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를 펴! 당당하게!

가난과 부러움을 이기는 힘

by 자유인
살고 싶소 당당하게 살고 싶소. 살고 싶소 당당하게 살고 싶소.
오늘은 비록 흐린 날에 취했어도 내 마음은 언제나 그대들과 하나요.
그 모든 것을 사랑하며 살고 싶소 희망이란 내일 찾아 우리 모두 당당하게.


대학시절 1년 동안 야학교사활동을 하던 때, 선배들이 노래방에서 외쳐 부르던 가수 안치환의 '당당하게'라는 곡이다. 나는 '살고 싶소~ 당당하게 살고 싶소~'라는 가사를 유난히 좋아했다. 가끔은 혼자서도 이 구절을 되내이며 힘을 얻곤 했다. '고작' 20대 초반이지만 삶이 주는 무게감을 여렴풋이 느끼며, 거기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힘있게 살고 싶다고 외치고 싶었던 모양이다.


무엇이 나를 속박했는지, 자유를 갈급하게 했는지 답할 수는 없다. 선명하게 답할 이유가 있어서라기 보다 그냥 나란 사람이 갖고 있는 인생관이나 삶의 태도 같은 것이 반영된 듯도 하다. 어쩌면 갓 스무살이 지나서야 사춘기의 방황과 정서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당당함은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고단한 시기에 진가를 발휘했다. 대학 4학년 되던 해부터 유난히 어려워진 집안 형편으로 석사과정을 마친 후 첫 직장 생활이 시작됐고, 그때부터 나는 엄마와 나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되었다. 월 100만원 정도의 급여는 월세에 공과금, 두 사람 식비로도 빠듯했다. 용케 번역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며 근근히 생활했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주어진 상황에 맞춰 살아가면 되니까. 하지만 가난은 꿈을 꾸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치명적인 생애사건임을 체득할 수 있었던 혹독한 시절이 그때이다. 전공 공부에 빠져 노년의 행복한 삶에 기여하겠다던 야심찬 계획과 열정은 점점 사그라졌다. 온전히 '살아냄'에 집중하느라 나의 꿈과 희망, 목표 따위는 사치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내 특유의 당당함은 자존감을 다치게 하진 않았으니 그 시절의 내가 참 기특하기도 하다. 20대 중반 직장생활을 하면서 예쁜 옷과 화장품이 갖고 싶을 만도 한데 탐내지 않았고 욕심도 없었다. 다행히 친한 직장 선배가 출산 후에 체형이 변해서 못 입게 된 옷들을 챙겨 주었는데 횡재한 기분이 들어 신났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또, 같은 디자인의 옷을 깔별로 사고 화장품 욕심도 많던 친척 언니가 챙겨준 각종 멋내기 용품들은 가난하던 시절 일용한 선물들이었다.


유학길에 오르고 싶었지만 포기하고 직장생활을 선택했을 때,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 넉넉하게 살아가는 대학 동기들의 모습을 보았을 때. 나도 자칫 열등감에 허우적거리며 환경과 남 탓에 마음을 뺏길 뻔도 했다. 어쩌면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부러움이 가슴을 때린 흐린 날에 나도 술에 취해 당당하게 살고 싶다고 외쳤을런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의 당당함은 남들이 거저 준 것들을 감사할 수 있게 했고, 내 감정과 삶의 에너지를 현재와 미래로 재조준할 수 있도록 도왔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인생 여정에 참 불필요한 일이 남 사는 모습 보며 내 삶을 한탄하는 일이다. 나만의 독특한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여행길에 곁눈질하며 목적지를 놓치는 실수는 하지 않을 테다. 하지만 두 눈이 보고, 두 귀가 들으며 가슴에 신호를 보내는 일은 마치 나의 뇌가 통제할 수 없는 일마냥 불쑥 찾아와서 가슴을 후벼판다. 그래서 남과 비교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지만 그 일을 반복하게 된다.


그럴 때는 "당당하게! 살고 싶소!" 외치고 일어나 제 갈 길을 가면 된다. 남 사는 데에 한눈 파느라 마음을 뺏기지 말자.


그렇게 방향을 잃지 않고 한고개, 또 한고개를 넘어온 이제야 깨우친 것이 있다.

나보다 잘 사는 그 사람, 부러운 그 사람.

내 삶의 방향을 분명히 하고 살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 다시 한 번 만날 날이 있다. 내 길에 충실하며 살았다면 그때는 그가 내게 먼저 말 걸어올 날이 있더라는 거다. 그 두 번째 조우가 진짜 인생의 성패를 보여준다. 그 통쾌한 조우를 꿈꾼다면 허송세월 하지 말자! 당당함은 가난도 부러움도 모두 이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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