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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인 Jan 14. 2023

교수가 잡상인, 앵벌이라고?

Nope!

부산의 한 사립대의 퇴직 교수가 SNS에 올린 글이 기사화되었다. 입시철마다 신입생을 끌어모으기 위해 앵벌이, 잡상인이 되어 고교에 방문했던 경험이 담겨 있었다.



기사를 읽자니 나 또한 교수로 살아가고 있기에 그간 연구와 강의로 학문에 힘쓰는 고상한 직업으로 읽히던 '교수'라는 직업의 민낯이 드러난 듯하여 복잡한 심경마저 들었다.


대학이라는 주체도 사회적 책무와 기능을 무엇으로 규정할지 혼돈의 시간을 걷는 듯하다. 흔히, 학생들을 잘 가르쳐서 사회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하는 인재로 길러내는 것을 대학의 역할과 책임으로 규정한다. 그런데 빠르게 변하는 현실에서는 이런 추상적인 명제만으로는 개별 대학이 가야 할 길의 좌표를 정하기란 쉽지 않다. 사회가 어떤 길로 갈 것인지 명확한 비전을 설계하고 그것이 현실이 될 것이라는 확신성도 떨어지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불확신성이 커질수록 전략구상은 어렵다. 그러니 대학은 비전과 전략 설계가 되지 않은 채 인구절벽으로 수요자의 급감을 맞이하였고, 궁여지책으로 교수들에게 '당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학생들을 모으기 위해 전력을 다하라고 요구한다. 기사화된 퇴직 교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자신의 역할을 잡상인, 앵벌이로 칭한 듯하다.


물론 교수가 되어보니 그 역할이 생각보다 고상하지 않았다. 심지어 가르칠 학생을 찾아 발품을 팔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나는 잡상인, 앵벌이로 나의 역할을 폄훼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의 대학들은 철저히 서열화되어 있다. 낮은 서열에 있는 대학일수록 사회 흐름에 따라 유행하는 학과에 대한 대중의 선호도 확실하게 입시 결과에 반영되는 것을 실감하곤 한다. 산업은 혁명적으로 변화하고, 일반 대중, 학생과 학부모 등 대학 교육의 수요자들의 기대와 요구의 변모 또한 빠르다. 더욱이,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기 인구가 줄고 있어 학령기에 초점을 맞춘 대학 교육은 수요자의 총량이 급감에 따라 그들의 기대를 적절하게 읽어내지 못하면 자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인서울 중심의 일부 대학을 제외하고 대학은 더 이상 상아탑이 아니며, 대학 역시 교수에게 상아탑의 파수꾼 역할을 기대하지도 않는 것 같다. 오히려, 대학을 상아탑으로 인식하고 자신의 역할을 규정하는 교수가 있다면 대학 내에서는 구태로 인식되는 경향마저 생겨나고 있는 것이 현재 교수의 위상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런 대학 내 분위기에 대한 인식은 인서울 전문대학, 경기도의 전문대학, 지방 4년제 사립대학이라는 대학 서열 상 다소 마이너 한 대학들을 경험한 나의 주관적인 경험이니 모든 교수의 현실이 나의 경험과 일치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사실, 나의 교수 생활 7년 중, 어느 해에는 고교 방문을 수십 군데를 한 적도 있다. 그렇게 하면 학생모집이 실제로 되냐고 묻는다면, 결과적으로는 성과가 있었다. 가만히 연구실에 앉아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고교 현장의 교사들에게도 진로지도의 답안이 모호한 학생들이 있었고, 그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다 보면 내가 제공하는 정보가 유용할 때가 있었으니 말이다. 이삭 줍기를 하듯, 수도권 고교를 다니던 그때의 내 마음에는 하나 밖에 새길 것이 없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일개 교수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고교방문'이라도 하며 개인의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다른 묘책이 없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하늘의 뜻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는 자조의 마음뿐이었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학생 모집을 하면서 나는 그 일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았다. 학생 한 명에 대한 소중한 마음과 직업에 대한 애착은 더욱 커졌다.


기사처럼 실제로 많은 대학의 교수들이 학생모집에 나선다. 몇 해 전 대학교수인 지인 몇몇이 모인 자리에서 학생 모집에 고충을 겪고 있는 전문대학의 현실을 조심스럽게 언급한 적이 있다. 내 이야기를 듣던 인서울 4년제 중위권 대학의 교수는 자신은 대학원생 모집을 위해 대학들을 방문하여 학과 게시판에 대학원생 모집 공고를 붙여야 할 실정이라고 했다. 


교수에게는 각종 연구과제들, 책임시수 강의, 재학생들을 위한 비교과 지도와 상담은 일상의 업무이고, 보직을 맡게 되면 행정 업무의 양도 만만치 않다. 거기에 더하여 신입생 모집까지. 요즘 대학 교수의 일상은 복잡다단하다. 교수가 되기 전, 내가 상상했던 교수의 모습은 고상했다. 치열하게 연구하고 전문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목소리를 내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까랑까랑한 교수의 세계가 얼마나 멋져 보였으면 나도 내 인생의 목표를 교수로 두고 달려왔을까? 


좋은 대학에서 내가 보아왔던 교수님들의 역할을 보며 어떤 교수가 될지 야무진 꿈을 꾸었던 것과 현실의 괴리가 컸지만 그래도 여전히 학문의 즐거움, 글 쓰는 기쁨, 가르치며 얻는 보람도 크다. 내 삶의 어떤 영역이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다른 영역과의 교류가 매우 중요하다. 학문의 즐거움과 글 쓰는 기쁨, 가르치며 얻는 보람이 별개인 것 같지만 서로 통하는 지점이 있다. 신입생을 유치해야 한다는 교수에게 주어진 막중한 책무가 무겁긴 하지만 나는 이것 역시 교수로서 내가 소유하기를 원하는 역할과 책임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교수의 가장 기본 역할을 가르치는 것이고, 가르칠 대상이 없다면 교수의 역할도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어떤 직업에도, 어떤 직장에서도, 어떤 돈벌이에도 그 일을 위한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업무와 부수적인 업무들이 뒤섞여 있다. 학생 유치를 위한 대학의 고민이 교수인 나의 고민이 된 것을 받아들여야 교수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는 때가 되었다. 안타깝고 아쉽지만 사실이 그렇다. 그러니 교수로서의 역할과 정체성도 잘 정립하여 살아가야 한다. 자칫, 흔들리다 보면 잡상인, 앵벌이. 아니 그보다 더한 속칭들이 나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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