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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인 Apr 25. 2024

대부분의 실패와 드문 성공

사람마다 삶의 에너지를 주도하는 일종의 정서에너지가 있다고 가정을 한다면 나의 오랜 친구는 막연한 불안과 특정 두려움이다. 뭔지 모르지만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충분히 준비하지 않으면 나의 계획이 물거품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나를 이끌어온 부인할 수 없는 에너지였다. 


깃털처럼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주어진 과업이나 삶을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과연 그렇게 살고도 내 안목에 만족할 수 있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정도이니, 누구도 말릴 수 없는 나의 생존을 위한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장치는 내 삶의 동반자쯤으로 인식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불안과 두려움은 사실 다른 정서이다. 불안은 막연하고 두려움은 대상이 명확하다. 그러나 내 안에서 두 정서가 작동하는 기저의 메커니즘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다만 불안을 두려움으로 바꾸면 명확해져서 극복이 수월한 것 같지만 맘 속에서 빙빙 돌다가 강한 확신이나 자존감이 올라올 때 흔적도 없이 척결할 수 있어서 두려움보다 불안이 대적하기 좋은 상대일 때도 있다.


이 글의 제목에서 핵심 키워드는 '성공'과 '실패'이다. 나는 유독 이런 단어들에 민감한 사람이다. 상당히 성취지향적이고 경쟁적인 성향의 사람임을 입증하는 근거일지도 모르겠다. 거기다 하나에 꽂히면 바닥을 짚어보고 다시 올라오는 집요한 성미까지 있어서 성공을 좋아하지만 실패는 극도로 싫어해서 내 두려움과 불안의 자극요인이 되는 것 같다.


인생의 대부분은 실패의 경험들이었고, 가끔 성공하여 "마침내 좋았더라!!"를 힘차게 외치며 사는 것이 내 삶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연애를 포함한 인간관계도 경제적인 자유감도 커리어의 발전도 심지어는 자식농사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벌써 25년 전, 내가 스물한 살 때의 이야기라 좀 민망하지만 대학 2학년 때 처음으로 연애를 시작했다. 도서관 앞에서 무턱대고 나를 기다리던 동아리 선배, 짝사랑했던 국문과의 시커먼 근육남 등등까지 이성관계로 내 주변을 넘나들던 남자들이 열 명은 족히 된다. 그 당시 어떤 사연들이 있었든지 그들은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에 따르면 실패의 영역으로 분류된다. 연애의 끝은 결혼이라고 믿는 내게는 그저 현재의 남편이 나의 성공 영역에 있는 유일한 인물이 된다.


서울의 성동구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할 때 지역사회협의체 모임에서 만난 사회복지사 한 사람의 사례가 기억난다. 그 친구의 어머니는 생물학적 자녀인 자신을 낳은 후에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5명은 넘는 동생들을 입양해서 키우는 사회운동가이자 실천가라고 자신의 가족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 친구가 한 농담이 있다. 입양을 여러 명 하다 보니 드디어 대박이 나서 그중 한 명은 천재가 우리 집안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1명도 낳지 않는 요즘, 나도 세 명의 자녀를 낳아 키우다 보니 자녀의 성향도 역량도 유전과 환경의 영향력 중 타고난 유전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한 지 알 것 같다. 그러니 그 친구가 가벼운 농담으로 이야기했던 것처럼 대박이다 싶은 자식도 그저 소수에 불과한 것이다. 


나는 경제적 자유도를 누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투자에 지략가는 아니지만 나와 우리 부부의 상황에 맞는 투자에는 늘 더듬이를 작동시키며 살아왔다. 그중에서 우리 부부는 아파트 매매를 통해 어쩌다 자산을 불려 온 경우에 해당한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유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집'의 중요성은 뼛속 깊이 새겨지게 되어있다. 20대에는 몸을 누일 수 있는 고시원과 하숙집도 감지덕지였지만 결혼 후 아이들이 하나, 둘, 종국에는 셋까지 생겨가자 그저 자녀에게 좋은 환경을 선물하고 싶은 자연스러운 욕구는 자산의 확대에 대한 동기를 더욱 강화시켰다. 두 채의 집을 소유하며 매매 계약을 6번 하면서 우리 부부의 자산은 예상하지 못한 수준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따져보면 절반은 실패였고 한 두 건이 대단한 수익을 가져다준 것이다. 


나는 커리어의 변화도 참 다이내믹했다. 처음에는 지방 대학에 들어갔고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는 욕구 하나로 서울로 편입을 했다. 그리고 4년 심리학을 전공하고 석사 때부터는 사회복지학으로 방향을 틀어버렸다. 전공을 전환할 때의 이유는 재미는 있지만 확장성이 낮은 전공분야라는 판단이 섰다. 당시에는 가난해서 유학을 엄두도 못 냈던 터라 국내 박사로서 교수를 할 가능성이 높은 영역으로 옮겨간 것이다. 거기다 처음에는 현장의 사회복지사로 시작을 해서 서울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미시 영역에서 거시 영역으로 내 삶의 장을 옮겨 버렸다. 그 경험이 있은 후에 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 숱한 고배를 마시며 마침내 교수임용이 되었다. 


이런 내 삶의 여정들을 보면 그때는 실패였으나 돌아보면 의미 있던 경험이었고 결국 내가 원했던 성공의 범주로 나를 옮아가게 한 단서들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시간의 태엽을 돌려보면 미래의 내가 이렇게 해석할 여지는 없었다. 연애에서 붙임을 경험했던 20대를 돌아보면 지금은 기억조차 아련하지만 가슴을 후벼 파는 슬픔과 아픔의 경험이었을 뿐 그것이 신의 선물과 같은 배우자를 선택하는 의미 있는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지 않았다. 


자녀를 낳아서 키우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처음인지라 하루하루가 버겁고 나의 커리어와 자녀 양육이라는 양자 간의 선택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수년의 세월이 거기에 있었다. 또, 아이들은 내 속에서 나왔지만 나와 다른 인격체임을 인정하고 존중하기까지 가슴에는 인이 박히는 인고와 엄마로서의 적절한 포기,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자식이어도 변화를 만들려면 상대의 변화보다 나의 변화가 먼저인 것은 다른 관계들과 다를 바가 없다.


부동산 투자에 대해 아무 개념 없다가 그저 서울에서의 불안한 생존을 위해 시작한 일들이 갑자기 지하철이 생기고, 모델링이 되고, 부동산 상승은 이제 없다는 불황에도 살 수 있기에 산 집들이 가격이 상승했다. 오히려 남편과 임장을 하며 기대에 마지않았던 집들은 빠르게 실패를 인정하고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법이었다.


커리어와 관련해서도 지금 생각하면 마치 정답지를 보고 문제에 대응한 것처럼 시의적절한 선택들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석사과정에 전공을 전환하면서 인접 학문이지만 결이 다른 보이스를 이해하고 체득하는 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도교수님을 찾아가서 자퇴를 해야겠다고 했을 때 조금만 더 참아보라고 형식적일지언정 만류하지 않으셨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교수임용을 준비하면서도 맞벌이가 지연되다 보니 교수는 언감생심이라는 시어머니의 핀잔을 견뎌야 했고, (당시 실력이 부족했을 수도 있지만) 남자교수나 외국박사를 선호하는 학계의 괴물 같은 인식에 부딪혀 여러 번 고배를 마셨다. 


사실 내가 만족할만한 성공의 경험은 단 번에 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신이 나를 다루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방자한 인격체가 되지 않고 숱한 실패로 거만한 인격이 다듬어져서 갖게 된 성공의 경험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겸허히 인정하게 하려는 신의 한 수가 아닐까 싶다.


어떤 의미에서 인생은 정말 한 방일지도 모른다. 또, 인생은 어쩌다 도박에서 패기와 아집을 배운 도박사의 면도와 통할 지도 모른다. 노력보다 운빨로 사는 것이 인생이라는 말도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금세 내 삶의 대부분의 실패와 가끔 있는 성공을 망각하고 살아갈지언정 내가 살아온 인생 여정의 시간들은 나보다 똑똑히 그 모든 족적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가끔 똑똑 문을 두드리며 나의 정서를 자극하며 경각심을 일으킨다. 그것이 내 속의 불안과 두려움이 가지는 핵심적인 의미라 생각한다. 


다행히 이제는 대부분의 실패와 가끔 있는 성공의 경험으로 점철된 불안과 두려움을 기억하되 그 자체를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두려움도 불안도 모두 괜찮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실패는 내게 무엇인가 깨달아야 할 바를 알려 주기 위해 나를 찾아온다. 실패는 소중함을 깨우치라고 나를 훈계하고, 겸손히 제자리를 지키라고 나를 다독인다. 그러니 내 삶에 숱한 실패가 있고, 아주 드문 성공의 경험에 감사하다. 쉬운 성공을 신이 허락하지 않은 것에 갈채를 보내고 싶을 지경이다.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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