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의 기준
숫사자 한 마리가 길을 가고 있는데, 저 쪽에서 무언가가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가니까 무심한 표정의 거북이였습니다.
잠시 거북을 내려다보던 사자가 궁금증이 들어서 거북에게 물었습니다.
"야, 넌 등 위에 그게 뭐냐? 답답하지도 않냐?"
그러자 거북이 고개를 돌려 사자를 약 5초 정도 물끄러~미 보더니, 한마디 되물었습니다.
뭐라고 했을까요?
거북 입장에선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빗지도 않고 산발한, 정신이 온전치 않아 보이는 웬 여성(?)이 접근해 쓸데없는 오지랖을 부리는 것이죠.
떠오르는 속담이 하나 있습니다. '제눈에 들보는 못 본다'.
'역지사지'라는 사자성어도 생각나구요.
자신은 돌아보지 못하면서 남에 대한 '참견 식' 의 비판이나 조언을 던지면 그게 부메랑으로 돌아와 역효과를 부른다는 교훈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우스개로 끄집어낼 수 있는 생각거리를 좀 더 정확히 짚어본다면 '상대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특성만을 정상의 기준으로 삼는 협소한 세계관'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의 관점에만 갇혀 타인의 특징이나 개성을 '비정상' 으로 판단하는 숫사자의 짧은 생각을 거북이 비웃는 듯하죠.
하지만 거북 역시 숫사자의 갈기를 비정상으로 규정해버린 건 마찬가지입니다.
등딱지와 갈기를 특성이나 개성이 아닌, '티'나 '흠', 혹은 '장애'로 인식하는 사자와 거북의 관점.
나와 다르면 정상이 아니라 '이상'한 걸로 치부해버리는 우리 사회 일면과 비슷합니다.
'정상'과 '비정상', '당연함'과 '이상함', '상식'과 '비상식'을 가르는 데에 있어서 적어도 '나, 또는 우리와는 다른 무엇'이 기준이 되면 안 된다는 걸 등딱지와 갈기가 넌지시 알려주는 듯합니다.
거북 등딱지와 숫사자 갈기에서 뻗어나온 이런 문제 의식은 우리 사회 가족이나 세대 간의 갈등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부모와 10대 자녀의 관계를 예로 한 번 들어보죠.
딸의 스커트는 점점 짧아지고, 아들의 머리카락은 노란색이나 빨간색으로 바뀝니다.
아버지는 '이 녀석이 완전히 돌았구나' 하면서 '바로잡으려' 호통칩니다.
하지만 정상으로 바로잡히기는커녕 돌아오는 건 아버지에 대한 불만과 반감 뿐입니다.
"우리 아빠는 이상해" 라는 평가가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지금이야 자상하고 다정한 아버지상이 대세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부장적 권력의 틀 안에서 권위를 과시하던 아버지들이 많았죠. 물론 지금도 그런 아버지들이 아주 적지는 않을테구요.
그런 가부장적 권위의 특징 중 하나는 자녀의 생활 방식이나 행동 방식, 태도를 평가할 때 아버지의 관점을 기준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기준에서 괜찮아 보이면 자녀가 '정상적으로' 잘 자라고 있는 것이고, 아버지의 눈에 못마땅하면 자녀는 '비정상적으로' 비뚤어지거나 부족한, 바로잡아야 할 대상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개인의 생활 방식이나 행동 방식에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과거엔 모르겠지만, 요즘같은 다양성의 시대에선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10대 딸아이의 패션, 10대 아들 녀석의 머리 스타일, 말투, 밤늦게까지 스마트폰만 보고 있는 아이들. 또래 친구들과의 욕설과 은어로 뒤덮인 대화.
부모 입에서 한숨이 나올만 한 비정상적 일탈로 보이겠지만, 거북의 등딱지나 사자의 갈기처럼 요즘 시대 그 또래의 본능과도 같은 특성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10대 자녀의 머릿속과 그 부모의 머릿속은 등딱지와 갈기 같은 차이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각자 다른 문화 속에서 성장한 각 세대 간에는 거북이 등딱지나 숫사자의 갈기처럼 도저히 공통적으로 일치시킬 수 없는 특성과 사상, 가치관이 있는 것이죠.
서로 완전히 다른 특성을 권위의 기준에 맞게 고치도록 강요하고 고집한다면 세대 간에는 갈등만 점점 누적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숫사자가 거북 등딱지를 보면서, '맞아, 쟤 등은 원래 저렇지, 참 반질반질하고 튼튼해 보이는 등딱지네!'.
거북이 숫사자의 갈기를 보면서, '거 참 숱이 풍성하구만!' 하고 인정해준다면 갈등이 싹틀 틈이 아예 없겠죠.
"중2병은 고치는 게 아예 불가능하니까, 그냥 그러려니 냅둬야 한다"는 말은 그래서 포기를 권하는 비아냥이 아니라 해법을 제시하는 현명한 조언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개성이나 특성을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으로, 당연하게 여기도록 노력하자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정상'이나 '표준'의 절대적인 기준이 과연 존재할까요?
'이건 정상이고 저건 이상하다' 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기준은 누가, 언제 세워놓은 걸까요?
고정관념과도 같은 인위적인 기준을 벗어나면 모든 게 정상이고 모든 게 표준일 수 있지 않을까요?
거북과 숫사자의 짧은 대화에서 가지 치듯 나온 생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