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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령 박천순 Jul 23. 2022

정다운 이별

정다운 이별

이령


주머니를 뒤집어
접혀있던 길을 꺼낸다
숨처럼 둥근 동전이 굴러 떨어진다

세제와 표백제를 잘 풀어
길을 빨다 보면
발끝을 아프게 하던 돌부리
올이 풀리는 소리,
배수구가 서서히 젖는다
안개처럼 거품이 피어오르고
길이 점점 납작해진다

길을 빠는 일은
등을 돌린 사람과 정답게 헤어지는 것
어디쯤에서 어긋난 그의 손이
말라붙은 허물을 긁어댄다
단추와 지퍼 사이
부딪히고 비틀리고 한 몸으로 뒤엉켜도
얼굴을 알 수 없는,

탈색된 길 위에
그가 등만 남긴 채 뚜벅뚜벅
사라져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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