도 식빵 한 조각에 치즈 두 장을 올려서 먹으면 아침 겸 점심이 되고, 저녁엔 손쉬운 떡국이나 라면을 끓여 먹으며 건강보다는 허기를 달래는 식생활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사랑하는 타인의 끼니를 챙기는 것은 비단 그들만을 위한 일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을 챙기느라 자연스레 나를 챙기게 되어, 어쩌면 내 삶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이 더 큰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좋아하는 음식 종류가 뭐냐고 묻는다면 버섯이 들어간 음식은 다 좋아한다고 답하며 20년 이상을 살아온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들을 모두 등교시키고, 집안 청소를 하고, 40분 간의 홈트를 하고, 성경을 읽고 묵상도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글도 한두 시간 써보고, 업무도 조금 하고 나니 배가 출출해졌다. 그 시각이 벌써 정오를 지나고 있었다. 그때까지 아침에 일어나 유산균 한 알을 먹으며 마신 물, 홈트 하며 갈증이 나서 몇 모금 물을 마신 것이 고작이었다.
그날은 별안간 김밥을 만들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웬일인가? 나는 나를 위해서는 떡국 이상의 음식을 해 먹지 않는 사람이다. 김밥은 아이들이 현장체험학습 가는 날에나 겨우 만들었던 복잡한 음식이다. 그것도 김밥재료 패키지를 사다가 재료들을 늘어놓고 밥만 고슬고슬하게 해서 양념을 하고, 계란만 잘 구워서 만들면 그만인 아주 손쉬운 방법으로만 김밥을 만들었다. 그것조차도 내게는 이상하게 성가신 일이었다. 10장이 들어있는 김밥용 김을 사면 나는 꼭 10줄을 만들었다. 김밥 개수만큼 오늘 다 만들어야 재료를 버리지 않으니까. 나의 속내에는 김밥처럼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집에서 만들어 먹을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물 두 잔을 마시며 오전을 다 보낸 내가, 김밥은 복잡한 요리라고 생각했던 내가, 사 먹는 김밥이 최고라고 주장하던 내가 나만을 위한 김밥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참 별스런 생각인데 그날은 그조차 귀찮지도 않았다. 대신, 재료는 간단히 하기로 했다. 식은 밥은 전자레인지에 따뜻하게 데워서 식초, 참기름, 소금으로 양념을 했다. 그리고 계란을 두 개 정도 굽고, 남은 불에 맛살도 두 개 꺼내 구웠다. 몸에 좋다는 당근을 하나 채 썰어서 볶았다. 막내가 좋아해서 마침 어제 만들어 놓았던 시금치 무침도 꺼내놓고, 냉장고에 있던 어묵을 채 썰어서 간장양념에 볶았다. 김밥에 단무지가 없으면 맛이 없을 것 같긴 했지만, 나를 위한 한 끼를 만들며 슈퍼마켓까지 가서 단무지를 사 올 생각은 단 1도 없었다. 없으면 없는 대로 그냥 먹으면 된다. 어차피 나만 먹는 한끼니까. 대충 하자 싶었다.
김밥용 김을 새로 뜯으며 두 장만 꺼내 놓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날은 이상하게 앞으로 김밥을 자주 만들어 먹게 될 것 같다는 예감 같은 것도 들었다. 준비된 재료들로 대충 김밥을 말았다. 오늘의 이 김밥은 부담 없는 김밥이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웠다. 아이들 체험학습을 보내느라 도시락을 쌀 때면 늘 알 수 없는 열등감 같은 것이 있었다. 손재주 좋고 부지런한 엄마들의 화려한 작품 같은 도시락 이야기는 체험학습을 다녀온 아이들의 입에서 늘 빠지지 않고 나왔기 때문이다. 김밥이 어떻게 캐릭터 모양이 되며, 과일은 왜 꽃이 되었냐 말이다.
양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김에 밥도 대충, 준비된 재료들도 하나씩 쓱쓱 올려놓고는 쨍쨍하게 감싸주며 한 줄, 또 한 줄 총 두 줄을 말았다. 아무래도 하루의 첫끼이니 한 줄로는 아쉬울 것 같아서 두줄을 준비하기로 한 것이다. 모자라는 것보다 남는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두 줄을 도마에 놓고 썰어서 접시에 올려놓았다. 하나를 집어 먹어보니 단무지가 빠졌어도 아쉬움 없는 조화로운 김밥맛이 났다. 성공이다. 그리고 이건 내가 나만을 위해 처음 만들어 본 김밥이 아닌가! 접시에 올려놓고 보니 감격이 있었다.
특별한 날에만 만들었던 김밥을 나의 한 끼를 위해 만들어본 경험은 소중하다. 그날 이후로 아이들 없이 집에서 홀로 준비하는 한 끼의 식사를 위해 여러 번 김밥을 만들었다. 5분 만에 라면을 끓여서 훌훌 먹는 것보다 김밥 두 줄을 만들어 먹는 것은 시간이 더 들었고 손도 더 갔지만 마음만은 행복해진다. 아이들을 돌보며 저절로 나를 돌보게 되는 주변인이 아니라, 온전히 나를 과몰입해서 챙겨보는 경험을 김밥을 만들면서 하게 된 까닭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새롭게 알게 됐다. 김밥을 만드는 일이 그리 복잡하지 않다는 것을. 여러 재료들을 프라이팬에 간단하게 굽고 볶으면 되는 일을 나는 왜 그리도 복잡하다고 생각했었나 모르겠다.
나의 김밥은 진화하고 있다. 어떤 날에는 파프리카도 넣어보고, 볶음멸치도 넣어보고, 묵은지를 씻어서 넣어보기도 했다. 얼마 전 구정을 지나면서 선물로 들어온 참치세트 덕분에 참치 한 캔을 뜯어서 마요네즈와 고추냉이를 살짝 넣어서 김밥에 넣어보기도 했다. 모두 내 입맛에는 딱이었다. 최근에 미국에서 냉동김밥이 열풍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도 얼마나 반갑고 공감이 되던지, 김밥은 한국 사람이면 누구든 어떤 재료를 넣어서 만들어도 웬만하면 실패하지 않는 음식이라는 생각에 김밥 하나로 한국인인 것이 어찌나 자랑스럽던지. 내 마음결에 들어온 행복감은 나라사랑으로 번지는 지경까지 됐다.
김밥은 대충 한 끼를 먹던 나에게, 즐거운 한 끼를 나를 위해 준비할 수 있는 새로운 풍요를 선사한 고마운 음식이다. 김밥을 향해 있었던 내 마음의 장벽은 깨어졌고 나는 어느새 김밥 정도는 척척 만들어내는 사람으로 김밥과 함께 발전했다. 사람은 언제든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다. 김밥 재료를 준비하고, 김밥을 말며, 김밥을 썰며, 나도 변화하고 성장하고 있었다. 맛난 김밥 한 알을 입에 가득하도록 넣어 씹고 있으면 오늘의 일용한 양식에 절로 감사의 기도가 나온다. 그러니 김밥은 내 삶을 풍요하게 하는 귀한 아이템이 맞다.
오늘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묻는다면? 오랫동안 애정핬던 버섯들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요즘은 김밥!"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싶다. 맛도 맛이지만, 나에게서 김밥의 의미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왜 좋아하게 되었는지 그 이야기를 들려주며 나는 그 질문을 건넨 사람에게 수다 한판을 벌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의미가 실리면 귀한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