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소녀 요코의 수난기
아무리 바쁘더라도 한 달에 한 번은 꼭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는데, 그 결심은 보기 좋게 무너졌다. 변명을 좀 해보자면 다들 크리스마스며 새해맞이로 바쁠 때 종합병원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이 병원, 저 병원 신세를 좀 졌다.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점에 아파서 골골거리는 모양새가 우스웠다. 헷갈리는 마음에 내내 잠 못 이뤘던 날들로 못내 괴롭기도 했다. 그러다 너무너무 좋아했고 이뻐해 주셨던 교수님께서 들려주신 경험담을 떠올렸다. 본인은 힘들었을 때 이미 본 영화를 보고 또 보셨다고, 그럼 좀 나아진다는 말씀이었다. 아는 내용이지만 다시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고, 도파민 솟을 만한 게 뭐가 있을까 되짚어보다가 고른 게 바로 ⟪빙점⟫이다.
책은 남편 게이조, 아내 나쓰에, 아들 도루, 딸 루리코와 요코의 이야기를 담았다. 나쓰에는 남편 게이조의 동료인 무라이와 요즘말로 '정신적 바람'을 피운다. 남편 없는 집에 찾아와 좋아한다고 고백받는 상황에서 놀아달라는 루리코는 그녀에게 조금 귀찮은 존재였다. 나가 놀라는 말에 토라진 아이는 집 밖을 떠돌다 사이시라는 남자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게이조는 아내와 무라이가 외도했고, 그로 인해 딸이 죽었다고 생각해 두 사람을 원망한다. 그는 다시 딸을 갖고 싶다는 아내의 말에 사이시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요코를 데려와 키우게 한다. 서재를 정리하다 게이조가 친구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를 통해 진실을 알게 된 나쓰에는 요코를 은근히 구박하고 괴롭힌다. 점입가경으로 도루는 여동생 요코를 여자로 본다. 아버지의 무관심과 어머니의 괴롭힘, 오빠의 구애 속에서 씩씩하게 버텨보지만, 자신의 출생에 숨겨진—그러나 사실이 아닌— 비밀을 알게 된 요코는 죽으리라 마음먹고 유서를 남긴다.
그러니까 이 작품을 한 문장으로 축약해 보면, 정신 나간 가족들과 척박한 땅에서 부족한 양분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자란 명랑소녀 요코의 수난기라 할 수 있다. 처음엔 루리코의 자리를 빼앗았다는 이유로, 이후에는 젊은 딸의 아름다움에 대한 질투로 시련을 안겨준 엄마.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소중한 오빠라고 여겼던 사람은 이제부터 남자로 봐달라지 않나. 아버지인 게이조도 어떨 땐 딸보다는 이성으로 인식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독자인 나조차 "이게 맞아?!" 싶을 정도로 황당하고, 때로는 역겹기 그지없는 상황에 집을 불 지르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럼에도 요코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마음이 비뚤어지지는 않을" 것이고 "그만한 일로 사람을 원망하며 마음을 더럽히고 싶지는 않"다고 말하며 의젓하게 군다. 엉망인 현재를 살아가면서 한 번도 남 탓, 자기 탓을 하지 않고 미래를 낙관하는 그를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속 구김도 절로 펴지는 것 같았다. 사막에서 아름답게 꽃 피우는 선인장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이럴까.
북적이는 아침과 오후 지하철을 타고 오가는 동안, 내가 어디 있는지 조차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책에 빠져들었다. 물론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견디기 힘든 내용이 있긴 했지만, 그 또한 도파민 충전용으론 나쁘지 않았다. 한동안 밤 산책 내내 즐거운 통화 주제가 되어주기도 했어서 감사한 마음도 있다. 무엇보다도 요코, 그의 명랑하다 못해 가끔은 맹랑하다 싶을 정도로 곧고 맑은 성정은 어딘가에 있는 존재로서 무한히 응원하고 애정하고 싶게 했다. 소설 속 인물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부디, 부디 얼어붙은 마음이 녹기를—그녀가 사랑해 마지않는 기다하라가 녹여주기를— 바라고 또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