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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유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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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인 Oct 14. 2022

마흔넷의 소망

살다 보면 가끔은 길을 헤매다 동굴에 갇힌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물론 이런 일이 빈번하지 않았으니 그건 아마도 내 인생도 나름 꽃길이었거나

무한 긍정의 태도를 가졌거나 혹은 둘의 적절한 조합 상태를 지나온 것인지도.


그런 내가, 요즘 불편하다. '내'가 편치 않다.

편치 않은 타인과 함께 하는 시간이 힘겹듯 요즘 나는 '나'와 대면하는 것이 복잡하고 미묘하다.

마치 연애하다 이 남자 친구를 계속 만나야 할지, 그만둬야 할지 고민할 때의 심정이랄까?

아마도 그 정도 농도의 번민인 듯하다.


물론 나는 금이 가서 내면의 갈등이 시작된 관계는 깔끔하게  끝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타자라면 가능할 텐데, 다름 아닌 '나'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지금까지 확신에 차서 살아왔고 최선의 차선에도 만족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고 위로도 하며, 앞으로 앞으로 행진하듯 살아왔다.

아마도 이것이 화근인 것 같다.


산에 오를 때면 위를 올려다보며 나무가 얼마나 높이 솟았는지에만 관심을 뒀다.

울창한 잎이 만들어 주는 그늘과 초록의 투명한 빛깔과 그 너머의 하늘을 보며 취해 있었다.

끝없는 상승을 위한 욕구는 삶의 강력한 동기가 되어주었다. 잘 살아가기에 충분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몰랐다.

더 깊이, 더 넓게 땅 속으로 뻗어가는 강력한 하강을 향한 에너지를 알아보지 못했다.

동네 뒷동산만 올라봐도 오랜 고목이 뿌리의 속살을 드러내며 따박따박 발걸음을 지탱해 줄 때가 있다.

나무의 뿌리에 내 무게를 실을 때의 든든함이란 사람이 만들어 놓은 계단과는 비교가 안된다.

위만 보며 살다 보니, 땅 속 깊은 곳을 향해 깊게 침투하는 뿌리의 기세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아마 변화가 필요하다면 바로 이 지점이 아닐까 싶다.

나와의 관계가 편치 않은 '내'가 머물러야 하는 시선 말이다.

높이와 상승은 내게 살아감에 열광하며 환희와 찬사를 보내게 했지만

깊이와 하강에 대한 지각이 없는 상승은 공허해지나 보다.


이제 하늘 못지않게 땅을 향해 무한을 상상할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우주를 놀이터 삼아 놀 듯, 깊이를 소유한 대지의 품에서 희희낙락 안식하는 법도 배워야겠다.

고목의 줄기를 지나 구름과 바람과 해와 달과 별들이 사는 저 높은 곳 말고도

내 발아래 나무의 뿌리가 침잠해 들어간 깊고 깊은 곳에 마음을 주고 시선을 두어야겠다. 


아주 천천히 아래로 향하여 깊이 내 삶을 음미하며 살고 싶다.

이전에 알지 못한 나를 알아봐 주며 온전한 나로 살고 싶다.

타자가 건네는 손짓에 파르르 생경한 느낌을 느끼며 살아보고 싶다.


마흔넷, 나의 간절한 소망이다.

우주를 향한 떠남의 삶에서 대지를 향한 머무름의 삶을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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