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의존 대상의 객관화 : 헤어질 준비
이제와 뒤돌아보니, 20대의 내 인생과업은
엄마와의 공생관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청산하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엄마와 완전히 붙어있는 존재였다.
이혼가정의 책임감 강하고 독립적인 맞딸의 모습,
엄마의 자랑이자 희망인 장녀 상을 떠올려보라.
그렇다. 아이인데 어른 같은 그런 모습이 나였다.
그렇게 살아가기 불편하지 않았냐고?
성인기에 이르기 전까지는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인정해 주는 대상에게서 위로받고 사랑받는 편안함이 있었다.
공생관계에 있으면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예측가능해 보인다.
무엇보다 이런 예측가능성은 감정적인 데 있었다.
엄마의 마음이 읽어지고 그 마음에 집중하는 것에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마치 텔레파시라도 통하는 듯 인식의 선에서도 서로 통하는 것을 느낀다.
융이라는 심리학자의 이론에서 말하는 동시성과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고등학생이었을 때, 수업 시간에 갑자기 엄마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쉬는 시간에 공중전화로 뛰어가 전화를 했다.
마침 통화가 되지 않았고 알지 못한 안도감이 들기에 다행인 마음이 들어서 별일 없으려니 했다.
하교 후 집으로 돌아와 보니, 내가 걱정했던 바로 그 시간에 엄마가 쓰러지셔서
구급차를 불러 응급처치를 했다는 것이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소름 끼치는 경험이었다.
공생관계가 심하면 소름 끼치는 것이 맞다.
얼핏 보면 공생관계에서 나타나는 두 사람의 진한 교류가 유용해 보이기도 하지만
각자 독립된 실존적 존재로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공생관계의 청산은 필요하다.
그 모습은 다른 세상,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반작용에 저항하는 것이라서
부모의 입장에서는 낯설고 불편하다.
사실 건강한 가정에서 건강한 부모의 양육환경에서 자란다면
이 모습이 아이들의 사춘기의 심리적 특성과도 비슷하다.
엄마의 입장에서 나의 사춘기는 20대였다.
그 시절 나는 10대의 사춘기보다 세련되게 저항하고
엄마와 다른 생각을 하고
엄마의 기대에 어긋났다.
'나는 당신과 하나가 아니랍니다.'
'나는 나의 길을 갈랍니다.'
어설프지만 나만의 방법으로 외쳐 보았던 것이다.
그 길이 대단히 잘못된 것도 아니었고 일탈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나다움을 찾아가는 용기 있는 선택들이었다.
나의 입장에서는 공생관계의 청산이고 나의 경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아이가 독립하려 할 때 부모 역시 강력한 불안감을 느낀다.
내가 남편과 결혼하려고 할 때,
엄마는 결혼하지 않고 엄마와 둘이 사는 게 어떠냐는 말씀을 하셨다.
그 얼굴에 드리워진 떠나보냄의 슬픔이 역력해서 너무나 안쓰러웠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때 깨달았다.
정말 엄마와의 공생관계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는 것을.
그 후로 나는 엄마를 한 인간으로, 한 여성으로 귀한 존재로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