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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인 Apr 26. 2023

박노보 선생님처럼

가슴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교육자가 되고 싶다.

언어의 힘은 대단하다. 발이 없어도 천리를 가고(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때로는 천냥 빚을 갚는 것(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도 말이 가진 힘이다. 그도 그럴 것이 되돌아보면 말로 상처받았던 기억, 말로 관계의 회포를 풀었던 기억이 있는 걸 보면 말은 관계의 중심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한편, 관계는 그 사람의 가치를 확인받는 장(field)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됐고, 어디로 가는가?' 이런 질문들은 위대한 철학자들의 사유 영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왜 우리 엄마는 그때 나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 '직장동료가 지금 내게 던진 이 말은 지금 나를 어떻게 보고 하는 말일까?' 등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나는, 고매한 질문 대신 이런  소소한 질문들에 어렵사리 해답을 찾으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선택하며 살아왔고, 지금의 내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관계 속에서 부대끼며 스스로에게 던졌던 날 선 질문들의 시작은 대체로 사람들의 말들 속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 마음속에는 해로운 것들을 걸러내는 거름망과 쓰레기통이 장착되어 있어야 했다. 나란 사람에게 잘 맞는 최적합장치들을 구비하는 것, 사람이 성장을 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자기 맞춤형 장치들을 튼튼히 세우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석사과정, 박사과정, 다시 석사과정까지. 내가 교육을 받아온 시간만 24년이다. 그 세월 동안 많은 스승을 만나왔지만 오랜 시간이 흘러도 기억을 곱씹으며 회상하게 되는 선생님이 그리 많지는 않다.


박노보 선생님


내 기억에 있는 가장 오래전 선생님이다. 국민학교 1학년 때 전학을 가서 만났던 선생님이었으니 37년 전이다. 까랑까랑한 목소리와 환한 표정이 기억에 선하다. 하도 오랜 기억이고 반복 회상을 하면서 8살 어린아이의 시선 속 선생님에 대한 이미지는 가감이 있을 수 있다. 나는 베이비부머의 자녀 세대인지라 학급의 학생수가 많았던 시절을 보냈는데, 교실에 한가득 들어찬 아이들을 대하는 선생님의 모습은 늘 웃는 표정이셨고 배터리가 100% 충전되어 있을 때 나올 법한 꽉 찬 에너지를 전하는 분이셨다. 여덟 살, 어린 나에게도 그건 확실하게 전달되었다.


내가 유독 박노보 선생님을 기억하는 이유가 있다. 생활기록부에 선생님이 써 주신 한 문장이 지금껏 가슴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말없이 행동하는 귀염둥이임". 학령기를 지나는 동안 생활기록부에 남겨진 나에 대한 선생님들의 코멘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표현이다. 나도 지금  세 명의 학령기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학년이 마칠 때가 되면 선생님의 코멘트가 들어간 기록부를 갖고 온다. 그 모든 기록들 중에서도 박노보 선생님의 한 줄 표현은 참 기발한 표현이었던 듯하다. 대개는 발달과업을 적절하게 성취하는지에 관한 적당한 칭찬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기억에 잘 남지 않는다. 우리 박노보 선생님의 기막힌 표현을 보라. 날더라 '말없이', '행동하는', '귀염둥이'라고 하셨다.


선생님의 이 재치 있는 표현은 때때로 침울한 나를 깨우는 희망의 언어였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래!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야!' 확언할 수 있는 증빙자료 같은 것이었다.


얼마 전, 외부 회의가 있어서 출장을 갔는데 초행길이라 일찍 나선 덕에 회의 시간보다 30분이나 빨리 회의 장소에 도착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불현듯 박노보 선생님이 뇌리를 스쳐갔고 시간도 넉넉하니 네이버에 들어가서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성함도 매우 특이하셔서 왠지 유일할 것만 같은 이름이니 검색이 될지도 모른다는 긍정회로가 돌아가고 있었다. 와우! 몇 개의 기사 자료를 찾았는데, 7분의 퇴직하신 교장 선생님들의 봉사단에 대한 기사였다. 느낌이 좋았다. 8살에 알아본 우리 선생님의 모습이 봉사하는 활기찬 노인의 모습과 너무 잘 어울리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기사에 첨부된 사진 속에서 '바로 이 분!' 순식간에 박노보 선생님을 찾을 수 있었다.


오래전에 연예인들이 나와서 오랜 추억 속의 선생님을 찾는 장면을 보면서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선생님에 대한 마음이 저런 것이구나 남일처럼 봤었는데, 기사에서 얼굴만 뵈어도 기쁨이 들어차는 마음을 느껴보니 TV 속에서 만난 연예인들의 감정이 그제야 이해가 됐다.


나도 대학 강단에서 교육자로 살아가고 있고 가끔은 내 역할에서 큰 무게를 느낄 때가 있다. 90년대 생이 온다며 대단한 변화의 물결에 각오해야 한다는 주의를 주더니, 그다음에는 2000년대생이, 또 어딜 가나 MZ세대를 이야기한다. 결론은 기성세대와 다르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나면 그 변화를 내가 왜 체감을 못할까? 당연히 매해 달라짐을 느끼고 세대차이도 느낀다. 그런데 이런 다름은 그만큼 이해해야 할 폭, 끌어안아야 할 도전의 내용이 많다는 것이지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다. 세대 간의 다름이 더욱 강조될수록 나는 두려움과 염려에 휩싸이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내 역할의 무게감이 크게 느껴졌다.


그런데, 박노보 선생님! 나에게 '말없이 행동하는 귀염둥이'라고 하셨던 그분의 말씀을 떠올리니, 나의 역할이 쉽고 간단하게 이해됐다. 선생이라는 위치에서 내 말이 가질 수 있는 위엄을 인정하고 내가 만나는 청년들에게 희망의 씨앗을 뿌려 주는 것. 이왕이면 따뜻하고, 이왕이면 사랑이 담긴 언어를 그들에게 쏟아부어주는 것이다.


37년 전 박노보 선생님이 나에게 남긴 한 마디의 칭찬이 오늘의 내게도 또 다른 희망으로 다채롭게 자라듯, 나를 만나는 학생들이 나로 인해 말로 상처받지 않기를, 지금껏 받아왔던 상처가 있다면 나의 말로 치유되기를, 좀 더 욕심을 내자면 흘겨 들었던 나의 말이 세월이 지나도 기억에 남아서 오늘을 살아가는 강력한 에너지원이 되기를. 그렇게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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