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오일기 1798년(정조22) -노상추 53세
9월 16일(병자) 흐리고 아침에 비가 뿌렸음.
금군 별장 임률任嵂 영공이 선무사宣武祠의 제관으로서 향을 받고 본청에 들어왔기에 잠시 함께 이야기를 하였다. 중일 시사中日試射를 행하므로 이날 아침에 표신을 공경히 받고 중일각中日閣에 가서 참석하였다. 시관은 도총관 이장한李章漢, 병조 참판 류의柳誼, 도총부 도사 이병덕李秉德이었다. 병조참판 류柳 공은 본래 공법公法을 굳건히 지키는 것으로 온 세상에 유명하여 잠시 동안에 많은 사람을 시취할 수 있었다. 예전부터 활을 쏘는 차례는 먼저 선전관이 하고 그 다음은 무겸선전관, 그 다음은 부장, 그 다음은 수문장, 그 다음은 금군, 그 다음은 호위군관, 그 다음은 충익위·충장위, 그 다음은 훈련도감, 그 다음은 액례․별감이었다. 그런데 류공은 먼저 수문장에게 활을 쏘게 했는데, 활을 쏘자마자 그들이 지키는 문으로 곧바로 돌아가게 재촉하는 뜻으로 한 것이니 공정한 조처였다. 도총부 서리가 선전관이 먼저 활을 쏘아야 한다는 뜻으로 관에 호소하니 그를 잡아다가 곤棍을 쳤다. 하지만 그의 휘하에 있는 사령이 장杖을 가볍게 치므로 죄를 주어 즉시 제명하고 드디어 문밖으로 내쫓았다. 작은 일이라도 자신의 뜻처럼 하지 않으면 결코 너그럽게 용서하지 않고 즉시 곤을 친 뒤에 신속하게 거행하므로 하례들이 마음을 쓰는 것이 다른 때보다 갑절이나 되었다. 이날 밤 군호는 ‘□□’ 두 자로 내리셨다.
2022년 2월 8일
폭력은 장유고하를 불문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사용해서는 안 되는 수단이라 생각한다. 눈 앞의 상황을 쉽게 정리해 주기는 하지만 해결해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들 너무나 쉽게 지름길인 폭력을 택한다.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내뱉는, "조센징은 맞아야 한다", "여자와 북어는 3일에 한 번씩 패줘야 한다" 라는 등의 말은 인간의 저열함을 스스로 드러내는, 농담으로도 하지 말아야 할 말이다.
전근대에는 훨씬 자연스럽게 폭력을 통해 아랫사람을 다스렸던 것 같다. 물론 노상추가 표현을 항상 직설적으로 해서 그렇지 절대 다수가 노상추와 유사한 사고방식을 가졌을 것 같다. 노상추는 병조참판 류의가 자신의 말에 거역하는 아랫사람을 곧바로 곤장으로 다스리고 신속하게 자신의 뜻대로 일을 거행하게 하는 모습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하례들이 마음을 쓰는 것이 갑절이나 된다고 쓴 것은 지금 말로 하자면 눈치를 갑절로 봤다는 뜻이겠지. 평소 강상의 윤리에 대단히 신경쓰는 노상추로서는 류의의 방식이 아주 쌈박한 일처리 방식으로 보였을 것이다.
근데 그러고 보면 류의는 예로부터 내려오던 전례를 파격적으로 깨서 궁의 보안을 효과적으로 유지하고자 한 융통성있는 일머리를 가진 사람이기도 한 듯한데, 아랫사람이 자기 들이받는건(들이받긴 한걸까)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나보다.
최근 김영민의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를 읽었는데, 이 글을 쓰다가 이 책에 인용한, 조찬한이 했다고 하는 말이 떠올랐다. "사납게 굴지 않았는데도 백성들이 잘 따랐으니 우아하지 않습니까. 얽어매지 않았는데도 백성들이 스스로 복종했으니 단정하지 않습니까."(해당 칼럼 링크)
폭력 없이 다스릴 수 있는 것이 아마도 덕치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