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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이야기

쌀 ㆍ완전식품?!

쌀이 우리의 주식이라는 것에는  이의가 없다.

쌀만큼 다양하고 충분한 영양을 함유한  곡식도 드믈다.

생물실험 즉 쥐실험을 통해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쌀은 우유처럼 완전식품에 가깝다고 한다.

쥐실험 과정속에서 보리만 계속 먹인  실험쥐는 몇 달이 지나자 허약해지고 영양결핍 등 이상증세가 나타났다. 그러나 쌀만 먹인 쥐는 년의 시간 지나 이상증세가  없었다고 한다.


요즘처럼 영양사정이 풍부한 시대를 사우리에겐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채식 위주의 예전 식생활에서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쌀밥의 힘이었음을 결코 부인할 수 없다.

지난 개발독제 시절에는 식량자원 절약정책으로 혼분식 장려 시기가 있었다.

그때는 지나친 잡곡 또는 분식의  식생활 강조로

쌀의 영양성분과  우수성을  폄하시키는 경향까지 있었다.

사실 한정된 경작지에서 가장 많은 소출을 

  수 있는  곡물바로 쌀이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아시아 쪽에 많은 인구가 밀집되어 살게 된 것도 주식인 쌀의 부양능력에 있었다.


동물의 세계에서 먹이가 그 개체의 총수를 결정짓듯이 물론  인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쌀이 우리에게 지금처럼 풍부해진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옛날에 쌀은 부의 상징처럼 여겨졌으며 대부분  사람들이 쌀을 먹을 수 도 없었다고 한다.

현세에 들어와 70년대 경제성장시기에  다수확 품종의 개발로 생산량이 대폭 늘어난 이후에야 가능 해졌다고 본다.


쌀의 종류는 주요 품종 두 가지가 있다. 

우리가 먹는 끈적한 찰기 있는 자포니카 종과

 안락미로 불리는  찰기가 거의 없는  인디카 종이 그것이다.

사실은 카레라이스 등으만들어 먹는 찰기 없는

인디카 품종이 세계적으로는 더 많이 소비되고 있다. 그리고  유럽 등에서 자포니카 종 보다 가격도 높단다..


나는 쌀농사를 짓는 농가의 집안에서 자라난 관계로 우리네 쌀농사 과정  속내대부분 지켜보았음을 자부한.

 나의  어린 시절 재래식 쌀농사는

한자 쌀미자에  나타나 있듯이 여든여덟 번의  일손이 가는 지난한 과정 그 자체였다.

그중에서 수확 때농촌풍경

 일부 회상해 보았다..

당시에 마을 어른들은 주로 품앗이로 일손을 도왔다. 모든 농사일이  인력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누런 벼를 낫으로 베어 논에 깔아 말리고 며칠 후 깔린 벼들을 뒤집어  준다. 그리고 며칠을 더 말린 후 볏단을 묶어 논두렁에 길게 볏가리를 쳐 놓았다.

얼마 후  벼 타작 날이 잡히면

마을 청년들이 소달구지나 지게로

고개 중턱에 있는 우리 집 마당으로 운반하는 힘든 작업이 며칠간 이어졌다.

또한 그 볏단을 지붕 높이를 넘길 정도로 가리  탑을 두세 개 쌓아 올렸다. 어린 시절  나는 그 높은 볏단 위에 올라가 보려고 애를 쓴 적도 있었다.


또한 타작 날이 다가오면 전날밤에 마당을 깨끗이 비로 쓸어놓수동식 탈곡기 두세 대를 준비해 두었다.

그리고 타작 날에는 이른  새벽부터 마을 어른들 예닐곱 명이 탈곡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한두 시간마다 자주 새참을 먹으며

하루 종힘들게 탈곡을 했던 것 같다.

이렇게 수확한 벼의 일부는 농협에 판매를 하고 일부는 정미소에 가져가 흰쌀을 만들기 위해 도정을 했다.  그때는 어린 마음에도 방앗간에서  누렇던 벼가 하얀 쌀이 되어 나오는 것을 보며  신기함에 더해  신선함, 뿌듯함 같은 기분 좋은 느낌을 받았었다.

하물며 농부들 당사자인 어른들의 마음은 얼마나 기쁘고 뿌듯했을지 상상이 되었다.


요즘처럼 쌀의 소비가 줄어들고  쌀 생산을 억제하는 정책이 나오는  시대에  쌀의 의미를 반추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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