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러진 길
박천순
길은
언제든 부활을 꿈꾼다
오래된 책을 펼치는데
마른 나뭇잎이 떨어졌다
조심스레 주워 올리다가 한 귀퉁이를 부서트렸다
돌출된 잎맥들이 여러 갈래 길인데
끊어진 시간이 일어선다
이미 지나와버린 먼 길
어디쯤에서 비를 맞고 있을까
기억을 퍼올리며 책 앞에 서 있다
발바닥을 베이고 가슴이 베여도
숨길 수 없는 발자국이
마음을 꾹꾹 밟고
빛바랜 형광펜을 열고 문장이 걸어 나온다
투둘투둘 나뭇잎 길을 만진다
바람과 침묵과 어둠을 견뎌낸
길이 마른 향기를 뿜고 있다
바스러진 길이 무너질세라
다시 문장 사이에 잠재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