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젊음을 택할 것인가?

​제7화: 말자의 인강 듣기

by 정이

AI 이미지 Gemini

지윤아, 돈 좀 빌려다오."
​해장국집에서 고된 첫날을 보낸 다음 날 아침, 말자는 일어나자마자 지윤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제 결심한 대로 ‘검정고시 문제집’을 사기 위해서였다. 지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지만, 말자의 기세에 눌려 오만 원권을 내주었다.
​말자는 그 길로 서점에 달려갔다. 난생처음 제 손으로 고른 묵직한 문제집 뭉치를 품에 안으니, 해장국 냄새 배어 있던 가슴속에 시원한 바람이 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날 밤, 다시 출근한 해장국집은 유난히도 북새통이었다. 쉴 새 없이 밀려드는 뚝배기를 닦고 바닥을 문지르다 보니, 새로 산 책을 제대로 펼쳐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새벽 5시, 녹초가 되어 돌아온 말자는 식탁 앞에 앉아 문제집을 딱 한 장 넘겼을 뿐인데 눈꺼풀이 천근만근이었다. 지윤이 언제 들어온 지도 모른 채, 말자는 펜을 쥔 채 그대로 식탁에 엎드려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뜨니 창밖으로 환한 아침 햇살이 거실을 메우고 있었다.
​"으구구, 허리야..."
​굳은 몸을 일으키던 말자의 시선 끝에 지윤이 걸렸다. 지윤은 세수도 못한 얼굴로 노트북 화면을 눈이 아프도록 들여다보며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어찌나 집중했는지 눈이 빨갛게 충혈된 채였다. 어제 새벽, 말자가 공부하려다 기절하듯 잠든 줄도 모르고 지윤 또한 밤을 꼬박 새워 일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말자는 부스스한 머리를 쓸어 넘기며 지윤의 옆으로 다가갔다.
​"야가 아침부터 눈이 빠지게 뭘 저리 보노... 지윤아, 너도 아직 안 잔 거냐?"
​지윤은 대답 대신 짧은 한숨을 내뱉으며 안경을 고쳐 썼다. 스무 살의 말자도, 이십 대의 지윤도, 각자의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를 쓰고 있는 아침이었다. 말자는 어제 산 문제집을 쓱 밀어 놓으며 짐짓 당당하게 말을 건넸다.
​"지윤아, 나 이거 모르는 거 투성이다. 너 이거 수학 작대기 x 말이다, 이게 왜 여기 붙어있는지 아나? 이자는 내가 해장국집에서 싸 온 고기로 칠 테니까, 요거 하나만 좀 알려줘 봐라."
​지윤은 기가 차다는 듯 말자를 보더니, 노트북에서 시선을 떼고 빨간 볼펜을 들었다.
​" 엄마, 수학은 원래 어려운 거야. 잘 봐..."
​지윤의 설명과 더불어 말자는 지윤이 가르쳐준 대로 태블릿 PC를 켜 인터넷 강의라는 것을 틀었다. 화면 속 선생님이 상냥하게 웃으며 글자를 가르쳐주는 것이 신기해 말자는 넋을 잃고 화면을 들여다봤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기고, 멈췄다가 다시 돌려보는 법을 배우느라 진땀을 뺐지만, 이어폰 너머로 들려오는 지식들은 말자의 머릿속에 쏙쏙 박혔다. 밤샘 노동의 고단함도 잠시 잊혔다. 이제야 '이말자'라는 이름 앞에 놓인 인생의 암호들을 하나씩 풀어가는 진짜 첫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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