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내 몫으로 받아들이는 훈련 용품
저는 여전히 젊고, 청춘이라 생각합니다. 40대를 몇 년 보내다, 50대, 60대가 되어도 청춘이고 싶습니다.
세상살이 뭐 재밌는 일이 없을까?
흥미진진하고 신나는 일이 없을까?
못 이뤄 본 꿈은 뭘까?
청춘이 별 건가 싶어요. 여전히 꿈꾸고 있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청춘이라 생각해요.
물론 그런 생각이 가끔 꺾여 두려움이 엄습할 때도 있습니다. 사는 것이 부대낄 때, 예전에는 괜찮았던 일이 힘들어질 때, 아주 작지만 사소한 일들에서 나의 청춘의지를 내려놓아야 하나 짐짓 불안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살아온 날만큼 살아야겠기에 이왕이면 지겹지 않게 잘 살아내야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그런 두려움, 불안을 몰라내려 애쓴답니다.
비현실적인 질문 하나가 떠오르네요.
내가 몸 혹은 마음 둘 중 어느 하나로만 존재할 수 있다면 과연 나는 무엇을 선택할까?
저는 마음이요!
제게는 몸은 한계와 제한성을 의미하는 것 같아요. 몸으로 사는 나는 두려움과 염려에 묶이는 것 같아요. 그에 비해 마음은 훨씬 자유롭습니다. 나이가 더 들어 호호할머니가 되어도 청춘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도 마음으로 사는 나이기에 가능하겠지요.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그 자유가 저는 좋습니다. 오죽하면 제 필명을 자유인으로 했을까요.
그런 한계 없는 존재로 자유롭게 살고 싶지만 어쨌든 몸의 한계 속에서 살아가는 몸과 함께하는 나로 돌아보면 몸을 살피는 일이 중요해집니다. 내 몸의 퇴화를 느끼는 건 세 아이를 출산하고 회복하면서도 이미 조금씩 느꼈지만 그래도 한 두 해 전까지만 해도 거침없는 하이킥을 외치며 가열하게 살아온 것 같아요. 마음의 방향에 집중하며 몸의 경고를 듣지 못한 건지 갑자기 돌발성 난청, 이명, 이석증 등 욕심내서 일을 하고 스트레스가 과해지면 고질적인 증상들이 생기기도 하더군요.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제 삶의 속도를 조절하기 시작한 시점이. 일의 가짓수를 정리하고 시간을 넉넉히 할당하며 작은 일에도 의미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주변 사람에서 "살살해라, 몸 생각하며 살아라." 조언하곤 했었는데, 삶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내 몸을 생각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실천해 보았습니다. 일을 좀 많이 하면 등이 뻐근하고 어깨가 뻣뻣해지는 증상이 있다는 것도 여유를 가지고서야 알게 되었어요. 마침 다이소에 갔는데 돌기 폼룰러가 있길래 하나 사봤습니다. 처음에는 유명 운동 유투버의 안내에 따라 폼룰러 마사지를 해봤습니다. 우와~ 정말 신세계! 단 몇 분만에 몸이 개운해지더군요.
요즘도 아침저녁 시간 날 때마다 폼룰러를 가져다 등, 허벅지, 종아리, 팔, 옆구리, 복부, 머리까지 몸 구석구석을 문지르곤 합니다. 해보신 분은 아실 거예요. 시원한 느낌을 가질 때까지 비명의 함성이 나오기도 한다는 걸요. 몸이 뭉쳐 있는 곳을 압박할 때는 정말 짜증 나는 고통이 따라오더군요. 그럴 때면 요령 피우고 싶을 때는 통증을 슬쩍 피해 만만한 부위만 건드리며 지나가기도 하지요. 하지만 어떤 날은 돌기 폼룰러를 향한 제 마음의 맷집이 느껴지는 날이 있어요. 그런 날에는 매우 정직하게, 정석대로 아픔을 참아가며 신나게 제 몸을 마사지해줍니다. 폼룰러 마사지를 하며 요령 피운 날과 정직하게 임한 날 중 언제나 더 개운하고 기분을 좋게 만드는 건 정직하게 임했을 때이더라고요. 기껏해야 10분 안 되는 시간이지만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였고, 내 몸이 또 어떻게 반응했는지 나는 너무 잘 알죠. 돌기 폼룰러로 매우 정직하게 마사지를 해보시면 정직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나의 정직이 타인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충분히 상상하고 느낄 수 있답니다.
사는 게 힘든 이유의 대부분은 스스로 자초한 일들인 것 같아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말이죠. 폼룰러로 아픈 곳을 누를 때마다 거친 호흡에, 으악 소리를 낼 때도 있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정직하게 잘했다며 나를 응원하곤 합니다. 내 몸의 굳은 부위가 어디 남이 얹어준 것일 리 없잖아요? 나도 미처 몰랐고, 모르니까 소홀히 했던 거겠죠. 고통을 만나면 그래서 숨겨진 또 다른 나를 만난 듯 저는 반갑게 인사하고 싶습니다. 비단 폼룰러 마사지를 할 때만도 아니랍니다. 그저 인생의 태도를 그렇게 가져가고 싶어요. 일이 생각처럼 안 풀릴 때 미처 몰랐던 소홀한 지점은 없었던지 점검해 보는 거죠.
반대로 인생의 좋은 일은 운칠지삼이라는 말처럼 운이 7할, 노력은 3할 정도인 것 같아요. 이 사자성어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모두 운칠지삼이라는 의미겠지만, 저는 특별히 좋은 일을 대할 때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답니다. 고통을 대하면서 나를 보고, 즐거울 때 밖을 보면 내면은 강해지고 세상은 아름다워져요. 물론 이해할 수 없는 이 모순을 누군들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이런 삶의 모순을 받아들이고 나서야 저는 겸손의 의미가 이해됐어요. 정말 겸손이라는 단어는 어려운 단어라서 제게는 오랫동안 소화되지 않았고, 내 삶으로 표현해 낼 방법을 모르겠더라고요.
뻐근한 몸에 돌기 폼룰러로 구석구석 마사지를 할 때, 제 마음은 먼저 고통을 정직하게 내 몫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배웁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함께해야 할 인생 필수 아이템으로 삼을만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