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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인 Mar 19. 2023

열망의 도시를 떠나

서울이라는 도시의 의미

서울과 수도권에서의 삶이 얼마나 팍팍하고 분주한 지는 

떠나서 살아보면 그제야 제대로 알게 된다.

나는 대구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내가 자라는 동안은 직할지, 광역시였으니 

대도시에서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어린 시절 더 큰 도시 서울에서 살아보고픈 마음은 

막연했지만 나의 열망의 지향이 되었다.


더 자유로운 문화활동이 가능하고,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 

더 많은 기회가 있고, 더 멋진 삶이 펼쳐질 것 같은 희망의 땅이 서울이었다.


대학생활부터 시작된 서울 생활은 유학생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내가 살아가기에는

늘 생경했고, 생존을 위해 도전하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다.

돈이 좀 없고, 사는 곳이 좀 열악해도 그저 서울에 산다는 것으로 희망을 가졌던 때가 있었다.

서울이라는 곳이 삶의 터전인 것만으로 더 누리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고,

더 기회를 가진 것으로 내 삶의 여건을 평가했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결혼을 하고 신혼집을 구하는 동안에도

대구에서 살았던 아파트라는 공간은 서울에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남들은 다 가져도 나에게는 돌아오지 않는 기회들에 슬슬 짜증이 밀려오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서울은 그런 감정으로 버텨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철저하게 경쟁적이었고 냉정했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북아현동 가구골목 인근에서 월세와 전세를 전전할 때,

주인아저씨께 민망함 무릅쓰고 집세 5만 원을 깎아달라고 간청한 적이 있다.

냉정한 거절을 등에 업고 결국 집을 비우며 나왔지만

내게는 '아님 말고'라는 뒷심의 당당함이 있었다.


지난 일, 속상한 일을 되짚어볼 겨를 없이, 

좌절에 안주하지 않으며 살았던 것 같다.

서울이라는 곳은 그런 되새김질을 용납하지 않는 곳이었고

생의 질주만이 허용되는 곳이었다.

그래야 겨우 생존할 수 있었다.


내 삶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치열하게 살았던 서울을 떠나

최근 다시, 대구 인근으로 거주지를 옮겨왔다.

주말이면 서울에서 내려온 남편과 뒷산을 오르고

잘 가꾸어진 저수지를 산책하며 까만 하늘에서 별을 찾아보기도 한다.

생존을 위한 열망으로 치열하게 살았던 서울을 떠나온 지 불과 한 달 만에

이곳이 좋다는 생각보다 서울이 어떤 곳이었던가를 떠올리게 되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여유와 느긋하게 숨이 쉬어지는 걸 보면 

서울을 떠나 살아가고 있는 요즘은 내게 쉼의 시간임은 분명하다.

신의 선물이 이런 거다 싶어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든다.


그러다 가끔은, 남편이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기도 하다.

그렇게 치열했던 절반의 삶에 대한 기억이 있는 곳이 서울이기 때문인지,

마침내 생존자가 되어 적어도 서울에 버림받지는 않았다는 나의 자만 때문인지.

서울을 떠나와서 살고 있지만 다리 한쪽, 손 끝 어딘가는 

여전히 서울과 닿아있는 느낌이 있어 다행스럽다.

어느새 서울에서의 치열함에 중독되어 있는 삶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무리 여유로운 생활이 만족스러워도 

열망의 도시 서울은 나의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의 시간 속에 철저하게 어떤 의미를 가진다.

힘겨웠지만 미워할 수도, 멀리할 수도 없는 곳이 된 것이다.

열망의 도시에서 치열하게 살았던 기억이 있기에 지금이 더 행복한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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