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유의 맛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유인 Mar 16. 2024

곤로 앞에 앉은 숙이

참빗으로 윤기나게 머리 빗고

숙이는 부엌에 나가 곤로 앞에 앉았다


아버지는 두 남동생들은 대학 유학 보낼 심산이니

나는 중학교까지 들어가 한 일 년 다녔으면

배울만큼 배웠다신다


아버지는 남자라 내 마음 모른다쳐도

어머니는 여자면서 내 마음 더 모른 채

아들만 바라본다


셈 빠르고

달리기도 잘하고

반 친구들이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학교 가고픈 내 마음은 동네 강아지도 몰라준다


뿔이난 숙이는 부엌에서

애꿎은 그릇에 화풀이를 하더니

이제는 곤로 앞에 앉아 시린 마음 달래본다



이제 일흔이 되신 시어머니의 이야기를 기록에 남기고 싶어 쓴 글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차별없는 교육의 기회가 주어졌던 것은 90년대에 접어들어서다. 

그러니 그 이전에 학령기를 보냈던 세대들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삶은 미래를 향해 달리는 것이 최선인 것 같지만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주목하자면 우리는 미처 경험하지 못한 그들의 과거와 만나야 기회들이 참 많다.

그러니 나의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해서 그들의 과거도 알아주고 이해해 주어야 할 때가 있다. 


"내 친구들이 내가 공부 좀 더 했다면 동네를 주름잡았을 거라고 한다."


시어머니께서 가볍게 하셨던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곤로 앞에 앉아서 마음을 달래며 음식을 만들던 수십 년 전의 숙이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아마 온전히 그때의 그 마음을 다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나의 글이 어머님께는 묵은 기억과 화해하는 따뜻한 기억으로 새롭게 덧입혀지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매화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