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가 자랑스러워

왜냐고 묻지 않고

by 자유인

3월의 대학 교정의 풍경은 산뜻한 봄기운으로 설렘이 가득하다. 겨울의 찬 기운을 밀어내는 봄의 따뜻함은 하늘색, 구름 모양, 새싹과 꽃잎들, 피부에 스치는 바람결에서도 느낄 수 있다. 계절의 변화가 주는 설렘 못지않게 신학기 신입생을 맞이하는 교수의 마음에도 야릇한 설렘이 있다.


자식을 향한 부모 맘이 다 같다지만 사랑의 모양이 다르게 전해지듯, 선생이 제자를 향하는 마음도 비슷하다. 모두 내 새끼 같지만 그중에 시선이 더 가는 학생이 있기도 하다. 교수생활 2년째 되던 해에 만난 은빈이가 내게는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3월 한 달 간은 호리호리한 몸에 참 잘 어울리는 정장 차림에 한껏 멋을 부리고 등교하는 모습에서 이 아이가 기대하는 대학생활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다. 때로는 속내가 궁금해도 말 걸기를 더디 하며 관계에서의 새로운 국면을 기대하며 기다림이 필요한 때가 있다. 은빈이에게 향했던 내 마음도 그랬던 것 같다.


입학 후 두 주 즈음 지났을까? 연구실 문을 와락 열고 들어와서는 김현정 씨를 찾았다. 교수가 된 이래로, 심지어 강사생활을 할 때도 학생에게서 김현정 씨라는 호칭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내가 김현정 교수라며 침착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첫인사를 나누었다.


은빈이는 내가 담당하던 '사회복지현장의 이해'라는 수업에도 참여했다. 이 과목은 다양한 사회복지실천현장을 직접 방문하면서 사회복지사의 직무와 현장의 분위기를 익히도록 돕는 수업이었다. 4월 중반이 되면 신입생들의 긴장감도 좀 풀어지고 낯선 동료들과의 서먹한 냉기도 풀려서 삼삼오오(三三五五) 떼를 지어 다니고, 커플이 생기기도 한다. 은빈이게서 나타났던 변화는 복장이었다. 정장에서 캐주얼로 바뀌었고 화장을 안 하는 날이 더 많아졌다. 스무 살에게 캠퍼스 여름은 5월부터 시작된다. 계절 따라 은빈이의 가벼워진 옷차림과 함께 가려졌던 타투(tattoo)가 눈에 띄었다. 타투에 대해 잘 모르는 내 시선에는 상체에서 더 이상 타투를 할 수 있는 부위는 없어 보일 정도였다.


학기 중반에 이르러 은빈이와 드디어 일대일 면담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제야 나는 은빈이가 타투를 즐겨하고, 속 깊은 이야기를 솔직하고 거침없이 나눠 주는 친구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선생님'이라는 호칭보다 '~씨'라는 호칭이 상대를 더 존중하는 격식 있는 표현인 줄 잘못 알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첫 면담 이후, 은빈이는 대학생활에서 사소한 불평불만이 생기면 나를 찾아왔다. 일상의 짜증과 분개를 털어놓는 모습을 보면 다듬어지지 않은 모습이 사랑스러운 친구였다. 또, 어느 날에는 부모님께 너무 화가 나서 격하게 저항한 이야기를 풀어내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남자 친구를 만나고 양가에 인사를 드리며 사랑을 느끼고 배워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도 있었다. 전공 지도교수인 내게 자신의 20년 삶을 속속들이 보여준 은빈이가 나는 참 고마웠고 정이 갔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는 친구들에게는 '사회복지현장실습'이라는 꼭 넘어야 하는 산이 있다. 방학 중에 꼬박 3-4주간 사회복지기관에서 무급으로 실습하며 사회복지사로서의 자질을 키우는 시간이다. 방학이 되면 아르바이트에 여행으로 사적인 계획이 많은 대학생들에게 실습 일정은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은빈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왜 실습이 필요하며 무엇을 배우고 와야 하는지 쉽게 납득을 했다. 늘 그랬던 것 같다. 은빈이는 혈기 높여 분노와 분개를 표현하다가도 납득이 되면 순하디 순한 양으로 변했다. 자잘한 일들에도 왜 그래야 하냐고 질문했지만, 잘해보고 싶다고 마음을 돌이키면 누구보다 예쁜 표정으로 진심을 다했던 은빈이었다.


은빈이는 학력인정 대안학교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고, 나름 흥미진진한 사춘기를 보냈던 기억에 아동청소년 분야로 실습을 가고 싶다고 했고 스스로 실습처를 알아보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이제, 드디어 은빈이에게 새겨진 타투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타투가 개인의 취향과 미적 선택임을 인정하지만 사회복지사는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직업적 특성이 있기에 은빈이와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곧 사회복지현장 실습지에서 만나게 될 아이들에게 은빈이가 들려줄 '이야기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이해받기 원하는 존재이다. 이해란 사랑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내가 살아온 삶에서 다양한 선택과 결정들이 지금의 '나'로 상대에게 전해진다. 현재의 '나'란 시간성을 기준으로 과거로부터 다양한 경험이 축적된 '나'이다. 우리는 가끔 어떤 상황에서는 '지금의 나'에 관해 묻지만, 과거에 대해 답해야 할 때가 있다. 이 질문은 때로는 답하기 까다로운 질문이다. 질문을 받는 입장에서는 폭력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은빈이와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바로 그 지점이었다. 혹시, 이 아이가 누군가의 '왜?'라는 질문을 폭력적으로 받아 아프지 않을까 염려가 됐다. 혹시 맞이하게 될 혹독한 시선과 질문에 아프지 않으려면 준비해둔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긴 대화 끝에 은빈이는 하계실습기간 중에 아이들이나 사회복지사 선생님들, 부모님들을 생각해서 시원한 소재의 긴 팔 티셔츠를 찾아보겠다고 했다.


은빈이를 실습 보낸 후, 2주쯤 지나 실습지로 방문지도를 나갔다. 아이들을 만나며 경험한 사회복지사들의 노고와 사람 이야기들을 흥분 섞인 언어들로 풀어놓았다.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싶었다. 더운 여름 긴팔 티셔츠를 입고 손목에 새겨진 타투를 가리기 위해 밴드를 붙이고 있는 은빈이에게 건넬 말은 한마디뿐이었다.


"자랑스러워!"


누군가 낯선 사람을 만날 때면 그의 생애가 궁금해질 때가 있어서 '왜?'라는 의문사를 함부로 쓸 때가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함 만큼이나 내가 지내온 시간과 공간의 조합 그 어딘가에 나란 사람의 모습도 너무나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걸 잊고 건네는 '왜?'라는 질문에 '무엇'에 관한 이유를 어찌 다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하지만, 가끔은 사회적 역할 때문에 '왜?'에 답해야 할 때가 있다. 맡겨진 책임과 영향력 때문에 신뢰를 사려면 이유에 대한 설명, '당신의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요구받는다. 나는 이때가 공히 자신을 책임져야 하는 '성인'이 된 신호라고 생각한다.


졸업을 앞두고 은빈이가 손글씨로 진심 어린 감사와 존경을 담은 편지를 건네주었다. 편지를 받고 나도 내가 대견했던 기분 탓에 전하지 못한 말이 있다. "나도 너처럼 방황했고, 혼란스러웠고, 버거웠다. 그건 지금도 여전하다"라는 말. 어른이 되어가는 은빈이를 지켜볼 수 있었던 2년은 세상의 난폭한 질문에 준비 없이 나아가지 않도록 지켜주고 함께 했던 기억 때문에 소중하게 남아있다. 지금도 은빈이는 어딘가에서 자기 인생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을 테다. 오늘의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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